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사에 나오는 한국사 자료들 - 삼국지 동이전 동이서문 편
서경에 말하기를, [동쪽은 바다에 닿았고, 서쪽은 유사에 연접되었다] 했으니, 그 구복의 제도를 말할 수가 있다. 그러나 이 거친 국경 밖에도 사람들이 거듭 이르렀으니 사람의 발자취나 수레바퀴가 가 보지 않고서는 그 나라의 풍속이 우리와 어떤가를 알 길이 없다. 우나 주때로부터 서융에서는 백환을 바쳤고, 동이에서는 숙신의 납공이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여러 해 만큼씩 있던 일이었으니 그 땅이 이같이 멀었던 것이다. 그 뒤에 한나라에서 장막을 서역으로 사신을 보내어 황하의 끝까지 더듬어 여러 나라를 지내가지고 드디어 도호를 두어 나라를 다스리게 했으니 이렇게 한 뒤에 비로소 서역의 일이 보존되었다. 그래서 지금에 와서 사관들이 그 지방 일을 자세히 쓸 수가 있는 것이다. 위나라가 일어나자 서역들이 비록 다 오지는 않았지만, 그 중에 큰 나라들로 구자, 우치, 강거, 오손, 소륵, 월씨, 선선, 거사 같은 나라들은 해마다 조공을 바쳐 와서 옛날 한나라 고사와 같이 했다. 그러나 공송연이 그 아비, 할아비와 함께 삼대 동안 요동을 차지하자 천자는 그 지방을 절역이라 해서 이곳은 바다 밖의 일로 치고 드디어 동이와 꿇고 지내니 이래서 동이 마저 굴복하게 되었다. 그 뒤에 고구려가 또 중국을 배반했다. 이에 또 군사를 내어 그들을 칠제 거리가 워낙 멀어서 오환골도를 넘고 옥저를 지나 숙신 지방을 밟고 보니 동쪽으로 큰 바다에 임했다. 늙은이들이 말하기를, 이곳에는 얼굴이 닮은 사람들이 해돋이 가까이 산다 하므로 이에 두루 여러 나라들을 돌아보고 그 지방의 법과 풍속을 보니 크고 작은 지방이 각각 구별되어 있고 저마다 이름이 있기로 그것을 자세히 기록했다. 아무리 오랑캐 나라라고는 하지만 그들도 그릇에 음식을 담아 먹고 제사를 지내고 있다. 중국이 예의를 잃자 이들 네 오랑캐 나라에서 예의를 구했기 때문에 여기에 그 나라들의 일을 기록하고, 그 같고 다른 점을 열거하여 이로써 전사의 갖추어지지 못한 점을 보충하려는 터이다.(三國志)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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