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 사상의 이해 - 장자 1

 

'장자' 들어가기

  전쟁을 바라보는 관점은 무엇인가? 전쟁에 승리하기 위해 어떤 이데올로기도, 윤리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소국들의 입장이었다. 고대 철학은 그 경계선에서 출발한다.

 

사상사의 출발점에는 공통적인 현상 한가지가 있어. 그게 뭐냐구?

 

그것은 철학의 출발점이 '도시국가'가 출현하는 '청동기' 시대라는 것이지.

 

먼저 석가모니!!!

 

석가는 인도의 공화정이었던 소왕국의 왕자 출신으로서 소국들의 대립과 거대 왕국과의 마찰이 있던 브라만 시대의 인물이었어.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당시 인도는 제국을 꿈꾸는 브라만 집단과 작은 소국을 꿈꾸는 공화정 집단들이 대립하고 있었지. 스타워즈의 제국과 공화국의 대립처럼 말야.

 

그런데 브라만이든, 공화정 집단이든 웬지 신라시대 귀족이랑 화랑들 같았어. 골품같은 고정적 신분이 있었지. 브라만교에는 카스트 제도 있는거 알지? 공화정에도 신라의 화백회의처럼 만장일치 귀족 회의가 있었지.

 

다음 공자!!!

 

공자와 장자, 한비자와 같은 사상가들 역시 춘추전국시대라는 소용돌이 속에서 공동된 고민을 했지. 도대체 어떻게 하면 인간이 사는 세상이 정의로운 세상이 될 수 있을까? 밥먹고 그 고민만 했는지 후대에 남긴 어록도 무지 많아.

 

그런데, 그 정의로움을 법에서 찾는지, 도덕에서 찾는지, 자연에서 찾는지, 공리에서 찾는지는 각자 답이 달랐어. 도시국가가 많아서 밥먹고 전쟁하고, 사람 죽고, 또 전쟁하고, 통일한다고 설치고.... 

 

이런 지옥같은 무법천지인 세상을 법으로 다스릴지, 윤리로 다스릴지, 자연에서 답을 찾을지는 생각하는 사람맘 아니겠어? 그러니 철학이 발전하는거지... 철학과 과학기술은 전쟁의 참혹함에 비례해서 팍팍~ 발전한다는 말이 괜히 나온게 아냐.

 

 

 

다음, 소크라테스!!!

 

소크라테스와 같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도 도시국가가 가장 융성했던 시기의 인물이었어. 단지, 그리스 철학의 융성은 다른 지역과 한가지 다른 점이 있었지. 그건 또 뭐냐구?

 

다른 지역의 철학자들이 난세를 걱정했다면, 아테네의 철학자들은 다른 소국을 점령하면서 쌓인 부를 활용하면서 철학이 성장했다는 거야.

 

소크라테스의 제자인 플라톤은 이렇게 말했어. 정치하는 사람, 장사하는 사람, 농사짓는 사람 등 신분이 있고 역할이 있어야 세상이 돌아간다고. 그래서 아테네의 고귀한 신분들은 식민지 소국 노예와 상인들 덕에 철학에 집중할 수 있다고 말이야. 그런걸 철인정치론이라고 하는데, 이러니 있는 넘들이 모두 싸잡아서 함께 욕먹는거지, 뭐... 철학자가 이러는데, 다른 지배층은 오죽하겠어?

 

 

 

 

그럼 플라톤의 제자는 누구? 그 분도 같은 말을 했겠지?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길,

 

전쟁이 우리의 승리로 끝나고, 전리품인 노예가 끊이기 않기 때문에 철학자들은 맘놓고 철학을 고민할 수 있다고 했을 정도야. 현자인 아리스토 아저씨도 노예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니, 고대인들이 생각하는 국가관이 뭔지 알겠지?

 

자, 그럼 그 제자도 한번 살펴보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가 유명한 알렉산더 대왕인거 알지?

 

매듭 푸는 문제 던져주면 칼로 매듭을 잘라버린다는 그 월드헤비급 챔피언.... 세계 정복왕 말야. 알렉산더는 정복을 거듭하면서 정복지를 서로 연결하는 알렉산드리아라는 도시를 수십개를 만들었어. 그리고 그 도시도시를 거쳐서 희귀한 동양의 물품들이 스승인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도착하는 시스템을 만들었지.

 

아리스토텔레스는 그것들을 부수고, 자르고, 해부하고... 또... 음.... 독극물도 넣어보고 하면서 과학을 발전시켰던 거야. 그가 여러 방면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긴 건 헌신적인(?) 스승님의 지원이 있었던 거지. 지금이라면 독일이나 일본의 생체실험이라고 난리가 났겠지만, 당시에는 엄연한 과학발전 취급을 했던 거지, 뭐....

 

말했잖아... 난세에 철학과 과학이 발전한다고...

 

 

 

 

자, 이제 청동기 소국 시대에 철학들이 융성했던 것인지, 그 이유 중 중요한 몇가지만 간추려서 정리해 볼까?

 

첫째, 문자라는 것이 존재했던 시기와 청동기 후기가 일치한다는 점이 중요해.

 

문자가 존재하기 이 전에도 수많은 철학이 존재했겠지만, 그 기록이 명확하지가 않잖아? 내가 열살 때 상대성 이론을 발견한 적이 있으면 뭐해? 커서 기억도 안나고 기록해놓은 것도 없는데.... 같은 원리야.

 

초기의 상형문자가 있긴 했어. 그런데, 그 수준이 초기 문자라서 초등학생 일기 수준이야. 알지? 아침에 밥먹었다... 친구랑 싸웠다... 엄마가 미워한다... 아빠가 사랑한다.... 선생님이 존경스럽다...

 

 

 

 

당연히 기록을 남기는 것에만 급급했기 때문에 철학적인 생각은 부족했지. 그리고 그 정신없는 기록을 당대 혹은 후대인들이 해석하는 것도 어려웠어.

 

그럼, 철학이 되지 못한 초등 7세 수준의 기록들은 어떻게 이해했을까?

 

초딩들이 사용하는 글쓰기 방법이 있잖아. 엄마한테 혼났는데, 그래서, 아빠한테 갔는데, 그랬더니, 아빠가 칭찬해주는데....

 

그거야. 철학이 되지 못한 이야기들은 접속사를 중심으로 전승되거나 이야기로 엮기게 되지, 그래서 그 이야기들이 뼈대를 잡고 스토리가 되면 신화로 정리되는 거야.

 

홍수가 났어. 그래서.... 다 죽어가... 그래서... 신에게 빌었어... 그랬더니? 다 죽지 말라고 방주 만들어 주더라....

 

뭐 이런 이야기가 성립되는 거지. 그래서 홍수 설화는 수메르 신화, 페르시아 신화, 구약성경 등 같은 지역의 모든 설화에 비슷하게 다 등장하잖아. 접속사만 바꿔서 말이야.... 그래서가 그러므로로 바뀌고, 짜라투스트라가 노아로 이름만 바뀌는 정도?

 

 

둘째, 청동기 시대의 국가가 소국가라는 것에 주목해야해. 

 

거대한 중앙집권적인 국가는 국가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 하나의 '철학' 만을 인정하지. 그것이 철학이든 종교든 국가에게 유리하다면 그거 하나면 된거야. 별로 도움되지 않은 민중철학이나, 윤리철학이 국가철학에 도전한다면? 그건 이단, 반역, 마녀, 빨갱이... 등등의 수식어를 붙여서 다 처단해야지, 뭐....  

 

그래서 거대한 국가는 이데올로기에 집착하게 되는 거야.

 

 

 

하지만 다양한 소국가들이 등장해서 자웅을 겨루는 시기에도 하나의 이데올로기만 존재해야 할까? 아니지...  당장 나라가 망할지도 모르고, 전쟁이 날지도 모르는데, 국가의 생존에 유익하다면 어떤 철학과 사상이라도 스카웃 해와야지.

 

당장 코리안 시리즈 우승해야 하는데, 이종범이 광주출신이라고 삼성이 안데려가고, 이승협이 대구출신이라고 기아가 버려야 하나? 돈이든, 명예든, 지도자 자리 하나 던져주든.... 무조건 데려와서 우승하고 나중에 생각해야 할거 아냐? 삼성이 김응룡, 선동열.... 데려가서 우승도 몇번하고, 이제는 지역 출신 감독 쓰잖아.

 

그런데, 팬들은 그렇게 생각 안해. 감히, 이승엽이 광주가서 기아 감독한다고 하면?

 

국민타자고 뭐고 광주에서는 난리날껄? 광주가 가진 명분과 역사가 있잖아...

 

 

 

철학 역시, 그 두가지를 다루고 있어. 소국이 살기 위해 누구든 스카웃하고 부국강병을 한다는 국가관을 지켜야 하면서도, 국민정서와 명분을 따지면서 윤리의식을 생각하는 것.... 그거야.

 

장자를 제일 먼저 소개하는 이유도 그거야. 그의 철학이 실리과 명분, 즉 국가관과 윤리의식이라는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거든. 

 

셋째, 청동기 중기 이후 대대적인 정복 전쟁과 연관이 있지.

 

청동기 시대쯤 되면 생산력이 늘어나서 어느 정도 재력을 갖춘 사람이라면 굶어죽지는 않을 수준이 되었어. 뭐 혹시나 굻어 죽을 것 같으면 무기 들고 나가서 약탈하면 되잖아...

 

생산력이 증가하면서 사유재산이라는 개념이 생겼어. 그러자 남의 것을 빼앗아 자신의 욕심을 채울 수 있다는 이기심도 점점 증가했지.

 

전쟁은 수많은 인명을 살상하였고, 가족을 잃은 사람들은 욕심이 생명보다 소중한가라는 근본적이면서도 당연한 의문을 던지기 시작한거야. 

 

 

 

 

그러자 고대 철학자들도 두 흐름으로 나눠졌지.

