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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췌문) 일본 서기에 나오는 일본과 신라의 원한 관계 관련 기사



1. 신라는 작고 추한 나라이다.

천황이 궁으로 나오셨다. (중략) 천황은 제신에게 묻기를, <어느 정도의 군사가 있으면 신라를 칠 수 있겠는가?>라고 물었다. 신하가 간하기를, <적은 군사로는 쉽사리 치기가 어렵습니다. 신라에 대한 원한은 오래 되었기에 쉽사리 치는 것은 안됩니다>라고 말하였다.

- 흠왕 원년 9월 5일 -

백제가 달솔 등을 보내 말하기를, <금년 7월 신라는 힘을 믿고 세력을 만들어 이웃과 친하지 않고 당나라 인을 끌어들여 백제를 전복시키고 순신을 모두 포로로 하여 거의 살아님은 자가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 제왕 6년 9월 5일 -

천황이 지시하기를,

<신라는 작고 추한 나라이다. 하늘의 뜻을 거역하고 난폭하다. 나의 은혜와 의리를 모르고, 관을 파괴하였다. 내 백성을 해치고 내 군현을 부수었다. 우리 신공황후는 영묘하고도 총명하셔서 천하를 주행하셨다. 많은 서민을 위로하고 만민을 향육하였다.

신라가 궁하여 귀순하는 것을 불쌍히 여겨 신라왕이 살해되려는 것을 살려주고 신라에 중요한 땅을 주었다. 신라의 편을 들어 영화를 누리게 하였다. 우리 신공황후가 신라에 박하게 대한 것이 무엇인가? 우리 백성이 신라에 원한을 갖게 한 것이 무엇인가?

그럼에도 신라가 긴 창과 강한 활로 임나를 강곡하고 큰 이빨과 날카로운 손톱으로 인민을 학대하였구나.

- 흠왕 23년 6월 -

이 때 신라의 조공사 지만 등이 당나라 옷을 입고 항구에 정박하였다. 조정에서는 마음대로 복제를 바꾼 것을 불쾌하게 생각하여 문책하여 쫒아내었다. 대신이 주상하여, <지금 신라를 치지 않으면 후에 반드시 후회할 것입니다. 그 치는 방법은 어렵지 않습니다. 난피진에 배를 가득 띄워서 신라를 불러서 그 죄를 물으면 쉽게 굴복할 것입니다.>라고 주장했다.

- 효덕 2년 -

무릇 백제와 신라의 풍속은 사망자가 있을 때 부모 형제 부부 자매라 하더라도 스스로 보려고 하지 않는다. 이것으로 보면 몹시 자애가 없어 금수와 다를 것이 무엇인가?

- 성극 원년 5월 22일 -

신라는 사인을 보내 주를 헌상하였다. 그 사인은 산리가 임나를 멸하였다는 것을 알았으므로 천황의 은혜에 배반하였다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고 돌아가지 않겠다고 청하였다. 그래서 머물러서 본토에 돌아가지 않았다. 천황의 백성과 같은 대우를 받았다.

- 흠명 23년 7월 -

신라는 사인을 보내 헌상품과 주를 바쳤다. 사인은 신라가 임나를 멸하여서 천황이 분개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감히 돌아가겠다는 청을 못하고 처벌을 두려워하여 본국에 돌아가지 않았다. 후에 천황의 백성과 같은 대우를 받았다.

- 흠왕 23년 11월 -

신공황후는 남장을 하고 신라를 공격했다. 그 때 신께서 인도하셨다. 배에 따른 파도가 멀리 신라 나라 안까지 미쳤다. 이에 신라 왕이 마중나와 무릎을 끓고 배를 잡아 머리를 땅에 대고 >신은 금후 일본국에 계시는 신의 아들에게 내관가로서 끊이지 않고 조공하겠습니다>라고 하였다.

또, 일설에서 신라왕을 포로로 하고, 해변에 데려가서 무릎의 힘줄을 끊고서 돌 위에 포복시켰다. 조금 있다가 베어서 모래 속에 묻었다. 한 사람을 남겨 신라에 있는 일본의 사행으로 하고 돌아갔다.

그 후 신라왕의 처는 남편이 묻혀있는 곳을 모르고 혼자서 사행을 유혹할 생각을 하였다. 행을 꾀어서 <그대는 왕의 시신이 묻혀있는 곳을알려주면 마땅히 후하게 보답하겠다. 또 그대의 처가 되겠다>고 말했다. 행은 꾀는 말을 믿고서 가만히 시신이 묻혀있는 곳을 말하였다. 왕의 처와 국인이 공모하여 행을 죽였다.

왕의 시신을 꺼내어 다른 곳에 묻었다. 그 때 행의 시신을 왕의 묘의 흙 밑에 묻고 왕의 관 아래에 놓고, <존배의 순서는 실로 이와 같을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천황이 이 말을 듣고 화를 내며 군사를 크게 일으켜 신라를 멸망시키려고 했다. 군대와 선박이 바다에 가득하여 건너갔다. 신라의 국민이 모두 두려워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다. 서로 모여 공모하여 왕의 처를 죽이고 죄를 빌었다.

- 신공 전 12월 14일 -

일본서기에서는 신라에 대해서 불만스런 글들이 많습니다. 왜와 백제가 친선이었던 것과 반대로, 신라에 대해 우호적이지 못한 이유는 신라가 당을 꾀어 백제를 멸망시키고, 왜를 소흘히 했기 때문입니다. 천황은 신라는 <금수의 나라>라고 생각하였고, 신공황후는 신라 왕을 잡아 근육을 뽑아 죽이기까지 했다고 적어두었습니다. 신라측 자료가 부족한 관계로, 모든 진위 여부를 다 판별할 수는 없지만, 신라에 대한 글들이 지나치게 감정적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또, 실제 역사적 기록에 비추어볼 때, 사실이 아닌 부분도 많은 듯 합니다.

사료부분 발췌 자료 : 고대한일관계와 일본서기, 최재석, 일지사(2000년)

참고자료 :
2007/08/24 - [초중고방/요청자료실] - (답변자료실) 백제 성왕이 552년 일본에 보낸 국서의 내용과 일본 불교의 수용 과정
2007/06/28 - [초중고방/교수학습 다운로드 자료실] - (다운로드) 일본고대사 1-14편까지의 긴 포스팅을 한글파일로 짧게 요약했습니다.
2007/03/08 - [동양사사료모음/동양사원문사료] - (일본 대국사전문) 일본서기, 속일본기, 일본후기, 속일본후기, 문덕록, 삼대록 일본 6대 사서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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