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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의 인물 이야기

<카사노바> - 역사적 변화가 낳은 이단아.

1. 베네치아 공화국의 몰락

1천년간 상인의 도시로 전성기를 누렸던 카사노바의 고향, <베네치아 공화국>

베네치아 공화국은 유럽에서 가장 부러운 자치 도시였다. 르네상스의 본거지인 이탈리아 반도에서 문화와 예술을 이끌어간 도시가 바로 베네치아 공화국이었다. <베니스의 상인>은 세계 무역을 주름잡는 이 지역 상인들을 일컫은 자랑스런 단어였다.

베네치아 공화국은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무역 거점이었다. 이 도시는 주변이 석호로 이루어진 까닭에 바다에 떠 있는 해양 도시였다. 그래서, 아시아의 지배자 투르크인들도 감히 베네치아를 공격할 엄두를 내지 못하였다. 베네치아보다 우수한 함선을 더 많이 동원해야 겨우 이 지역을 침공할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되기 때문이다.



   아무도 침공할 수 없는 난공불락의 해양 요새 베네치아.

천연의 조건을 갖춘 이 해상 도시는 유럽의 모든 물품과 정보가 넘어오는 요충지로서 상업과 첩보 산업이 발전하였다.

그러나 유럽의 해상 중심지 베네치아도 16세기를 넘어가면서 조금씩 기울기 시작한다. 스페인 지역을 중심으로 미국이라는 신대륙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유럽의 해상 중심지는 베네치아에서 마드리드, 런던을 잇는 서부 해안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18세기...

영국, 프랑스 등 서부 지역의 국가들은 비교적 강력한 왕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해양 산업에서 몰락한 베네치아는 가진 것이 없었다. 도시 시민들은 점점 불만을 갖기 시작했고, 도시 지도부는 이 불만을 어떻게든 해소해야만 했다.

베네치아가 택한 것은 <유흥 산업>이었다. 도시 곳곳에서는 합법적인 도박판들이 벌어졌다. 누구나 오락을 즐길 권리가 있었으며, 술을 마실 권리가 있었다. 여자들은 도박판에서 돈을 번 남자라면 누구에게나 윙크를 보냈다. 도시 전체가 하나의 유곽이 되었고, 모든 여성들이 창녀와 구분되지 않았다.

유럽인들은 베네치아를 유럽의 <환락가>로 여겼다. 프랑스의 파리가 <예술과 향락의 중심지>라면, 베네치아는 <퇴폐와 유흥의 중심지>였다.

1725년... 위대한 자치도시의 몰락 속에서 한 남자가 태어났다. 그가 바로 세계 최고의 바람둥이 <카사노바>였다.

2. 누구나 바람피는 사회.

카사노바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얼굴이 반반한 무명 배우들이었다. 어머니는 확실하지만, 아버지가 누구인지를 알 길이 없다. 당시 베네치아에서는 아버지를 확인하는 일이 불가능할 정도로 난잡한 사회였기 때문이다.

1743년. 성 치프리아누스 신학교에 들어가 성직자로서 성공하려던 카사노바는 그것이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모두가 부도덕한 세상을 살고 있는 이 시대에 성직자로서 홀로 고고한 것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설교를 위해 단상에 올라간 그는 너무 술에 취해 자신의 몸도 가누지 못했다. 그러나, 돈이면 무엇이든 해결되는 베네치아 사회였기 때문에 그는 성직자 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는 생각했다. 성직자가 깨끗해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도시 전체가 창녀촌인데, 이곳에서 무슨 설교를 한단 말인가? 그는 보란 듯이 교회를 다니던 여성을 유혹하고, 떳떳하다는 듯이 감추지 않았다. 그래도 교회는 그를 눈감아 주었다. 그러나, 참다 참다 못한 교회는 그를 쫓아낸다.

그리고, 유명한 카사노바의 여정을 시작되었다.

카사노바는 생각했다. 가장 순결한 교회의 여인도 멋진 남자가 하나 하나 신경써주면 넘어올 수밖에 없다. 세상에 정조가 있는 여자란 없다.

카사노바는 잘생긴 외모와 뛰어난 사교 능력, 다방면에 박식하여 남녀를 불문하고 많은 친구가 있었다.

성직자란 직업은 교황이 거주하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휼륭한 직업이었다. 그러나, 카사노바에게 성직이란 여성을 유혹하기 위한 간판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가장 완벽한 직업인 로마 교황청에 들어가 일을 하였다.

그리고 그는 간판을 내세워 수많은 여인들을 유혹하였다. 고위층 집안의 부인과 그녀의 딸, 유부녀와 소녀를 가리지 않은 그의 행동은 수많은 남자들의 질타를 받았다.

그리고 결국 그는 로마에서 쫓겨나게 된다. 명문가의 부인들과 만난 사실이 문제가 되어 로마 지배층들의 공공의 적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가 도망간 곳은 기독교가 존재하지 않는 오스만 투르크 제국이었다.