 

죽이고 빼앗아서 국가가 잘먹고 잘살아야 백성이 잘산다는 부국강병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등장했고, 일단 백성이 안죽어야 농사를 짓던 세금을 내던 할테니 윤리문제부터 집중하자는 사람들도 등장했어. 누군가는 이 두가지를 함께 생각했고, 누군가는 어느 하나에 집중하기도 했지.

 

부국강병을 이루는 방법에서 학파가 여러개로 나눠졌고, 윤리문제를 해결하는 근본 원리에 따라 여러 분파가 생겨서, 수많은 사상들이 '내가 옳소' 라면서 싸우게 되는 거야. 그래서 혼란기에는 철학의 전성기가 열리는 것이지.

 

자, 생각해보자.

 

21세기는 국가관이 윤리의식을 지배하고 있는 국가주의 사회야.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들은 자원을 빼앗기 위해 약소국을 침략해. 그런데 솔직하지 못하지. 

 

침략 명분이 세계평화나 종교윤리, 나쁜 피 제거와 같은 따분한 이데올로기 이야기거든. 뭐,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야? 이쁜 수영복 입었다고 자랑질 한 뒤에 옆의 친구 탈락시키고는, 세계평화를 위해 살겠다고 30년째 외치는?

 

그 뿐인가?

 

에너지를 얻고 문명개발에 박차를 가하려는 국가의 노력은 자국의 땅을 황폐하게 만들고, 자연의 질서를 역행하고 있어.

 

지구온난화와 기상이변.... 가장 심한 곳이 가장 개발이 화려(?)했던 미국 남부잖아. 툭하면 몇백명 이상 사망자가 나오는 허리캐인이 속출하는... 거기에 요즘은 도시 개발의 후휴증으로 도심 곳곳에 발생하는 싱크홀까지 3종 세트가 다 등장했어.

 

도시에 수도관, 가스 등 매설하느라 대부분의 지하가 텅 비어있는 공간이 많아. 거기에 균열이 가면 갑자기 거대한 홀이 생기면서 지하 30미터 짜리 구멍이 뻥 뚫리는 거지.... 잠자다가 갑자기 30미터 아래로 쏙~ 떨어져서 실종되는 미국인들이 많아지고 있잖아.

 

 

 

 

인간이 자연을 몸살나게 하고 있었지만, 자연은 조용히 기다렸지. 이제 인간에게 복수를 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는거야.

 

장자는 이렇게 말했어.

 

인류가 스스로 생존하기 위해 위장하고 있는 이데올로기인 '개발'은 결국 대자연의 복수를 불러온다고...생존은 개발이 아니라 순응에서 시작한다고...

 

자신을 지키기 위해 남과 싸우고 남의 것을 강탈하려는 대립은 결국 질서의 파괴를 가져오고 모두를 파멸로 이끌 뿐이야.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대립보다는 '상생'을 찾아야 하고, 하나의 길만 달리려는 '획일성' 보다는 자연 속에서 함께 어울릴 수 있는 '다양함'을 인정해야만 자연의 복수를 피할 수 있는 거야. 

 

그걸 모르는 어리석인 인간들의 행동은 모두 무지에서 비롯되는 거야.

 

현대 사회의 환경파괴와 생태계 붕괴, 인간 존엄성의 파괴는 결국 환경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다고 장자님, 아니 장느님이 말씀하신거지. 장자가 21세기에도 중요한 이유는 이 때문이야. 

 

 

 

이제 장자에 대해 본격적으로 이야기 해볼까?

Posted by 히스토리아 기업부설연구소

돈으로 보는 한국사 (1)

인류가 화폐을 사용하기 시작하다.

1. 인류가 돈을 사용하기 시작하다.

오늘 이야기 하려는 부분은, <돈>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특히, 개화기 이후 일제시대부터 광복이후 현대사회까지의 돈들을 보면서 <돈>으로 역사를 바라보려고 합니다.

자, 그럼 돈이라는 것이 처음 등장한 것은 언제일까요?

일반적으로 <화폐>라는 개념이 처음 등장한 곳은, 세계 4대 문명 지역이었습니다. 즉, 최소한 청동기 시대이후, 돈이라는 개념이 등장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화폐라는 것이 등장하려면, 일단 화폐를 만들 수 있는 최소한의 마을은 존재해야 하고, 그 마을들간에 장사가 이루어져야 하겠죠? 또, 장사를 할 때, 화폐를 사용한다는 것은, 마을 전체를 세력권으로 삼아서, 강제적으로 화폐를 써라... 라고 말할 수 있는 세력이 존재해야 합니다.

따라서, 화폐라는 것을 사용한 지역을 보면, 역사상 최초의 문명지역이었던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국가들, 황하문명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들, 이집트 지역과 소아시아 국가들, 그리스와 로마 문명 지역에 고루 분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답니다.

그럼, 돈을 사용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가 당시에 살아보지 않아서 확실한 이유는 모릅니다. 일반적으로 보면, 인류는 국가가 생기기 이전부터, 서로에게 필요한 물품을 물물교환 하였을 것입니다. 콩과 물고기를 바꾸기도 했을 것이고, 동물 가죽과 기름을 바꾸기도 했겠죠. 생활에 필요한 물품이 서로 부족했기 때문에, 거래를 통해 서로 원하는 물품을 얻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세계 4대 문명에서, 문명, 도시, 국가라는 것이 출현하면서, 이러한 물물교환 체제는 변화를 겪게 됩니다. 보통은 단순히 먹고 살기 위해 물품을 교환하였겠지만, 일부 지배자 계급은 재산을 축적하기 위해 경제활동을 시작하게 됩니다.

재산을 축적할 목적으로 물건을 모을 때, 물물 교환은 한계에 부딪히게 된답니다. 부피가 크거나, 빨리 썩어 버리는 물건은 물물교환으로 적합하지 않고, 보관이 용이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조개껍질과 같은 유사화폐를 사용하기도 하고, 금이나 보석과 같은 광물을 교환 수단으로 이용하기 시작했죠.

특히, 조개껍질은 단단하면서도 모양이 아름답기 때문에, 기원전 3천년전부터 화폐로 이용되었습니다. 한자에서 돈을 뜻하는 단어에는 대부분 조개 패(貝)자가 부수로 들어가 있는 있답니다. 그런데, 이 조개화폐는 메소포타미아 지역부터, 중앙아시아, 중국, 한반도까지 널리 발견됩니다. 고대에 일반적으로 쓰인 화폐였다는 증거죠. 특히, 기원전 7세기경 낙타 대상인들은 조개 껍데기를 실이나 가죽으로 100개씩 묶어서 물품 교환에 사용했다고 합니다. 단순히 화폐로만 이용한 것이 아니라, 일정 단위의 화폐로 이용한 것이죠.

하지만 이런 유사 화폐들도 큰 단점이 있었답니다. 먼저 철이나 보석은 멀리 이동할 때 너무 무거웠답니다. 만약 온라인 게임을 하면서, 돈을 모은다고 생각해보세요. 몬스터를 1000마리 때려잡고 아이템을 얻었는데, 그 아이템을 다 들고 다닌다면? 게임에서야 인벤토리가 있지만,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답니다.

또, 돌, 뼈, 조개껍질과 같은 유사 화폐는 오래 이동할수록 파손될 확률이 높습니다. 아름다운 모양을 가치로 하는 화폐일수록 기간이 오래될수록 화폐로서의 가치는 점점 사라지겠죠?

그래서 옛 사람들도 모양이 변하지 않고도 아름다우며, 이동할 때 보관이 용이한 형태와 모양의 화폐를 생각하기 시작했답니다. 그것을 세계 최초로 실현한 사람들이 메소포타미아 지방의 터키지방(리디아인) 사람들이에요.

위 화폐가 바로 최초의 화폐인 일렉트럼 코인입니다. 이 화폐를 만든 왕국은, 메소포타미아 지방의 고대 왕국이었던 리디아랍니다. 이 동전은 천연의 금과 은을 합급해서 만든 것인데, 금 75%에 은 25%를 섞은 합급을 <일렉트럼>이라고 불렀답니다. 이 화폐는 달걀모양의 타원형으로, 실제 크기는 강낭콩만하답니다. 화폐에는 정복전쟁을 상징하는 사자가 새겨져 있고, 금속의 무게와 비율이 적당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인장이 찍혀있습니다.

이 화폐를 본 고대 그리스인들이, 주조 방법과 용도에 감탄해서 화폐를 만들기 시작했고, 훗날 로마까지 화폐 주조법이 유행하였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동전(코인 : coin)은 리디아 화폐를 본따 만들었지만, 둥근 모양과 다양한 상징물을 넣어서 서양 동전의 원형이 되었답니다. 이들은 리디아인의 일렉트럼 기법을 사용하여 금과 은을 합성해서 동전을 만들었는데, 이 합금을 <호박금>이라고 불렀습니다. 보통, 그리스 로마 신화의 신들과 함께 신성을 상징하는 조류(새), 지배자의 얼굴을 넣었습니다. 이후, 헬레니즘 시대가 되면서 알렉산더 대왕 사후, 각국의 지배자들이 스스로를 찬양하는 동전을 많이 만들었답니다.


이 헬레니즘의 화폐들이 로마로 이어지면서, 로마 제정시기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자신의 얼굴을 화폐에 집어넣으면서 로마 화폐가 황제에 의해 공식적으로 유통됩니다. 물론, 황제가 바뀔 때마다 황제 스스로가 자신의 얼굴을 화폐에 집어 넣으면서 화폐의 숫자는 점점 늘어나게 되었죠.

그런데, 로마 제정이 점차 문란해지고, 게르만 용병들이 늘어나는 시기가 되면 화폐 역시 문란해진답니다. 화폐가 민망해지는 정도로 로마 사회가 점점 타락해가는 것을 수준을 알 수 있답니다.

자, 위 화폐는 로마의 공식 화폐는 아니지만, 일부지역에서 공공연하게 유통되었답니다. 로마가 몰락할 무렵, 군인황제들이 서로 죽이고, 죽이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 때, 이 화폐들이 유통되었죠. 

