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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농민운동

동학농민군의 1차 봉기 파일 1. 동학의 교세 확장 지도 2. 1880년대 이후 농민 반란의 추이 3. 전봉준 사진(가운데) 4 사발통문 5. 붙잡힌 동학농민군 더보기
(한국근현대사 5) 1860년대 이후 계속된 위정척사 운동의 흐름 1860년대 이후 위정척사는 계속되었다. 1. 위정척사란? 흥선대원군이 18363년부터 집권하여 안동김씨의 노론 세도 가문을 축출한지 10년... 1873년 민씨가 정권을 잡으면서 대원군이 실각하고 우리나라는 본격적인 개화정책을 실시합니다. 이전 포스트에서 설명했듯이 개화정책은 강화도조약을 맺으면서 본격적으로 논의되었고, 조선책략이 유입되면서 구체적으로 실행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개화 사상을 우리 전통 유교주의자들은 어떻게 받아들였을까요? 당연히 반대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반대한 이유는 아무런 근거없이 서양을 싫어해서도, 조선 왕조를 지탱하는 신분질서의 하나인 성리학을 수호하기 위해서만도 아니였습니다. 물론 통상요구가 조선의 신분제와 사회질서의 근간을 흔들기는 하지만, 조선의 유학자들은 그것을 .. 더보기
동학농민운동 폐정개혁안 12개조 및 해석 폐정개혁 12개조 ① 동학도는 정부와의 원한을 씻고 서정에 협력한다. ② 탐관 오리는 그 죄상을 조사하여 엄징한다. ③ 횡포한 부호를 엄징한다. ④ 불량한 유림과 양반의 무리를 징벌한다. ⑤ 노비 문서를 소각한다. ⑥ 7종의 천인 차별을 개선하고 백정이 쓰는 평량갓을 없앤다. ⑦ 청상 과부의 개가를 허용한다. ⑧ 무명의 잡세는 일체 폐지한다. ⑨ 관리 채용에는 지벌을 타파하고 인재를 등용한다. ⑩ 왜와 통하는 자는 엄징한다. ⑪ 공사채를 물론하고 기왕의 것을 무효로 한다. ⑫ 토지는 평균하여 분작한다. 참고글 : 이 사료의 내용 분석은 결국 성격을 띈 운동이었다라는 것을 보여준다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신분제 폐지, 과부 재가, 문벌 타파, 교정청의 설립 등은 갑오개혁에 영향을 주며, 농민의 입장이 .. 더보기
전봉준의 동학 농민 운동 격문 및 해석 전봉준의 격문 우리가 의(義)를 들어 여기에 이르렀음은 그 본의가 결코 다른 데 있지 아니하고, 창생을 도탄 중에서 건지고 국가를 반석 위에다 두자 함이라. 안으로는 탐학한 관리의 머리를 베고, 밖으로는 횡포한 강적의 무리를 쫓아 내몰고자 함이라. 양반과 부호 앞에서 고통을 받고 있는 민중들과 방백과 수령의 밑에서 굴욕을 받고 있는 소리(小吏)들은 우리와 같이 원한이 깊은 자이라. 조금도 주저하지 말고 이 시각으로 일어서라. 만일, 기회를 잃으면 후회하여도 미치지 못하리라. - 전봉준 격문(1894. 3.) - 일구(日寇)가 구실을 만들어 병사를 움직여 우리 임금님을 핍박하고 우리 국민을 어지럽게 함을 어찌 그대로 참을 수 있단 말이오.…지금 조정의 대신은 망녕되고 구차하게 생명을 유지하며, 위로는 군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