투르크 제국에서 다시 이탈리아 반도로 돌아온 카사노바는 <프리메이슨>에 가입하고, 비밀 첩보 요원으로 활동했다고 한다. 그는 첩보의 왕국 베네치아 사람이자, 교황청에서 일한 사람이었으므로 교회에 대해 남모르는 무언가를 많이 알고 있었다. 또, 천성이 바람둥이인 그였기에 엄격한 규율을 강조하는 교회 자체에 반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전해진다...)

그는 여성들을 유혹히기 위한 기술로 탁월한 바이올린 연주 능력을 익히고 있었다. 17살에 신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바이올린 천재... 어느 여자가 넘어오지 않겠는가? 20살의 카사노바는 그 능력을 이용하여 예술의 도시 파리, 음악의 도시 빈을 돌면서 수많은 여성들을 유혹하였다.

3. 카사노바의 쇼생크 탈출

카사노바가 여성들을 유혹하기 위한 자금줄으로 이용했던 것은 <도박>이었다. 그는 도박에도 탁월한 능력이 있었던 듯 하다. 항간에는, 프리메이슨 비밀 활동을 통해 일종의 지원금을 받은 것이 아닐까라고도 한다.

하지만, 카사노바의 가장 든든한 자원줄은 양아버지 <브라가딘>의 지원이었다. 종교 재판관이었던 브라가딘은 갑작스런 발작으로 죽을 뻔한 적이 있었다. 이 때, 물불 가리지 않는 성격의 카사노바가 적절한 응급조치를 취해서 그를 살렸던 것이다.

21살의 젊은 카사노바.

브라가딘가의 양자가 된 카사노바는 이제 거칠 것이 없었다. 그의 일상은 여행이었고, 여행중 만난 모든 여인을 그의 침실로 끌어들였다. 카사노바의 여인이 100명이 넘는 것은 과장이라는 설이 있지만, 실제로는 100여명을 휠씬 뛰어넘는 숫자라고 한다. (그의 회고록에는 122명으로 기록되어 있다.)

특히 환락의 도시 베네치아는 일상적으로 섹스 파티가 유행하였고, 카사노바는 수녀들까지 파티에 초대하여 환락을 즐겼다고 한다. 그러나, 이 섹스 파티로 인해 카사노바의 인생은 꼬이기 시작한다.

카사노바와 파티를 즐긴 여인들 중에는 성직자의 부인, 종교 재판관의 애인 등 고위층들이 많았다. 이들은 카사노바가 <프리메이슨> 등 이단과 연결되어 있다는 정보를 듣고, 그를 협박하기 시작한다.

1755년. 카사노바는 금지된 이단 마법을 사용하는 마법사라는 죄명으로 종교 재판관에 의해 체포된다. 속내는, 여자를 유혹하는 그의 기술이 악마의 속삭임이란 뜻이다.

이로부터 5년간 카사노바는 피옴비 감옥의 가장 더러운 감방에서 가장 더러운 수감생활을 해야 했다. 지상최대의 바람둥이가 일생의 황금기를 감옥에서 보낸 것이다.

그러나, 카사노바는 누구도 탈옥할 수 없다는 혹독한 감옥. 피온비를 5년만에 탈출하였다. 피온비 감옥의 탈출은 그를 영웅으로 만들어 버렸다. 누구도 해내지 못한 일을 해낸 바람둥이... 완벽한 쇼생크 탈출...

나를 이곳에 가둘 때 나의 동의를 구하지 않았듯이, 나 역시 동의를 구하지 않고 이곳을 떠나노라.

감옥을 탈출한 그는 바로 이탈리아 반도를 떠난다. 그럼 이 바람둥이가 갈 곳은 어디? 베네치아 다음으로 문화와 예술이 발달한 도시, 프랑스의 <파리>였다.

4. 혁명 전야의 프랑스에서 비밀 첩보원으로...

프랑스에 넘어간 카사노바가 할 수 있는 일은? 일단 연주를 할 줄 아니 문화예술계에 진출해도 돠겠고, 도박을 잘하니 타짜로 성공해도 되겠다.

파리에 도착한 카사노바는 옛 친구의 소개로 프랑스 재정 전문가로 활동하게 되었다. (말했듯이 카사노바는 남자들에게도 무척 인기가 많았다.) 재정전문가니 돈은 많이 벌었을 것이고, 30대의 바람둥이는 또 다시 프랑스 여자들과 달콤한 시간을 보내게 된다.

프랑스 정부는 천부적인 사교 능력에, 탈옥능력까지 갖춘 카사노바를 다국적 스파이로 이용하려고 했다. 프랑스에서 많은 경제적 혜택을 받은 그는 이제 <프랑스 비밀 요원>이 된 것이다.