  우리나라에서도, 전두환과 같은 군인이 정권을 잡았을 때, 3s 정책을 했었죠? 군사정권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을 돌리기 위해, sport, screen, sex를 국가가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정책 말이죠. 로마 사회에서도, 군인 황제 시기에 극도로 사회가 문란해지면서 이런 화폐가 등장할 수 있었답니다.

  이러한 혼란을 정리했던 황제가 바로 <디오클레티니아 누스> 였죠. 이 황제는, 국가의 공식 화폐가 아닌, 식민지(속주)의 문란한 화폐들을 정리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로마는 이미 기울대로 기울어가고 있었죠. 

  로마의 황제 <콘스탄티누스>는 이런 혼란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경건하면서도 문란하지 않은 <기독교인>들을 체제에 끌어들이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밀라노 칙령으로 기독교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콘스탄티노플로 수도를 이전하면서 사회 정화 사업을 하였답니다. 그 결과, 이런 불량 화폐들은 역사에서 사라지게 되었죠.

이야기를 하다보니, 서양 화폐 이야기를 주로 하게 되었군요. 그럼 다음 장에서는, 우리 역사에 등장한 동전과 지폐들을 이야기하면서, 화폐로 알 수 있는 역사 이야기들을 전개해 보겠습니다.

Posted by 히스토리아 기업부설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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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크로스 퀴즈(난이도 :  일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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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 퍼즐

  1. 고려 태조가 옛 고구려 땅을 되찾기 위해 펼친 정책.
  2. 조선 인조시대, 청나라가 조선을 침입하여 벌었던 전쟁. 삼전도의 굴욕과 관련있다.
  3. 고대 폴리스에서 군사적, 종교적 거점이였던 곳. 아테네, 포세이돈 등을 모시던 신전들이 유명하다. 헤라클레스는 이곳에서 12가지 신탁을 받았다.
  4. 도리아인이 중심이 되어 만든, 고대 그리스의 국가. 귀족 중심의 군국주의 체제로 **** 식 교육은 강압적인 군사문화를 상징한다.
  5. 고대 그리스인들은 자신을 모두 영웅인 헬렌의 자손이라고 생각하여 스스로를 **** 라고 불렀다.
  6. 고대 그리스와 페르시아 간의 전쟁.
  7. 스파르타, 아테네 등 폴리스를 이룬 소국 국가들을 묶어서 표현한 용어. 페르시아 전쟁 때 페르시아와 전쟁을 치루었으며, 스스로를 헬레네스라고 불렀다.
  8. 고대 그리스의 소피스트 철학자. 토끼는 앞선 거북이를 절대 추월할 수 없다는 논증법으로 유명하다.
  9. 소크라테스의 제자. 철인정치론, 국가론, 이데아론 등이 유명하다
  10. 페르시아 3차전쟁 때, 그리스의 병사가 이 전투에서 이긴 후, 약 40km를 달려서 승리를 알리고 죽었다고 한다.
  11.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와 스파르타간의 전쟁. 이후 폴리스간의 대립과 분쟁이 계속되었다. ****** 전쟁.
  12. 고대 그리스의 12신을 모시던 아크로폴리스가 있던 지역을 일컫는 말. ****의 12신이라고 부른다.
  13. 삼국지에 나오는 유비는 이 사람을 모시기 위해 3번을 찾아가 삼고초려를 했습니다.
  14. 상대적 진리를 주장했던 그리스의 궤변학파. 웅변과 수사학을 중시했으며, 제논 등이 유명하다.
  15. 최제우가 창시한 종교
  16. 알렉산더 대왕의 스승. 72개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서 객관적이고 실증적인 자료를 받아, <물질은 질량에 내재한다>는 객관적 진리를 입증하였다. 중용과 행복론의 철학을 추구하였다.
  17. 개화기에 우리 나라 바다 근처에 나타난 서양 배를 이르는 말

세로 퍼즐

  1. 병자호란의 치욕을 씻기 위해 청나라를 치려고 한 효종 임금의 정책
  2. 1592년부터 1598년까지 일본에 2차에 걸쳐 조선을 침입한 전쟁
  3. 일리아드, 오디세이의 저자
  4. 의학의 아버지. 의사 윤리 강령은 오늘날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그리스의 의학자.
  5. 고대 그리스에서, 산지가 많아 각각 흩어져 있던 촌락 도시를 일컫는 말
  6. 도편추방제를 제정하여 아테네 민주정치의 기틀을 다진 인물
  7. 고대 아테네의 수호여신인 아테나 여신을 위해 만든 신전
  8. 조선시대, 상평통보와 같은 동전을 부르는 말입니다.
  9. 페르시아 전쟁을 승리하면서, 고대 아테네 민주정치의 전성기를 이끈 지도자. 수당제, 공직추첨제 등의 직접 민주주의 방식이 유명하다.
  10.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에서 시민들이 회의를 하고, 시장을 열기도 했던 광장. daum 사이트에도 토론 공간을 이렇게 부른다.
  11. 고대 그리스인들은 자신들의 동족(헬레네스)와 다른 이방인을 이렇게 불렀다.
  12. 고대 그리스 본토에서 발달한 청동기 문명. 크레타를 정복하고, 트로이 전쟁에서 승리하였다. 도리아인에게 멸망하였다.
  13. 1970년대, 농촌에서 가난을 몰아내고 농민을 잘 살게 하기 위해 실시한 운동. 국민교육헌장을 외우고, 이 운동의 정신이 곧 국민 정신임을 강조하였다.
  14.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의 저자
  15. 고대 그리스인들이 동족의식을 과시하기 위해 4년에 한번 열었던 민족 축제. **** 제전
  16. 그리스 신화의 주신. 독수리와 번개창이 유명하다.
  17. 조선시대, 임진왜란 이후, 받은 자의 이름을 기재하지 않은 관직임명장이 돈을 주고 거래되었습니다. 이것을 *** 이라고 합니다.
  18. 미케네 문명에게 멸망한 고대 소아시아 문명. 목마를 탄 병사들이 이 문명을 멸망시켰다는 ***의 목마 이야기가 유명하다.

 

Posted by 히스토리아 기업부설연구소
10 그리스 문화와 오르픽교
1 에게문명
11 그리스의 건축양식
12 그리스의 역사와 문학
13 자연철학과 인간철학
14 소크라테스와 제자들
15 알렉산더 제국의 성립
16 헬레니즘과 문화
17 로마 공화정과 클리엔테스
19 공화정 시민권의 확대
2 폴리스의 성립
20 포에니 전쟁과 공화정의 붕괴
22 옥타비아누스와 오현제
23 제정로마의 위기
24 디오클레틴과 콘스탄틴
25 서로마의 멸망
26 로마의 문화
27 로마의 크리스트교
28 크리스트교와 이단논쟁
3 평민들의 성장
4 식민운동과 드라콘의 법전
5 솔론과 클레이스테네스
6 데모스와 새로운 시민개념
7 페르시아 전쟁과 페리클레스
8 스파르타의 민주정치
9 펠레폰네소스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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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의 예술과 건축양식

1. 그리스의 예술과 건축양식

그리스의 예술을 핵심으로 설명하면 <신전중심의 건축 양식>이라고 정리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는 수많은 신전들이 았으며, 이 신전들은 그리스인 특유의 <조화와 균형>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신전으로 파르테논 신전이 있고, 아테네 페이디아스의 아테네 여신상도 유명합니다. 또 아테네에는 수많은 도자기도 출토됩니다. 그러나 이 사이트가 역사전문 사이트인만큼 역사와 관련된 건축 양식만 살펴보겠습니다. 왜냐면, 그리스의 건축양식이 훗날 유럽의 유명한 건물의 건축 양식들에 큰 영향을 주거든요.

그럼 그리스의 건축양식을 보겠습니다. 그리스 예술에서 그리스의 신전건축양식은 <도리아식>, <이오니아식>, <코린트식> 양식으로 세분화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건축양식을 나누는 기준은 원주(엔타시스), 주두(기둥머리)를 기준으로 나눕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걸 자세히 설명하면 미술역사가 되 버리므로, 최대한 줄여서 설명하겠습니다. 일단 용어부터 정리해보죠.

원주(엔타시스) : 기둥을 말합니다. 이 기둥이 두꺼운가, 길이가 긴가에 따라서 양식이 나뉩니다.

주두(기둥머리)  : 기둥 머리를 말합니다. 이 기둥머리가 어떤 모양인가에 따라서 양식이 나뉩니다.

자, 그럼 원주, 주두의 개념을 알았으니, 그 어렵다는 고대 건축양식을 한번에 정리해 봅시다.

1. 도리아식(도닉식) : 위 그림의 왼쪽 양식을 말합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이 양식은 주두가 단순하여 별 문양도 없고, 장식이 없습니다. 아래 파르테논 신전은 정말 심플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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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 도리아식 건물 : 파르테논 신전

2. 이오니아식 : 위 그림의 오른쪽 양식입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기둥이 가늘고 주두 모서리에 간단한 소용돌이 양식이 있습니다. 아래 그림을 보면 4개의 기둥 위쪽에 각각 장식이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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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니아식 신전 : 아테나 여신의 신전

3. 코린트식 : 코린트 양식은 이오니아식에다가 나뭇잎 모양을 추가한 것입니다. 그냥 이오니아식에 포함되기도 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코린트식 양식 : 올림피아 신전

이런 그리스식 양식들은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은 원주(기둥)가 모두 엔타시스 양식이라는 점입니다. 엔타시스 양식이란 기둥을 만들 때 홈이 파지고, 기둥 중간부분이 약간 부풀어오른 것을 뜻하는데, 그리스 양식은 이 아주 미세하게라도 엔타시스를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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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의 문화 - 1. 종교부분

1. 그리스 문화는 인간중심적이다?

