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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풀이

대한민국 연표 ※ 대한민국(大韓民國,1948 ~ ) 代 대통령 재임기간 본관 초대 이승만(李承晩, 1875~1965) 1948.7~1952.8 전주 2 1952.8~1956.8 3 1956.8~1960.4 과도내각 허정(許政, 1896~1988) 1960.4~1960.8 김해 4 윤보선(尹潽善, 1897~1990) 1960.8~1963.12 해평 5 박정희(朴正熙, 1917~1979.12.26) 1963.12~1967.6 고령 6 1967.7~1971.6 7 1971.6~1972.12 8 1972.12~1978.12 9 1978.12~1979.10 10 최규하(崔圭夏, 1919.7.16~) 1979.12~1980.8 강릉 11 전두환(全斗煥, 1931.1.18~) 1980.8~1981.2 정선 12 1981.2~198.. 더보기
선사시대 ~ 대한민국까지 약식 연표 연대 국 가 --------------------- 구석기 시대 -------- --------------------- 신석기 시대 -------- 2500 고조선(단군조선) BC 2333 ~ BC238 2000 청동기 시대 1000 500 철기 시대 400 300 200 100 북부여 BC239-BC58 BC 50 신라 BC 57~935 --------- --------- -------- 0 --------- 고구려BC 37~668 신라에 멸망 백제 BC 18~660 신라에 멸망 AD 50 가락(가야) 42~532 신라에 귀순 100 200 300 400 500 600 650 700 통 일 신 라고려에 귀순 발해 698~926 거란에 멸망 800 850 900 태봉(후고구려) 890~918 고려에 멸망.. 더보기
조선왕조 최초의 기록들 조선왕조 최초의 기록들 1] 성리학 중심의 사회에서 과감하게 탈피하여 최초로 기독교 신자가 된 사람은? 평북 의주 출신인 이성하로서 고종11년에 영국 선교사로부터 세례를 받고 한국최초의 기독교 신자가 되었다. 2] 조선 최초의 천주교 세례교인은 누구인가? 정약용의 매부인 이승훈이 북경에서 그라몽신부에게 세례를 받고 한국 최초의 천주교 신자가 되었다. 3] 조선조 최초로 정승이 된 사람은? 조선개국 일등공신 배극렴이다. 그는 이성계보다 10살이 많았는데 개국후 처음으로 좌정승[문하 좌시중]이 되었다. 4] 조선왕조 도읍지 한성의 최초 한성판윤[서울시장]이 된 사람은? 성석린이 1395년에 초대 한성판윤부사로 임명되는 기록의 보유자가 됐다. 5] 과거급제를 하지 않고 영의정까지 오른 인물은? 황희정승의 아들.. 더보기
조선왕조 최연소의 기록들 조선왕조 최연소 기록들 1] 조선시대 통털어 최연소로 과거에 급제한 사람은? 15세의 이건창으로 1866년[고종3] 강화도 별시문과에 합격했다.[김종서는 16세에 합격] 2] 최연소 장원급제자는 ? 17세의 박호[밀양박씨]는 1584년[선조17] 친시문과에 장원급제했다 [임진왜란때 전사] 3] 무과출신 급제자중 최연소 인물은? 17세의 남이[의령남씨]1457년[세조3] 무과에 장원급제.[유자광의 모함으로 주살됨] 4] 최연소로 세자에 책봉된 인물은? 영조의아들 사도세자는 2세에 세자책봉 되었으나 그만 뒤주속에 갖혀죽는 비운의 주인공이 되었다. 사도세자는 10세에 결혼하여 최연소 결혼기록도 가지고 있다. 5] 최연소로 영의정이 된 인물은? 세종대왕의 손자인 이준[임영대군의아들]으로서 28세때 영의정에 특서.. 더보기
조선 왕조 최다수의 기록들 조선왕조 최다수의 기록들 1] 영의정을 가장 여러번 지낸 인물은? 최석정[전주최씨]으로 서 56세에 영의정이 된후 8번을 지냈다. 그는 소론의 영수이었다. 2] 이조판서를 가장 많이 역임한 사람은? 42세에 이조판서가 된 박종덕[반남박씨]으로서 무려 18번이나 이조판서에 올랐다. 관료들의 인사권을 쥐고 있는 관직으로서 임금의 절대적인 신임이 있어야 하는만큼 그는 공평한 인사에 최선을 다한 인물이다. 3] 당시 수도의 총책임자인 한성판윤[서울시장]을 최다 역임한 인물은? 이가우[연안이씨]로서 34세에 급제한후 열번을 한성판윤에 올랐다. 4] 판서[장관]직을 통털어 가장 많이 지낸 인물은? 박종래로서 이조, 예조, 병조, 형조, 공조 등 5조판서를 돌아가며 총 15회 지냈다. 5] 사법기관의 장이었던 사헌부.. 더보기