그는 첩보 활동을 하면서도 틈틈이 여자들을 만날 자금이 필요했고, 많은 사람들에게 돈을 빌렸다. 그러나, 빚이 많아지자 그는 프랑스를 떠나 남부지방으로 여행하면서 도피 생활을 시작한다. 이때부터 <생갈의 기사>라는 가명을 쓰면서 살아간다.

남부 지방으로 도망다니던 그는 계몽사상의 아버지 <볼테르>를 만나게 된다. 볼테르는 사회 변혁을 위해 인간의 <이성>이 필요하다는 것을 역설하고 다녔다. 카사노바 역시 <성직>이 따분하던 차에 인간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볼테르와 카사노바는 둘다 계몽 사상에 깊은 관심을 가졌지만,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랐다.

볼테르는 인간의 <생각하는 힘>, 즉 이성이 모든 것을 바꿀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러나, 카사노바는 이성보다는 열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머리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시키는 대로 따라가면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인생을 살면서 선한 일이든 악한 일이든 그것을 행하는 것은 내 자유의지에 의해서 이루어질 뿐이다.

카사노바는 마음과 몸이 시키는 대로 행하는 자유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5. 산업 혁명의 고장 영국으로, 그리고 계속된 실패...

1763년. 영국으로 떠난 카사노바는 차가운 대우를 받는다. 카사노바의 잠자리 기술은 18세기 영국에서 전혀 먹히지 않았다. 영국은 산업혁명을 통해 새로운 산업 사회로 나아가던 시기였다. 큰 도박판도 없었고, 그의 능력을 알아보려는 사람도 없었다.

오히려 카사노바는 일생 일대의 수치를 맛보게 된다. 우습게 보았던 영국 창녀에게 속아 가진 돈을 모두 빼앗기고 버림받았던 것이다. 카사노바는 평소에 수많은 여성들을 만난 관계로 숭어알집 등을 이용한 콘돔을 만들어 성병을 예방하곤 했는데, 영국에 다녀온 이후 악성 성병으로 고생하게 된다. 최초의 콘돔 고안자가 스스로도 예방하지 못했다고 할까?

베를린으로 여행을 시작한 카사노바는 계몽사상을 맹신하는 프리드리히 대왕으로부터 관직을 받기도 한다. 여행의 견문을 넓히고자 러시아로 떠난 그는 러시아 여성들과의 만남 때문에 곤욕을 치르게 된다.

러시아 남성의 도전으로 결투까지 치르며 러시아를 쫓겨난 중년의 카사노바. 더 이상 카사노바의 신화는 없었다.

그는 결국 스페인으로 도망치게 되었다. 스페인에서 글을 쓰면서 몸을 추스린 그는, 고향 이탈리아로 돌아온다. 이탈리아에는 자신도 모르게 태어난 그의 딸도 있었고, 자신에게 원한을 품은 남자들도 있었다. 카사노바는 종교 재판소와 화해를 하고 다시 베네치아로 귀환하였다.

50살의 카사노바는 일리아스를 번역하며, 종교 재판소의 비밀 첩보원으로 활약하였다. 경력이 많은 카사노바에게 비밀 첩보원 일을 맡긴 것이 귀환의 조건이었을까? 아무튼 오랜 방황 끝에 탈옥범이 모국으로 돌아온 것이다.

6. 회고록의 작성

1779년. 베네치아로 돌아온 카사노바는 <프란체스카>라는 가난한 처녀를 만나 평범한 가정을 꾸리게 된다. 물론 그의 정적들과 빚쟁이들이 카사노바를 괴롭히긴 했지만, 카사노바 일생에서 유일하게 행복한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행복도 5년을 넘기지 못하였다. 카사노바가 쓴 <사랑도 싫고, 여자도 싫다>는 풍자시가 문제가 된 것이었다. 그가 쓴 글에는 유력 귀족들의 비밀이 노출되어 있었다. 결국, 처음으로 진심어린 사랑을 했던 프란체스카와 강제로 헤어져 도망친 그는, 보헤미아로 도망친다.

그곳에서 그는 가난한 사서가 되어 13년간 자신의 인생을 정리하면서 살아간다. 그가 말년에 적은 회상록은 젊은 날의 여행과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것이다.

그가 죽고 얼마 뒤, 카사노바를 낳은 환락의 자치 도시 베네치아는 멸망한다. 볼테르의 영향을 받은 프랑스 민중들이 혁명을 일으켜 새로운 정부를 세웠고, 정권을 잡은 나폴레옹의 군대가 유럽을 휩쓸며 베네치아 자치 공화국을 지도에서 지워 버렸기 때문이다.

몰락한 지중해의 역사를 보여주는 베네치아, 그 환락가에서 태어난 카사노바.

그리고 프랑스와 영국, 독일, 러시아의 변화를 몸으로 보면서 스파이로 살아간 카사노바.

역사는 이런 절묘한 시기에 절묘한 인물을 낳아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려는 게 아니였을까?

 

역사블로그 <히스토리아> http://historia.tistory.com    by 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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