보통 우리가 교과서로 역사를 공부할 때의 한가지 맹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알기 쉽고, 요약하기 쉽게 딱딱 어느 한가지 현상을 정의내려 버린다는 점입니다. 어떤 사건이 있으면 그 전말을 다 파악하기 보다는 그 사건의 성격은 이거다라고 정의 내리고, 어떤 문화가 있으면 그 문화의 특징은 이거다...라고 정의 내린 후 암기해 버린다는 점이죠. 그러나 어떤 사건도 한 가지 성격으로 규정되지는 않으며, 다양한 사건들 사이에서 맥락적으로 이해해야 진정한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 역사 시간은 너무 짧기도 하거니와, 사회과목에 통합되어 있고, 또 그 내용을 너무 방대하게 잡아놓아서리 학생들에게 사건 전체를 바라보면서 맥락적으로 이해해라라고 부탁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또 교과서 내용이 얼마나 함축적이고, 요약적입니까? 그거 외우기도 바쁩니다. 과목이 몇 개인데.. 국사만 할 수도 업죠..

각설하고, 우리는 보통 그리스 문화를 <인간중심적 문화>라고 규정하고 외웁니다. 일단, 그리스, 로마 신화의 신들부터 인간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죠. 그리고 특히, 오리엔트 지방의 독재적인 문화, 자연중심적인 문화와 대비하기 위해 인간중심적이라는 개념을 많이 이용합니다. 그래서 과연 그리스문화가 인간중심적이기만 할까요? 노노...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그리스인도 내세사상을 믿었고, 신비주의도 많았습니다. 그럼 한 번 그리스 문화를 다양한 각도에서 살펴보도록 하죠.

2. 그리스 문화의 성립과 성격

그리스 문화는 오리엔트 지방의 신비주의적이고, 자연주의적인 성격으로부터 출발합니다. 특히 이집트 문명에서 영향을 많이 받았지요. 하지만, 그 문화를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오리엔트 문화를 <인간주의적>으로 바꿔 받아들입니다. 즉, 오리엔트 신화에서 자연적인 신들은 그리스에서 인간적인 신들로 바뀝니다. 오리엔트와는 사회적 구조가 다르기 때문에 완전 다른 성격의 문화를 창출하기도 합니다.

쉽게 말하면, 그리스 지역은 오리엔트와는 달라 자유로운 환경을 특징으로 합니다. 폴리스 자체가 독립적이었기 때문에 이 곳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개성을 억제하기 보다는 표출하는 것에 더 익숙해져 있습니다. 왕이나, 중앙권력이 상대적으로 느슨했기 때문이죠. 가장 중요한 것은 <노예제도>라는 제도가 존재하였다는 점입니다. 이집트의 파라오는 국가적 <공납노예>를 소유했기 때문에 국가중심으로 사회운영이 이루어지는 것에 반해, 그리스는 각 개개인이 노예를 소유함으로서 개개인이 생산에서 해방되게 됩니다. 즉, 일은 노예가 하고, 시민은 여가생활, 문화생활을 추구하는 자유로운 사회가 창출된 것이지요.

따라서 그리스인들은 아주 개성적이면서도 다양한 문화를 추구합니다. 어떤 면에서는 인간중심적이면서 합리적인 문화, 어떤 면에서는 현실적이면서 독창적인 문화, 또 어떤 면에서는 정열적이면서도 신비주의적 문화, 또 어떤 면에서는 종교적이고 내세적인 문화가 공존하는 곳이 바로 그리스 문화입니다. 우리는 이 그리스 문화가 이집트가 갖는 신비주의적이고 내세적인 문화를 포함하면서도,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문화를 새로 창출했기 때문에 <인간중심적>이라는 말을 더 강조하는 것입니다. 사실, 그리스문화는 인간중심적이라고 부르기보다 <인간의 다양한 면을 포괄하는 전체성>을 강조하는 문화라는 말이 어울립니다.

이 그리스 문화는 유럽 고전문화의 기본틀을 만드는 과정이었고, 이러한 성격의 그리스 문화가 로마로 유입되며서 <고전문화의 완성>, <유럽문화의 호수>를 이루게 되는 것이지요.

그럼 이렇게 다양한 측면을 가진 그리스 문화를 분야별로 한번 볼까요?

3. 종교 부분 - 오르픽교라는 특이한 종교가 있었다.

종교 부분을 보면 그리스 문화의 다양성을 한번에 볼수 있습니다. 그리스는 일단 고대 사회 대부분이 그렇듯이 다신교 사회입니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신관이나 제사장이라는 신의 매개자의 역할이 축소되어 있고, 고대 종교들에게서 보이는 경전이 없습니다. 즉, 틀에 박히지 않은 자유로운 종교라는 점이지요. 각 폴리스의 성격에 따라 신이 창조되기도 하고, 신의 성격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따라서 신들 자체가 인간의 감정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신전인 델피신전은 아폴로의 예언과 신탁을 존중하는 신간으로 신에 대한 경외감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 신 자체가 인간적이고 현세적이라서, 예술, 문학 등의 소재로 활용될 수 있는 예술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 그리스에서 중요한 사상중에 하나가 대지모 숭배입니다. 이것은 범그리스적인 대지의 여신 테메테르를 숭배하는 것입니다.

중요한 고대 종교중의 하나는 <오르픽교>가 있다는 점입니다. 이 오르픽교는 포도주의 신이자 재생의 신은 디오니소스를 믿음으로서 내세에 영원한 삶을 갈망하는 종교입니다. 이 디오니소스는 이집트의 고대 신화인 재생과 내세의 신 오리시스를 그리스인들이 받아들인 것인데, 이 종교의 교리는 도덕적으로 살면서 금욕적인 생활을 하면 죽어서 내세의 행복으로 향해간다는 믿음을 가진 종교라는 점입니다.

이 오르픽교는 포도주를 피로 여기고, 음식을 자신의 몸으로 간주하는 등의 내용이 담겨있어 예수의 부활이라는 기독교 교리와도 어느 정도 일치하는 면이 있습니다. 기독교에도 영향을 준다는 뜻이겠네요. 오르픽교는 식민시로 그 교세가 확대되어 신자집단이 형성되었고, 소위 말하는 최초의 교회를 이야기할 때 이 오르픽교를 이야기 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수학자인 피타고라스가 이 오르픽교의 수장이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피타고라스의 수학적 정리 중 일부는 이 오르픽교의 제사와 점을 칠 때 필요한 것들이었던 것이죠.

따라서 소위 기독교의 기원을 이집트에서 찾는 사람들은 이 오르픽교의 디오니소스가 이집트 신에서 유래했다는 점에서 찾기도 합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백인이라는 사실도 부정하더군요. 실제, 아프리카 지역의 예수 그리스도는 벽화나 그림에서 흑인으로 묘사되기도 합니다.(이슬람권에서는 예수가 황인으로 묘사된 거랑 같은 맥락입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가 백인이라는 증거를 정확히 하기 위해 서유럽권에서 노력하고 있죠. 근데, 종교는 종교로 믿으면 될 것을 뭘 그리 따지시는지... ㅋㅋ)

종교부분은 하다보면 신화 전체가 튀어나올 수 있으니, 이쯤하고 다른 파트로 넘기겠습니다. 자세한 신화이야기나 죵교이야기는 나중에 다시 한번 정리해 볼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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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부터는 제가 일일이 정리하기 귀찮기도 해서 그냥 정리 잘된 펌글로 관련된 건축물들을 제시하겠습니다. 그림 만들고 다운받는걸 무지 시러해서요. 귀차니즘이라 지송... 출처는 바로 아래 있습니다.

델피 신전(그리스 델피) 신전(그리스,로마)

출처 : http://blog.naver.com/bss2079/60011486814

 

델피 전경

델포이 유적은 코린트 만이 보이는 파르나소스 산허리에 있다. 이러한 지리적 조건 덕분에 이 곳은 매력적인 유적지 가운데 하나로 손꼽힌다. 델포이는 고대 그리스 세계의 문화 중심지로서 3가지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첫째 그리스에서 가장 중요한 아폴론 신전이 있다는 점, 둘째 올림피아와 마찬가지로 범그리스 제전인 피티아제가 4년마다 열렸던 점, 셋째 고대 세계 구석구석까지 널리 알려진 아폴론 신탁소가 있었다는 점이다. 1893년 발굴 조사를 몇 단계로 나누어 천천히 진행하자, 신전과 극장의 고대 유적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발굴과 함께 많은 유물이 출토되었다. 1902년, 그리스인 은행가 싱그로스의 협력으로 세워진 델포이 미술관에 유물의 일부가 소장, 전시되고 있다. 오늘날 델포이 유적은 프랑스 고고학 연구소를 중심으로 발굴이 진행되고 있다.



가이아 신전 (치오스 제단)


기원전 15세기경부터 대지의 여신 가이아를 모신 신전이 있었다. 가이아 신전은 가이아 여신의 시중꾼인 피톤이라는 용의 보호를 받으며 점술을 행하고 있었는데, 제우스의 아들 아폴론이 용을 죽이고 이 일대를 자신의 성역으로 만들었다. 이 때부터 델포이에서는 아폴론을 아폴론 피티오스로서 섬기게 되었다고 한다.



