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지  |  전체글  |  모바일  |  이메일

윤계선의 <달천몽유록>에서 한 소절..

윤계선달천몽유록 이라는 작품을 읽다가 역자의 각주에 너무 가슴에 와 닿는 말이 있어서 한 소절...

옛날 중국 춘추시대 제나라에 환공이라는 임금이 글을 읽고 있었다.

수레바퀴를 만들던 목수가 임금에게 이렇게 물었다.

<임금님이 읽으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환공이 말하기를 <옛날 성인의 글이다.> 라고 하였다.

목수는 그 말을 듣고 이렇게 말하였다고 한다.

<그러면 그것은 성인의 찌꺼기로군요...>

환공은 무슨 뜻인지 몰라 목수에게 다시 물었다. 목수가 말하기를,

<신은 한평생 목수 노릇을 하는데 연장이나 방법은 자식에게 전할 수 있으나, 연장을 놀리는 오묘한 솜씨는 결코 전할 수가 없었습니다. 옛날의 성인은 글을 남겼으나 그 오묘한 뜻은 전하지 못하였을 것이니, 글이라는 것이 찌꺼기가 아니면 무엇이겠습니까?>

----------------------------------------------

별 이야기 아닌 것 같은데... 감동 받은 이유는? 글이라는 것은 쓴 사람의 마음을 읽어야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하다는 점 때문이 아닐까?

우리가 어떤 책을 읽다보면 그 책의 내용은 자신의 관점에서 이해하게 된다.

포스트 모던 학자들은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1권의 책을 100명의 사람들이 각각 읽게되면 100개의 감상문과 100개의 작품이 다시 창조된다고...

우리는 결코 책에서 저자의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없다. 하물며, 그것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먼 느낌의 이야기라면 더욱 그렇다. 역사를 밝혀내야 한다는 랑케의 생각은 불가능한 것일까?

우리가 아는 역사는 역사가라는 사람들이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라는 느낌을 적은 가상 소설>이다. 물론 가장 정확한 사실을 찾아내어 그것에 근거한 소설을 적는다고 해도, 정확한 과거와는 일치할 수 없다.

성인의 글을 읽은 임금이 성인의 글을 읽지 않은 목수보다 지혜롭다고 할 수 없고, 역사책을 한 줄 더 읽은 사람이, 그냥 상상 속에서 역사의 나래를 펼치는 사람보다 똑똑하다고는 절대 말 할 수 없다.

그래서 지식이란 것은 절대적인 것도 없고, 진리란 것이 불변한다고 아무도 말 할 수 없다. 오늘의 영웅이 역적이 될 수도 있고, 어제의 친일파가 사실은 애국자였을 수도 있으니까...

진리를 모든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기준으로 만들어, 기성복을 만들 듯 재단하는 것이 너무도 싫다.

학생들이 같은 책을 읽고 같은 내용을 기준으로 삼아 암기해야 하는 현실도 싫다. 만 명의 학생들이 역사를 배우면 1만명의 역사가가 탄생하여 나름대로의 기준으로 이해하고 토론하고, 생각을 공유해 나가는 것...

그럼 좀더 다양한 진리들이 겹치고 겹치는 레이어가 되어 다양한 빛깔을 아름답게 만들어내지 않을까?

오늘도 그냥 뻘소리나 하면서 글을 적고 있다...

블로그 이미지

한국빅데이터교육협회

데이터분석 및 교육 전문기관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