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매일 역사퀴즈 (2013. 3. 7. 목요일)

오늘의 제목는 <사랑과 종교사이> 입니다.

  - 반드시 컴퓨터용 수동 마우스를 사용해 주시고, 제출하기를 꼬옥~ 눌러주세요.
  - 점수와 후기를 댓글로 남겨주시면 다음 회 난이도를 조절할 수 있답니다.

 

1. 다음 지문를 잘 읽고 물음에 답하세요~

 

카톨릭 교회에서는 남녀간의 애정보다는 신에 대한 헌신이 중요했다.

남녀가 사랑할 수 있는 날은 종교적 계율로 엄격하게 규제되었다. 우선 주일과 수요일, 금요일은 신에게 헌신하는 날이기 때문에 남녀간에 사랑은 금지되었다. 그 날짜는 1년 중 5개월에 이른다. 또 부활절이 되기 전 40일과 크리스마스 전 40일, 성찬예식 전 3일 등 교회 행사가 있기 전에는 마음을 경건하게 해야 하기 때문에 남녀간의 사랑을 금지하였다. 또, 남녀간에 잠지리를 갖게 되면 30일동안 교회에 나갈 수 없었기 때문에 교회에 나가기 위해서는 봉사와 헌납을 해야만 했다.

이 시대의 교회는 사람들의 기초적인 생활마저 규제하였다. 따라서 수백년 뒤, 이런 규제가 싫었던 일련의 예술가들은 교회의 신앙과 인간의 본성 및 이성을 조화하여 인간의 권리를 찾은 운동을 시작하였다.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은 인간 본연의 욕구를 자연스럽게 표출하고자 하는 의도였다.

종교개혁 이후 최고의 바람둥이라는 카사노바는 교회의 주적이 되어 방랑하면서 프랑스 혁명사상을 전파하고 볼테르의 밑에서 혁명요원으로 활약했는데, 그 역시 담당 임무가 교회와 귀족들의 이중생활을 밝혀내고 그들의 약점을 잡아내는 것이었다.

 

 

1. 위 지문과 관련된 시기는 종교가 사회전반을 지배하던 서양의 특정 시대입니다. 위 시대와 관련된 인물로 가장 적합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① 아리스토텔레스        ② 아우구스티누스        ③ 하인리히 4세
④ 나폴레옹 3세           ⑤ 히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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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세계사 4

'대체 왜 시대를 구분하는 거야?'

역사를 공부할 때, 고대니, 중세니 하는 시대 구분 이야기를 종종 듣게 된다. 이 시대구분이란 언제 왜, 누구에 의해서 시작된 것일까? 그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자, 지금부터 시작할 이야기는 시대 구분에 대한 이야기야.

도대체 고대니 근대니 현대니 하는 것은 누가 어떻게 정한걸까? 뭐, 고대가 뭔지 모르고 고대 이야기를 할 수 없으니 우선 그것부터 끄적거려 봐야겠군. 고대니, 중세니, 근대니... 이렇게 시대를 나눠두는 것을 <시대 구분>이라고 한다나 뭐래나.. 이 시대 구분 중에서 가장 유명한 구분이 바로, <마르크스>의 시대 구분이야. 하지만, 이 사람이 처음으로 시대구분을 한 것은 아니고, 그냥 가장 유명한 시대구분일 뿐이지.  

사실, 시대구분이라는 것은 스스로 <근대인>이라고 생각했던 서양인들이 만들어 낸 <발명품>이야.  혹시, <르네상스>라는 말은 들어봤어? 미켈란젤로니, 라파엘로니, 레오나르도 다빈치 선생이니 하는 분들 나오는 서양 15-16세기 시대를 말하지.

그 시대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너무나 훌륭하다고 생각했지. 문화, 예술, 학문이 모두 옛 시대보다 뛰어났고, 신에 대해서 접근하는 방식도 막무가내로 믿사옵니다~~~를 외치던 중세보다 진보했다고 믿었거든.

그래서인지 이전 시대와 자신들의 <자부심>있는 시대를 꼭 구분해야 한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시대구분이란 것을 만들어놓은 거야.  뭐, 한자로 봐도 딱 답이 나오네. 고대는 옛 시대, 중세는 중간세상, 근대는 지금과 가장 가까운 시대....

하지만 시대구분이라는 게 절대적인 <법칙>은 아니야. 역사를 살아가는 건 우리 인간들이니깐, <인간>들이 자신의 입장에서 지금과 다른 과거를 정리하기 위해 임의로 나누어 놓은 게 바로 <시대>라는 단어거든.

예를 들어, 내가 일기를 쓸 때에도 나의 유아기, 유치원기, 소년기, 청년기... 뭐 이렇게 나누지만, 사실 그건 내 맘대로 기준을 잡고 대충~ 정한 거잖아. 14살까지가 소년기라는 증거 있어???