아테네 프로나이아 신전


1987년에 지정된 세계문화유산 이다. 아폴로 신탁이 있는 델피(델포이)의 신전으로, '세계의 중심'이라는 Omphalos(아폴로신전에 있는 원뿔꼴의 돌)가 있다. 이곳은 그리스의 종교 및 국민적 통합의 상징이었던 중요한 곳이다. 델포이 유적 아래쪽 지역에 있는 아테나프로나이아의 신역에는 토로스라는 원형 건조물이 있다. 현재 위쪽 지역을 형성하고 있는 아폴론 신역으로 가기 전에 이 곳을 본다. 포키아 출신의 건축가 테오도로스의 작품으로 전해지는 이 건조물은 기원전 390년부터 10년 동안 건설되었다고 한다. 신화에 따르면, 지구가 원반 모양이라고 여겼던 시대에 신들의 지도자 제우스는 자신이 지배하는 세계의 중심이 어디인지 알아보기 위해 세계의 양쪽 끝에서 각각 독수리를 날려 보냈다. 독수리는 고대 시인이 ‘빛나는 2개의 정상을 가진’이라고 표현한 델포이의 바위산, 파르나소스 산 공중에서 만나 산 꼭대기로 날아가 앉았다고 한다. 이 전설에 따라 고대 그리스인들은 이 곳을 ‘세계의 배꼽(옴파로스Omphalos)’이라고 불렀고, 그 후로 델포이는 세계의 중심으로 여겨졌다

 

아테네 프로나이아 신전


아테네신전 복원도



아폴론 신전


아폴론 신전은 델포이 성역의 중심 건물로, ‘최초의 신전은 월계수 가지로 만들어졌다.’고 전해지고, 전설상의 네 번째 신전은 ‘보로스 산의 돌로 만들어졌다.고 전해지지만, 실제로 최초의 신전은 기원전 650년경에 건립되어 후에 소실되었다. 기원전 510년경에 세워진 두 번째 신전도 기원전 4세기 초에 일어난 지진으로 불에 타서 붕괴되었다. 현존하는 유적은 기원전 330년에 완성된 세 번째 석조 신전이다. 유적은 신전의 토대, 원주 몇 개, 원주의 토대 일부가 남아 있을 뿐이었지만, 최근 원주 몇 개가 복원되어, 페리스튀리움(안뜰을 둘러싸는 열주랑)이 곁들여진 정면에 6개, 측면에 13개, 총 38개의 도리아식 열주로 둘러싸인 직사각형 신전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게 되었다. 당시 신전의 전실에서 순례자를 맞이한 것은 벽에 새겨진 고대 그리스 일곱 현자의 격언이었다. 거기에는 지금도 “너 자신을 알라.” “절도가 최상이다.” “참고 견디며 겸손하라.”와 같은 현자의 가르침을 연상시키는 명문이 남아 있다. 이 성역이 가장 번성했던 시대에 아폴론은 인간에게 관용과 덕행을 권장하는 광명의 신으로 칭송받았다. 사람들은 신탁이 미래를 예언해 준다고 믿었다. 신전터에서는 여러 개의 원주가 복원되어, 기원전 4세기에 만들어진 당시의 전체적인 윤곽을 보여준다. 아폴론 신전 내부는 3부분으로 나뉘며, 신탁이 이루어지던 가장 안쪽의 지성소는 2층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1층 중앙 부분은 황금으로 만든 거대한 아폴론 상이 놓이고, 지하 성당(내진의 밀실)에는 ‘대지의 배꼽’이라고 불리는 대리석이 놓여 있었다. 오랫동안 델포이의 신관을 지냈던 철학자 플루타르코스는 “대지의 갈라진 틈에서 안개 같은 가스가 분출하고 있다.”는 말을 남겼지만, 지금 그 틈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 곳에는 무녀(피티아)가 있어, 광기어린 혼수상태에서 신탁을 전했다고 한다. 신탁 받을 사람은 카스탈리아의 신천에서 정화 의식을 마친 다음 무녀 앞으로 나갔다. 무녀가 전하는 신의 말은 불명료한 소리로 이어졌고, 여기에 함께 참석한 신관이 신의 말을 ‘통역’해 사람들에게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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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국주의 국가 스타르타

1. 스파르타식 국가체제가 성립된 이유는?

우리가 보통 강압적이거나 군대식으로 일을 밀어부칠 때 스파르타식이라고 합니다. 그 어원이 바로 이 고대 국가 스파르타에서 비롯된 것인데요. 흔히 그리스 역사를 비교할 때 민주국가인 아테네와 군사국가인 스파르타라고 비교하곤 하죠. 그리스의 폴리스를 대표하는 두 국가는 왜 이렇게 상당히 다른 정치체제를 채택하게 된 것일까요? 그리고 스파르타는 과연 독재와 억압으로 이루어진 사회일까요? 한번 봅시다.

스파르타의 주 구성원은 전에 이야기해던 도리아인입니다. 도리아인은 미케네 문명을 세우며 청동기 문화의 전성기를 맞이하던 선주민을 초기 철기문화를 바탕으로 정복하였습니다. 그러나 소수의 도리아인이 그리스 본토에 선주한 수많은 초기 그리스인들을 정복하기 위해서는 상당히 폭력적이고 군국주의적인 국가체제를 갖출 수밖에 없었지요. 이것을 편의상 <군국주의적 국가체제>라고 부릅시다.

일단 스파르타에서는 도리아인이 지배계층이고요. 정복당한 원주민인 미케네인들을 2계급으로 나누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헤일로타이와 페리오이코이입니다.

헤일로타이는 도리아인에게 반항하거나, 원래 노예였던 신분이 여기 해당합니다. 이들은 엄청난 숫자이기 때문에, 반란이 이러날 확률도 높습니다. 스파르타의 도리아인들은 이들을 철저히 탄압하고 감시하는 체제를 마련합니다. 이들은 재산권이나, 자유권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국가가 할당한 시민분배지를 경작하는 일종의 <농업 공납 노예>입니다. 일하고, 공납바차고, 일하고, 공납바치는 생활을 반복하다가 죽는 것이지요.

다름 페리오이코이는 변두리 주민이라는 뜻입니다. 이들은 스파르타의 지배층인 도리아인에게 협조하거나, 우호적이었던 선주민들을 말합니다. 이들은 비교적 자유민으로 상공업에 종사하거나, 군대에서 장교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들도 지배층은 아닌 까닭에 선거권이 없었고, 따라서 시민권을 주어지지 않는 자유민이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스파르타의 군국주의적인 정체체제는 소수의 도리아인이 다수의 선주민을 정복하는 과정에서 생간 부산물이라는 것이지요.

2. 시민계급의 발전

스파르타에서는 진정한 시민은 도리아인입니다. 그렇다고 도리아인이면 모두 동동한 시민이었는가라고 묻는 다면 글써요... 아테네에서 보았듯이 초기 폴리스 사회에서는 어느 정도의 분배토지(클레로스)가 있어야 시민으로 인정받습니다. 즉, 전쟁에 열심히 참여하여 국가에 기여하고, 국가로부터 정복된 토지를 분배받는 것이 바로 시민으로서 인정받는 첫 스타트거든요. 아테네도 초기 솔론시대에는 토지를 가진 자들을 시민으로 인정하는 재산금권정치를 실시했다고 말했었죠?

이렇게 토지를 가진 자를 시민으로 인정하는 사회이기 때문에, 헤일로타이는 자신의 토지가 없이 토지노예였으며, 페리오이코이도 농업이 아닌 상공업이나 장교쪽의 일을 하게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스파르타 자체가 펠로폰네소스 반도에 자리한 농업국가였습니다.

이러한 스파르타 시민들이 모두가 평등한 시민권을 갖게된 계기가 있었습니다. 그건 바로 <메세니아 전쟁>입니다. 이 전쟁은 스파르타가 메세니아 지역을 정복한 1차 전쟁과, 메세니아인들이 반란을 일으킨 2차 전쟁이 있는데, 두 번의 전쟁 모두 스파르타의 군대가 잔인하게 진압합니다. 메세니아 전쟁의 결과 많은 전쟁 참여 시민들에게 토지가 분배되었고, 시민의 평등이 어느 정도 이루어졌습니다. 따라서 시민들은 국가 사회에 별 불만이 없게 되었고, 이들 시민들은 항시 전쟁 준비를 하는 군인으로서 활동하게 됩니다. 보통 스파르타의 민주정치를 시민군을 중심으로 한다고 하여 <중장보병 민주정>이라고도 부릅니다.

스파르타는 시민이 이끌어가는 민주주의적 정치체제이지만, 국가 자체는 시민군 위주로 이루어지는 군국주의적 국가체제입니다. <군국주의적 국가체제>를 설명하면 다음과 같은 내용입니다.

시민들은 보통 20-60세 정도까지 군대와 관련을 맺습니다. 특히 20-30세의 집단 군생활은 엄격합니다. 30세가 넘으면 엄격한 집단 군생활에서 약간 해방되나, 일상 생활은 계속 군과 관련을 맺습니다. 시민생활이 병영에서 이루어지기도 하고, 전 시민이 공동식사를 하기도 합니다. 그 이유는 아까도 말했듯이 정복한 선주민(헤일로타이)이 반란을 일으킬 것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사회의 긴장감을 조성하는 행위를 늘 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이죠.

따라서 시민은 일체의 생산활동을 하지 않습니다. 모든 경제적 지출은 헤일로타이의 공납으로 충당하는 노예제 사회입니다. 헤일로타이는 공납노예인 것이지요. 상업은 페리오이코이가 전담합니다. 즉, 시민이 감시하고, 정복민이 일하는 사회로 폐쇄적인 자급자족주의 사회가 바로 스파르타입니다.

그럼 여기서 잠깐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차이점을 볼까요?

아테네와의 공통점을 보자면 노예제 사회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테네의 노예는 자유로운 시민 소유의 노예이지만, 스파르타의 노예는 국가가 소유하여 공납을 걷는 국가 노예입니다. 아테네의 민족은 미케네 문명기의 이오니아인이지만, 스파르타인들은 미케네 문명을 정복한 도리아인입니다. 아테네는 민주정치이지만, 스파르타는 민주정치를 하면서도 시민군을 위주로 하는 군국주의적인 성격의 국가입니다. 아테네는 해군을 중심으로 한 해상상업을 중시하지만, 스파르타는 육군을 중심으로한 농업중심사회입니다. 아테네는 자유로운 학문과 문학이 발달하였지만, 스파르타는 군국주의 체제이므로 개인의 자유 표현이 약합니다.

3. 스파르타에 대한 착각 - 그들은 사실 민주정치이다.

스파르타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보통 전제적인 국가입니다만, 이건 완전히 틀렸습니다. 스타르타의 정치체제는 민주주의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정체>, <국체>라는 말을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체는 <징치체제>로서 그 사회 정치를 이끌어가는 사람들이 누구냐를 말합니다. 스파르타를 이끈 것은 군인으로서 활약하는 다수의 시민들입니다. 즉, 왕이나 독재자가 아닌 시민이 사회를 이끌어가므로 민주주의 정치체제인 것입니다.

국체는 <국가체제>로서 그 국가를 이끌어가는 방식을 말합니다. 스파르타의 국가 구조는 시민군을 위주로 엄격하게 통제된 사회이므로, 스타르타의 국가체제는 군사력을 바탕으로 하는 군국주의 국가체제인 것입니다.