조선 왕조 최장기 기록을 가진 신하들 각종 최장기 기록들 1] 가장 오랫동안 벼슬에 있었던 인물은 ? 조선말엽의 정원용 으로서 20세에 급제하여 마지막 영의정을 지낼 때까지 72년간을 관직에 있었으며 그는 지극히 검소하여 청백리에 올라있기도 하다. 2] 호조판서를 최장기간 지냈던 인물은? 영의정 정태화의 후손인 정홍순으로 무려 11년간을 호조판서로 재임한 유일무이한 인물. 그는 재정문제에 대한 당대 제일인자의 명성을 날렸다. 3] 벼슬의 꽃인 홍문관 대제학을 최장기간 역임한 인물은? 당대의 대문장가 서거정[달성서씨]로 23년간을 재임했다. 4] 가장 여러대의 임금을 보좌한 사람은? 태종, 세종, 문종, 단종, 세조, 예종, 성종,까지 7대의 임금을 보좌한 김세민[경주김씨]으로 70년동안 봉직하면서 7대의 임금을 보좌하는 대기록을 남겼다. 5.. 더보기
조선 왕조 역대 왕들의 재미있는 기록 모음 조선왕조 역대 왕들의 기록 1] 가장 오래 세자였던 임금은? 조선 마지막 왕인 순종 임금은 2세때에 세자로 책봉되어 32년간을 세자신분으로 지냈다. 2] 죽어서 왕이 된 인물은? 조선조에는 죽은후에 왕으로 추존된 인물이 다섯명인데 * 덕종은 세조[수양대군]의 아들로서 세조1년에 세자로 책봉되었으나 즉위전에 죽었다 인수대비의 남편이며 슬하에는 월산대군과 성종, 명숙공주 등 3명을 두었다. * 원종은 선조의 5남으로 1627년에 왕으로 추존됨. 인조 등 4남을 둠. * 진종은 영조의 아들로 사도세자와 4촌. 6세에 세자로 책봉되었으나 즉위전에 죽었다. 양자인 정조가 즉위하자 진종으로 추존. * 장조는 유명한 사도세자로서 영조의 둘째아들이며 정조의 아버지. 부인은 홍봉한의 딸인 혜경궁 홍씨. 당파싸움의 희생양.. 더보기
조선의 건국 - 태조 이성계 조선의 건국자로 이름은 성계, 호는 송헌이다. 등극 후에 이름을 단(旦), 자를 군진(君晋)으로 고쳤다. 화령부(和寧府: 함경도 영흥)출생. 자춘(子春)의 둘째아들이며, 어머니는 최씨(崔氏)이다. 비는 신의왕후 한씨(神懿王后 韓氏)이고, 계비는 신덕왕후 강씨(神德王后 康氏)이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담대하였으며, 특히 궁술(弓術)에 뛰어났다. 1. 집안 내력 그의 선조 이안사(李安社)가 원나라의 지배 아래 여진인이 살고 있던 남경(南京:간도지방)에 들어가 원나라의 지방관이 된 뒤로부터 차차 그 지방에서 기반을 닦기 시작하였다. 이안사의 아들 행리(行里), 손자 춘(椿)이 대대로 두만강 또는 덕원지방의 천호(千戶)로서 원나라에 벼슬하였다. 이자춘도 원나라의 총관부(摠管府)가 있던 쌍성(雙城)의 천호로 있었.. 더보기
고려시조 - 태조 왕건 ■ 출생과 초기의 이력 성은 왕(王). 이름은 건(建). 자는 약천(若天). 아버지는 금성태수 융(隆)이며, 어머니는 한씨(韓氏)이다. 송악(개성)에서 출생하였다. 후삼국시대에 궁예(弓裔)가 한반도 중부지방을 석권하고, 철원에 도읍을 정하자 궁예의 부하가 되었다. 왕건은 궁예의 명령으로 군대를 이끌고 군사활동을 하여 큰 공을 세웠다. 즉, 900년에는 광주(廣州), 충주, 청주 및 당성(唐城: 지금의 南陽), 괴양(槐壤: 지금의 槐山) 등의 군현을 쳐서 이를 모두 평정, 그 공으로 아찬(阿飡)이 되었다. 903년 3월에는 함대를 이끌고 서해를 거쳐 후백제의 금성군(錦城郡)을 공격, 이를 함락시켰다. 그리고 그 부근 10여개 군현을 쳐서 빼앗아 나주를 설치, 군사를 나누어 이를 지키게 하고 돌아왔다. 이해.. 더보기
발해 - 고왕 대조영 본명 대조영(大祚榮). 고구려 유민으로 고구려 멸망 뒤 당나라의 영주(營州)지방에 그 일족과 함께 옮겨와 거주하였다. 696년 이진충(李盡忠)· 손만영(孫萬榮) 등이 이끈 거란족의 반란으로 영주지방이 혼란에 빠지자, 대조영은 말갈추장 걸사비우(乞四比羽)와 함께 그 지역에 억류되어 있던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을 각각 이끌고, 당나라의 지배에서 벗어나 동으로 이동하였다. 당나라는 대조영에게 진국공(震國公)을, 걸사비우에게는 허국공(許國公)을 봉하고 회유하여 당나라의 세력 아래 다시 복속시키고자 하였으나 그것을 거부하였다. 당나라는 거란군을 격파한 뒤, 성력연간(聖曆年間, 698∼699)에 추격군을 파견하였다. 당나라에 항복한 거란족 출신의 장군 이해고(李楷固)가 이끈 당나라 군사가 공격해오자, 걸사비우의 말갈..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