즉, 스파르타는 군국주의적 국가체제이자, 민주주의적 정치체제를 가진 나라가 맞습니다. 스파르타가 전제적이라는 말은 틀립니다. 전제적이라는 것은 정치를 어느 한 1인이 이끌어간다는 것과 유사한데, 스파르타의 정치는 시민이 민회(시민회)를 만들어서 이끌어 나가거든요.

자 그럼 여기서 우리는 스파르타의 정치체제를 한번 볼까요?

일단 스파르타에는 초기에 국왕이 2명이 있었으므로, <왕정>이었으나, 왕의 실권은 없어서 왕정이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또 귀족대표가 모인 장로회가 있어서 국가의 중요한 안간을 마련하는 입법부의 역할을 하고는 있지만, 이것만으로 전적으로 <귀족공화정>이라고 보기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실제 스파르타를 이끈 것은 다수 시민의 민회입니다. 민회는 성년 시민남자들이 모두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민회에서는 법안을 의결하고, 공직자를 선출하며, 원로원(장로회)이 제출한 안건을 승인하는 등 최종적인 모든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단체입니다.

실제 스파르타를 이끄는 행정관인 에포르는 국정운영의 집정관이자 스파르타 체제의 감시관으로 막강한 권한이 있었다고는 하나, 이 에포르를 선출하는 것도 민회입니다.

결과적으로 스파르타의 정치제제를 말하자면 <왕정, 귀족정>의 성격이 보이기는 하나 실제 <민주정> 체제인 국가라고 보면 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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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에서 평민층이 성장하기 시작하다.

1. 평민들이 성장하려 하다.

이제 그리스에서 가장 중요한 아테네부터 한번 역사를 정리해볼까요? 아테네는 모두 아시다시피 고대 민주정치를 꽃피웠던 찬란한 문명의 국가입니다. 그러나 그 과정은 생각보다 쉬운 것도 아니고, 그 민주정치를 할 수 있었던 사회 여건들은 아름다운 것들도 아니였습니다. 아테네 민주정치는 귀족들에 대항하는 평민들의 피터지는 항쟁속에서 이루어집니다. 평민들이 항쟁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사회가 평민들의 성장을 필연적으로 요구하고 있었다는 점도 중요하죠. 그럼 민주정치를 달성해가는 평민들의 성장과정을 한번 봅시다.

2. 평민성장의 배경

원래 아테네를 포함한 그리스의 폴리스들은 초기에는 대부분 왕정이었습니다. 그러나 도리아인이 남하하고 혼란기를 맞이하자 이 혼란기를 수습한 것은 귀족들이었습니다. 왕은 한 일이 없었죠. 그 이유는 당시 전쟁에 필요한 말, 창 등을 마련할 수 있는 집단이 귀족이었고, 이 귀족들이 전쟁에서 많은 핵심적 역할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 대부분의 국가들은 혼란기에 왕을 몰아내고 귀족 공화정을 수립합니다.

용어정리 : 왕이 다스리는 국가 = 왕국 / 정치체제 = 왕정
                  황제가 다스리는 국가 = 제국 / 정치체제 = 제정
                  입헌군주가 다스리는 국가 = 입헌군주국 / 정치제체 = 군주정
                  군인참주가 다스리는 국가 = 참주국 / 정치체제 = 참주정
                  왕, 황제, 군주가 없는 국가 = 공화국 / 정체체제 = 공화정
                  (왕, 황제가 없으면 어떤 정치체제라도 공화정이다. 귀족공화정, 평민공화정 등등)
                   --- 이 외에 서양사에는 수많은 정치체제가 있지만, 그것은 차차 설명하겠습니다.

이러한 초기 상횡에서 성장한 것은 왕을 몰아낸 귀족들과 귀족들을 따라 전쟁에 참전한 평민들입니다. 귀족들은 폴리스를 방어하는데, 핵심으로 말, 무기 등을 자비로 마련할 수 있었고, 당시 초기의 전투에서 기병이 무지 중요했으므로 가장 우대받는 계급이었습니다. 그리고 평민들은 귀족을 따라 전쟁에 참여함으로서 <클레노스>라는 분배지를 받으면서 재산을 불려나갔고, 수공업, 상업등에 종사하면서 점점 발전해나갔습니다.

그러나 초기의 평민들은 성장하면서도 불안했습니다. 그 이유는 귀족들에 의해 분배지를 빼았길 수도 있고, 귀족들이 부당한 재판을 걸어 평민을 죽일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평민도 전쟁 참여도에 따라 노예를 여러명 소유했지만, 이것도 귀족들에 의해 부당하게 빼았길 수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아슬아슬한 평민들의 위치는 2가지 사회변화가 일어나면서 점차 평민에게 유리해집니다.

1번째 변화 : 전쟁의 양식이 바뀐 것입니다. 그리스 본토의 전쟁이 점차 소규모 동네싸움이 아닌, 대규모로 확대되고, 심지어 해외식민지까지 개척하면서 이제 몇 명의 기병귀족보다 엄청난 수의 중무장한 보병(팔랑크스)들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귀족들은 점차 무장이 가능한 재력있는 평민들을 우대하기 시작합니다. 전쟁에 이기려면 이들 무장농민들이 많이 필요하게 되니까요.

2번째 변화 : 점차 그리스 본토를 넘어 해외 소아시아까지 그리스인들이 진출하면서 <식민도시> 건설이 많아진 점입니다. 식민도시가 많아질수록 상공업은 발달하게 되고, 화페경제가 활성화되어 갑니다. 이 때 리디아라는 동방국가에서 화폐라는 새로운 경제 문물이 도입되자, 그리스는 경제규모가 급성장하게 되는데, 이러한 경제적 성장은 수공업, 상업에 종사하는 평민들이 성장하는 데 큰 역할을 합니다.

자, 이제 평민들은 점차 성장하게 되자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면서 귀족들에게 덤비기 시작합니다.(이러한 평민성장의 배경은 그리스 이후 로마시대에도 똑같이 작용한다는 점이 재미있습니다. 로마의 평민성장도 같은 맥락입니다.)

자, 그럼 평민들과 귀족들이 서로의 권리를 조금이라도 더 얻기 위해 싸우는 피터지는 광경을 한번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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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에 폴리스가 성립되다

1. 폴리스가 성립된 배경

폴리스가 무엇인가? 라고 묻는다면, 쉽게 걍 <그리스 각지에 흩어진 동네국가들이다> 라고 말하면 쉽겠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죠. 우리 역사로 따지면 족장이 다스리는 소국, 일본으로 따지면 야요이 시대의 동네국가들이 되겠지만, 그리스의 폴리스는 약간 그것과는 성격이 다릅니다. 한번 볼까요?

2. 폴리스가 성립된 자연적 배경 1 <지리적 배경>

그리스에 폴리스가 성립된 이유 중 첫 번째는 지리적 배경 때문입니다. 그리스는 바다와 강 등으로 국가 영역이 소단위로 분리되어 있엇습니다. 또 산지도 많구요. 이러한 상황에서 촌락들은 산지, 바다, 강 등을 경계로 분리된 상태에서 각각 소 영역별로 모이게 됩니다. 이것을 촌락의 <집주>라고 합니다. 이들은 각기 일정한 자연적 경계를 중심으로 전사공동체적인 작은 도시국가를 만들게 되는데 이것이 폴리스이지요.

3. 폴리스가 성립된 자연적 배경 2 <기후적 특징>

이 폴리스라는 도시국가가 성립된 배경을 기후에서 찾는다면 <지중해성 기후>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즉, 이들은 여름에 건조한 기후 때문에 농업하기가 아주 불리합니다. 따라서 밀농사 등이 아니라 포도, 올리브, 목축 등 기후에 따라 다양한 농업경영을 추구하게 되며, 생활적인 일체감이 약간 부족합니다. 또 본토의 지형상 본토 자체를 통일하기 보다는 바다로 진출하여 기후가 좋은 소아시아에 식민도시를 건설하는데 주력했습니다. 이것은 그리스 초기에 한해서 해당되는 내용입니다. 대표적인 소아시아 진출이 바로 <트로이 전쟁>이지요.

4. 폴리스가 성립된 결정적인 배경 <도리아인의 남하>

앞에 설명한 것은 단순한 자연적인 배경입니다. 이것만으로 폴리스 성립에 대한 근거를 정확히 말할 수 없습니다. 폴리스 성립에 대한 가장 핵심적인 근거는 바로 초기 미케네 문명을 박살내면서 내려온 철기문명인인 <도리아족>의 남하입니다.

도리아인의 남하는 그리스 사회 전체를 발칵 뒤집어 놓았습니다. 즉 도리아인의 남하로 기존 미케네인들은 아테네 지방(앗티카)으로 이동하여 각자 산과 강을 끼고 전쟁 준비에 들어갔습니다. 또 소아시아와 크레타섬으로 이동하여 <이오니아>지방에서 새롭게 생활터전을 마련합니다.

여기서 그리스인들의 초기 문명은 유사한 2개의 지역 문명으로 분화됩니다. 하나는 그리스 본토에서 도리아인과 항쟁하며 버티는 전형적 그리스인이며, 또 하나는 이오니아(트로이를 포함한 소아시아) 지방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문명입니다.

먼저, 이오니아 지방을 보면, 도리아인을 피해 지계계층 중심으로 이동했으므로 본토보다도 더 문화가 발전하였습니다. 이들은 이오니아에 먼저 살던 원주민들과의 전쟁을 피하기 위해 해안가에서 방어하기 쉬운 도시를 만드는 데 이것이 바로 소아시아의 <폴리스>입니다. 즉, 이오니아 지방의 폴리스는 군사적 수비 목적에서 비롯되었다고 보는 편이 타당합니다. 또, 이 해안가에 도시문명을 세우면 에게해의 여러 섬들 및 오리엔트 문명과 쉽게 만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그럼 그동안 도리아인과 피터지게 싸우는 본토의 상황을 볼까요?

본토에서는 도리아인이 기존 문명을 철저하게 파괴하였고, 기존 문명인은 그것을 막기 위해 지리적, 군사적 요충지에 모여 수비를 시작합니다. 즉, 도리아인의 남하로 그리스 본토 자체가 혼란한 상황이었고, 그 틈을 이용해 바로 옆 국가를 공격하는 국가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리스 각 촌락은 지리적, 군사적으로 중심이 되는 곳에 도시를 만들어 문명을 유지하고, 그 도시를 중심으로 주변의 촌락들이 하나의 독립된 주권국가를 만드는 데 이것이 폴리스인 것입니다. 즉, 폴리스는 외적 및 주변국가에 대한 공동방어의 목적이 강합니다.(폴리스 집주설)

5. 폴리스가 성립되면서 변화된 사회상은?

폴리스가 성립되면서 가장 큰 사회변화는 이집트적인 국왕중심의 국가가 아닌 자유로운 도시 국가로 사회가 변화했다는 점입니다. 즉, 수많은 전쟁이 발생하는 혼란기에 각 집단은 도시국가(폴리스)를 만들어 공동방어를 해야 했고, 이것은 전사공동체라는 시민의식이 생긴다는 것을 뜻합니다. 모두가 똑같이 평등한 전사가 되는 것이지요. 또, 전쟁을 통해 획득한 토지는 공동으로 분배하여 나누어 갖는데, 이것을 <클레로스>라고 합니다. 따라서 전쟁에 참여하여 전리품으로 토지를 획득한 <클레로스>보유 농민은 모두 평등한 시민이며, 이들은 독립된 토지소유자로서 활약하게 됩니다. 즉 <클레로스>를 가진 자들이 시민이 된 평등 사회가 시작되는 것이지요. 이것은 모든 토지는 국왕인 파라오의 것이라는 이집트 문명에서 건너온 고대 사상을 완전 깨 버리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이렇게 모든 토지는 공유지이거나 왕의 토지라는 사상이 깨지면, 당연히 왕권과 부족권이라는 기존 권한은 약해지면서 시민들은 부역, 공납, 세금이라는 고대적인 틀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시민의 권리와 자유는 <클레로스>를 통해 확고히 주어지게 되는 것이지요. 이것이 바로 그리스가 민주사회로 나가게 된 원천 중의 하나입니다.

이것을 반대 입장에서 설명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어떤 학자들은 전쟁을 통해서 자유농민이 강해진 것이 아니라 귀족들이 강해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이들은 혼란기 속에서 귀족들이 왕을 죽이거나 정치권력을 넘겨받고, 귀족들이 스스로 통치하기 쉽도록 자신의 근거지에 도시국가를 세워 귀족국가로서 효율적으로 통치하기 쉽게 하기 위해 폴리스가 성립되었다고도 합니다.(귀족 집주설)

6. 폴리스의 성격은 무엇입니까?

폴리스는 일단 중심도시와 주변 촌락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군사적 목적에서 해안근처에 도시국가를 건설합니다. 폴리스는 주변지역의 농촌까지 영향력을 가진 정치, 군사, 종교적인 중심지입니다.

먼저, 중심지에는 신전인 아크로폴리스가 있습니다. 이곳은 신탁을 받는 신전이지만, 전쟁이나 유사시에는 피난처이자 군사령부로도 이용됩니다. 다음으로 광장인 아고라가 있습니다. 이곳은 광장, 시장, 웅변장소, 공공생활장소, 사교장 등으로 이용되는 다목적 광장입니다.

이 폴리스에서 집주된 중심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귀족, 수공업자, 상인등입니다. 폴리스에 소속된 근처 농촌에서는 촌락민들이 살고 있는데, 귀족들도 도시에 살지만 자신의 주요 생산수단인 토지는 농촌에 두고 있습니다.

그럼 폴리스에서 자유민은 누구일까요?

폴리스에서 자유민이란, 폴리스를 형성하는데 참여한 부족의 성원과 그 후손만이 완전한 시민입니다. 즉 목숨을 건 전쟁속에서 이겨 <클레로스>라는 토지를 차지하고, 자신의 권리를 찾은 자만이 시민이 되는 것이지요. 자세히 보면 시민도 2종류가 있긴 합니다. 원래 혈통이 우수하고 대토지가 원래 있는 귀족계층이 있으며, 반대로 전쟁을 통해 <클레로스>를 획득한 새로운 시민계층이죠. 물론, 전쟁에 진 자들은 시민권이 없는 노예계급이겠죠?

이러한 그리스의 폴리스들은 분립된 수많은 동네국가 수준이면서도, 그들 나름대로는 미케네 문명을 공유했던 공동체라는 의식은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 본토를 자신들의 땅(헬라스)라 불렀습니다. 서로를 같은 민족인 <헬레네스>라고 칭했습니다. 같은 신화를 기원으로 하였다는 동족의식이 있었고, 올림피아 제전을 통해 함께 어울렸습니다. 또 인보동맹을 맺어 공동 방어선을 구축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들과 다른 이민족은 <바바로>라고 하여 차별하였습니다.

어떻게 보면 각 소국은 독립된 주권을 가지고서 폐쇄적인 공동체를 영유하고, 스스로의 자유와 평등을 추구하면서도 동족의식은 공유하는 이상적인 고대 소국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렇게 보았을 때, 폴리스의 정의는 이렇게 내릴 수 있습니다.

종교적, 정치적, 경제적인 유대관계로 결합하였으면서도, 법에 의해 규제되는 완전한 독립성과 주권을 가진 시민공동체 집단이라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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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게문명과 그리스 역사의 시작

1. 에게 문명의 탄생

고대 유럽 문명의 출발점인 그리스 역사를 차분히 살펴봅시다. 그리스 역사를 알려면 먼저, 그 문명이 어디서, 어떻게 탄생했는지부터 봐야겠죠? 고대 그리스 문명이 역사에서 주목받은 것은 하인리히 슐리이만이라는 사람이 그리스 신화 유적지를 탐사하면서 부터입니다. 슐리이만은 과연 트로이의 목마 이야기가 진짜일까, 미노스의 궁전에 살던 괴물이 있었을까 등을 궁금해했습니다. 그는 트로이와 미케네 문명을 발굴하고 거기서 선형 B문자라는 것을 해독했는데요, 그 때부터 그리스의 고대 역사가 새롭게 조명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림 1) 에게문명의 유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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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 시작해보죠. 근데, 그리스는 세계 4대문명에 안들어가네요? 헉... 분명 세계 4대문명은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인더스, 황하문명인데, 그럼 유럽에는 문명이 없었단 말인가?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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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초기에는 유럽지역은 4대문명에서 빠져있습니다. 그럼 그리스 문명은 어디서 온 것일까요? 그건 바로 근처 문명으로부터 시작된다고 보시면 되죠. 그리스 신화를 잘 보면 고대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신화와 겹치는 부분들이 많습니다. 그리스 신화가 유명한 것은 그 신화들을 조리있게 정리해서 유럽인의 세계관에 딱 맞는 신화로 재창조했기 때문이죠. (신화이야기는 여기서 안 다룹니다. 그리스 신화 다 적으면 끝도 없으니... 나중에 세계사 사료방에다가 적어보도록 도전은 해볼께요.)

즉, 그리스 문명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지방의 전제군주제도에 영향을 받은 청동기 정복문화가 유럽으로 전파되면서 생겼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리고 문명 초기에 오리엔트 지방의 문명이 전파된 지역이 바로 에게해 지역입니다. 우리가, 유럽사를 배울 때 비유럽지역으로 보이는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연관시켜 배우는 이유도 이겁니다. 유럽사의 기원 자체가 오리엔트와 연결되거든요.

2. 에게 문명 - 초기의 크레타섬 문명(크레타, 미노아 문명)

에게 문명의 초기 단계를 우리는 크레타 문명이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지도에서 보시면 알겠지만,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에서 유럽으로 문명을 전달해줄 때 가장 가깝고 근접한 지역이 바로 이 크레타 섬 지역입니다. 이 크레타 문명은 오리엔트 지역과 원거리 교역을 통해 청동기 문명과 교류할 수 있는 딱 좋은 동서무역의 요충지였죠. 이들은 해상무역을 통해서 발달하면서도, 이집트 지역의 문화를 독자적인 자신들의 문화로 흡수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이집트 문명이 전쟁, 사치, 피라미드 건축 등으로 남는 생산물을 소비하기만 했던 만면, 이들은 남는 잉여생산물을 건설적인 부분에 재투자하였습니다. 이렇게 무역으로 돈을 벌고 번 돈을 재투자해 가면서 활발하면서도 동적인 아름다운 문명을 만들어 나갑니다.

이 크레타 문명의 대표적인 건축물은 크노소스 궁전입니다. 크노소스 궁전에 대한 유명한 일화는 들어보셨을 겁니다. 크노소스 궁전은 에게문명 전기를 지배했던 지배자 미노스의 궁전입니다. 엄청나게 복잡한 미궁 형식으로 되어 있지요. 이렇게 복잡한 미궁을 라비린토스라고 합니다. 그리스 신화에 보면 그리스의 영웅 테세우스가 이 미궁(라비린토스) 깊숙이 살고 있는 괴우 미노타우로스를 퇴치하고, 왕녀 아리아드네와 함께 섬을 탈출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견고한 성문이나 성벽이 없고, 또 큰 방 등 지배자의 권위를 과시하는 시설을 갖추지 않은 점도 이 종류의 건축으로는 이례적입니다. 이 크노소스 궁전의 정교한 도자기, 궁전 안의 프레스코 벽화인 파리의 여인 등은 유명합니다.

그림) 크노소스 궁전 유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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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크노소스 벽화 - 프레스코 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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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에게 문명 - 후기의 미케네 문명

미케네 문명은 이제 미노아 문명을 흡수하여 그리스 본토로 올라간 문명을 말합니다. 또, 그리스 본토 뿐만 아니라 소아시아의 트로이 지방까지 진출하게 되면서 그리스인의 선조격 되는 사람들이 구체적으로 형성됩니다.

이들은 그리스 본토에 문명을 확고히 한 뒤 강대해지자 그리스 본토를 넘어 미케네를 맹주로 하여 소아시아로 전출하게 되는데 그것이 그 유명한 <트로이 전쟁>입니다. 들어보셨죠? 그리스 본토의 미케네 국가들이 트로이를 점령하려다 반항이 거세어지자, 트로이의 목마를 선물하는 척하고 정복한 이야기 말이죠. 또, 남쪽으로는 이전 문명인 크레타섬 문명도 점령하여 남부로도 진출합니다. 이들은 이렇게 동부 소아시아(트로이), 남부 미케네섬을 점령하는 활동을 하면서 보대 전사적인 성격이 강화된 집단으로 성장합니다. 즉, 크레타 문명(미노아 문명)을 계승하였으면서도 거기에 강력한 군사적 성격을 더한 국가라고 보면 되죠. 이러한 전사적 성격의 예로는 전쟁과 사냥, 많은 무기류 부장품, 견고한 성벽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이러한 미케네 문명은 그리스 본토를 중심으로 농업, 목축, 수공업, 무역 등 다양한 경로로 발전해 나갔습니다. 이들은 오리엔트와 마찬가지 구조로서 왕, 귀족, 전사, 관료(서기), 상민, 농민, 노예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죠.(이집트의 계층구조와 형식상으로는 비슷합니다.)

이렇게 발전하던 에게문명은 전형적인 그리스인이라 불리는 도리아인 들이 내려오면서 갑자기 멸망하고, 그 역사를 잘 알 수 없는 300년간의 암흑기를 맞이합니다. 고대 오리엔트사에서 이것을 호메르스 시대라고 정의내렸죠? BC 1200년경부터 오리엔트와 유럽 모든 지역에서 형성된 역사를 알 수 없는 암흑기는 보통 청동기 문명의 국가들을 당시 새롭게 등장한 철기 민족들이 정복하고, 파괴하면서 비릇되었다고 합니다. 에게문명도 새로운 민족인 도리아인에게 망하면서, 세계적인 조류에 휩쓸렸던 것이지요.

그림) 미케네의 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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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에게 문명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에게문명이 그리스 역사에서 중요한 이유는 그 문명이 오리엔트 문명과 그리스 문명의 중간에 위치한 과도기 문명으로서 역사적 소임을 다했다는 것에 있습니다. 에게문명은 오리엔트의 전제군주제적이고, 절대적인 서열을 가진 사회(이집트의 파라오, 메소포타미아의 신권정치)의 문명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에게 문명은 그들의 문명을 받아들이되, 전제적인 절대성은 버렸습니다.

예를 들면 이집트는 왕실 중심으로 이루어진 부역국가입니다. 파라오가 전권을 가지고, 백성들을 노예처럼 부렸으며, 세금을 걷었던 것이지요. 이러한 세급과 노역을 공납이라고 합시다. 그러나 에게 문명은 그렇지 않습니다. 왕이 있지만, 파라오처럼 강력한 왕권이 아니라 어느 정도 시민의 권리를 존중해주는 민주정입니다. 이집트에서는 모든 토지가 왕의 토지이며, 모든 백성은 왕의 토지를 공동으로 경작하다는 원칙을 가진 공동체적 국가입니다. 그러나 에게 문명에서는 공동체적으로 토지를 경작하여 왕에게 세금을 내지만, 시민들이 자신의 토지도 소유하고 있습니다.

즉, 모든 정치 상황이 이집트처럼 절대적 왕권밑에서 독단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이것이 더 발전하여 나중에는 그리스의 민주정으로 발전하는 것입니다.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에게문명은 오리엔트(이집트)의 영향을 받아 성립된 문명으로 출발하면서도, 민주적 성격을 키워나가는 과도기적 문명이며, 이것은 전형적인 민주정을 실현하는 그리스인들인 도리아인에게 망함으로서 오리엔트와는 다른 유럽만의 정치형태를 만들 수 있게 기반을 만든 문명이라고 말입니다.

에게 문명을 멸망시킨 도리아인들이 그리스 본토에 침입하면서 본격적인 그리스 역사가 시작됩니다. 그럼 그리스 역사로 출발합니다. 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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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와 그리스 문명의 결정적 차이는?

1. 전제군주제와 민주정의 차이

이집트와 그리스의 사회를 비교해보고, 왜 고도로 발달되었던 이집트 사회가 후진적이었던 그리스 사회에게 문화적 주도권을 내 주었는지를 생각해봅시다. 우선 기본적인 측면에서 말하자면, 국가 방략의 차이이겠죠?

오리엔트 사회는 일단 가장 전형적인 동양적 전제군주제 사회였습니다. 이집트는 절대 군주인 파라오들이 스스로를 신의 현신이라고 주장하는 등 내세사상을 이용하여 철저히 백성들의 사상을 국가사상에 종속시킨 사회였습니다. 같은 전제군주 국가라 할지라도 메소포타미아는 신탁이라는 것이 있어, 신의 신탁을 이용하면 정권이 바뀌거나 왕을 죽일 수 있는 여지가 있었지만, 이집트는 파라오 자체가 불멸의 신 오리시스의 후손이자, 태양신 라의 현신이므로 그 절대성은 신성불가침입니다. 여기에 비해서 그리스는 민주주의로 대표되는 시민공동체 사회였습니다.

즉, 그리스에서는 시민간의 다양성이 인정되므로 사회적 변화에 유연하고, 다양한 사상과 철학이 발전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 사회였다는 점이죠.

2. 사회구조상의 차이

이집트를 포함한 오리엔트 사회가 그리스를 능가하지 못했던 2번째 이유는 잉여생산물에 대한 활용 부분의 차이 때문입니다. 이집트와 그리스는 둘다 청동기를 거치면서 성장한 사회이지만, 청동기 사용에 따라 많아진 수확물을 다루는 방식이 달랐습니다. 이집트 사회에서는 잉여생산물을 시민의 자발적인 생산문화나 사회적 발전 기반으로 활용하지 못하고, 잉여생산물을 다시 재투자하지 못하였습니다. 즉, 전쟁, 사치, 신전의 건축 등 비생산적 부분에 잉여생산물이 남용된 것입니다. 이러한 사회에서 발전이라는 것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반면 그리스는 에게문명을 거쳐 크레타문명과 미케네 문명으로 나아갈수록 발전된 사회모습을 보였고, 점차 왕정이 민주정으로, 또 민주정이 발달하면서 식민지 확보로, 식민지가 확보되면 다시 민주정치의 활성화로 이어지는 순환고리를 갖습니다.

3. 그럼 왜 이런 차이가 났을까?

이런 이집트와 그리스의 차이점은 생산양식을 담당하는 계층이 달랐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스와 로마는 노예제를 기반으로 한 사회입니다. 생산을 노예가 담당하면서 시민들은 자유로움을 만깍힐 수 있고, 철학과 사상이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위대한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 조차, 자신들의 발전을 위해서는 노예의 희생이 꼭 필요한 것이라고 역설합니다. 로마가 망한 이유 중 하나도 노예제가 문란해지면서, 시민들이 어찌할 바를 몰랐고, 결국 게르만 용병에 의지하는 국가 체제로 바뀌면서 사회 기반이 흔들렸던 이유도 있습니다.

반면,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같은 동방 국가들은 노예가 있으나, 이들이 생산의 주력이 아닙니다. 노예는 대부분 가내노예, 생산보조 노예 수준이었고, 실제 강력한 국가 기반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은 평민들의 세금이었습니다. 파라오는 모든 영토는 신의 영토인 만큼, 국가 안의 모든 평민은 노예와 마찬가지로 파라오를 위한 충성스런 신민 역할을 해야 합니다. 죽은 뒤 내세에서 오리시스나 아누비스 앞에서 죽은 자의 맹세를 하기 위하여, 살아 있을 때의 복종은 당연한 것입니다. 설사 당장 피라미드를 완성하라는 무리한 요구가 있다고 해도 말이죠. 즉, 국가 기반이 평민에 대한 착취, 강제 노역, 정복 전쟁에 의존하는 전제국가이므로 일반 백성들을 위한 문화사업이나, 사회발전을 위한 공공시설에 투자할 여력이란 없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집트, 그리스 두 사회를 비교해보면 문화적 차이를 이렇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정체적인 사회 vs 발전적인 사회

평민의 부역을 바탕으로 하는 전제군주제 vs 민주적인 시민을 바탕으로 하는 사회

실용적인 문화를 바탕으로 하는 사회 vs 심미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사회

물론, 이 공식이 100% 맞지는 않습니다만, 두 사회를 이해하는 기본틀 정도로 이렇게 이해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특히, 실용성과 심미성이라는 부분은 두 사회의 성격을 그대로 보여주는 부분이지요.

이집트는 나일강의 범람이라는 자연적 여건을 극복하기 위하여 기하학, 측량술 등 현실적인 학문이 발달하였고, 자연신에 대한 경외와 두려움 때문에 자연신 숭배사상이 발달하였습니다. 반면 그리스는 시민들의 자유로운 철학, 예술, 시민적 성격의 신들이 눈에 띄지요. 이집트의 신들의 모습이 자연상태의 동물 모습이 많다면, 그리스 신들의 모습은 인간의 모습을 그대로 한 신의 모습이 많습니다. 같은 갈래에서 내려온 신화임에도 두 지역은 신화의 성격을 달리하고 있죠.

아주 짧은 이 글을 마지막으로 오리엔트를 정리하고 그리스, 로마 시대로 넘어가볼까 합니다. 그리스, 로마 시대는 오리엔트보다 훨씬 복잡하고, 그 내용을 설명하려면 꽤 오리걸리겠네요. 로마인 이야기만 해도 몇 권인데... ㅋㅋㅋ

그리스, 로마 이야기는 넘 방대해서 신화, 각각 왕의 업적 등은 일단 나중에 부연하는 것으로 하고, 전체 역사를 통사 개념으로 일단 정리해볼까 합니다. 그래야 정리가 될듯하네요... 그럼 그리스 시대로 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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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히스토리아 기업부설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