또 하나 예를 들자면, 그 당시 기독교인들은, 창세시대, 아브라함시대, 유대시대, 예수시대... 등등으로 시대를 나누었어. 하지만, 이것도 크리스찬이 아니면 절대적인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꺼 아냐? 반대로, 르네상스인들의 시대구분은 <크리스찬>들이 보기엔 신앙에 맞지 않잖아? 뭐, 이렇게 사람에 따라 임의적이라는 거지.

어쨌든 간에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보자.

서양의 근대인들은, 근대가 시작된 15세기를 무지 자랑스러워 했어. 솔직히 그 이전 시대인, 중세 시대에는 기사도가 어쩌구, 십자군 원정이 어쩌구, 교황이 어쩌구 말은 많이 했어도 <우물 안 개구리> 시대였거든.

한번 <근대인>들의 눈으로 중세를 바라보자. 

아직... 미국이라는 신대륙도 아직 몰랐고, 아시아 애들이랑은 무역도 제대로 못했고, 종교개혁도 이루어지지 않은 시대....  한마디로, 아시아인들은 각각 무역권을 만들고, 문명간 교류도 활발히 하고 하던 시기에 좁은 땅덩어리에서 지들끼리 죽자 살자 치고 받고 싸운 시대.... 휴... 우리가 100년전의 시대를 지금보다 덜 발달한 시대라고 생각하듯이 근대인들도 중세 시대가 쫌~ 한심했겠지?

그런데, <근대>라는 새로운 세계가 시작되었어. 이제, 짜잔~ 하고 <세계화> 시대가 시작된거야.  콜럼버스가 신대륙도 발견하고, 아시아 무역권에 가서 후추도 얻어 왔어. 와~ 세상이 이렇게 넓고, 신기한 세상이 많구나... 하고 생각했겠지? 이런 새로운 세상을 본 사람들은 자신들의 시대가 얼마나 자랑스러웠겠어?

야...  르네상스, 종교개혁, 신항로 개척.... 우리 쫌 잘나가기 시작하는구나...

그러다 보니, 지금까지 믿었던 가치관이 점점 흔들리기 시작하면서 지금까지의 세상이 너무 현실과 달라보이기 시작한 거지. 자, 그럼 이 시대에 사람들의 생각이 어떻게 변해가는지 몇몇 인물들의 가상 대화를 통해 살펴볼까?

교황 : 야... 니들 라틴어 읽을 줄 모르잖아. 내가 성경책 읽어 줄테니 잘 들어. 하나님께서는 <면죄부>라는 티켓을 사는 사람에게 천국을 예약하셨거든. 무식한 일반인들아, 이해되었니? 자, 줄서... 티켓사세요.. 티켓... 교황한테 돈 바치면 천국가요... 교황믿음 만세천국 교황불신 바루지옥.....

로렌쪼 발라 : 놀구있네. 내가 조사해 봤더니, 교황이랑 황제랑 밀약맺고 둘이 이중장부 만들어서 이 땅, 저 땅 다 나눠먹었던데...  이게 뭐야~ 대체, 교황이 판교지구 투기업자랑 뭐가달라? 교황이랑 프랑크 왕국 황제랑 서로 땅따먹고, 정치자금 대주고 이런 뒷거래 했다메? 내가 자료 다 찾았다. 뭐 지금부터는 성경책 내가 직접 읽을란다. 니가 읽어주는 거 안 믿어.

루터 : 라틴어? 되었구... 지금부터는 모국어로 성경책 번역해줄테니 그거 읽으면 되겠다. 성경 직접 읽고 스스로 믿음을 가지세요... 우리 힘으로 종교를 바꿔 보자구요. 일단, 교황 자금줄 좀 끊어놔야겠네. 그래야 존경하는 우리 귀족분들이 힘좀 쓸거 아니겠어? 교황불신 귀족만세~~ 종교개혁 만세~~~

  갈릴레이 : 근데, 교황이 한 말을 반박해도 될까? 내가 망원경 만들어서 보니깐 지구가 돌던데.... 근데,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는 말은 내가 안했는데... 어떤 넘이 책 팔아 먹으려고 그런 말을 써 놓았어?

콜롬버스 : 그래? 그럼 난 지구가 돈다는 말도 믿을께. 지구가 둥글다는 말도 믿어볼께. 이제, 지구 반대편으로 돌아서 인도 가봐도 될까? 진짜 간다.. 진짜루.... 지구 반대로 갔다가 낭떠러지 만나서 죽는 거 아니지? 확실... 하지? 후덜덜...

뭐, 점차 이런 분위기가 되가는 거다.

세상이 바뀌고 세계가 넓다는 것을 알았으니, 유럽인들도 이제 <세계화> 시대에 걸맞는 뭔가가 필요했던거야. 이제, 아시아 애들 노는데도 좀 놀아달라고 애원해보고, 무역도 같이 해보고 싶었겠지.

한마디로!! 유럽애들도 점차 <스팩!>이 마련된 거야. 그래서 서양인들은 지금까지의 시간과 공간을 구분하는 기준점을 만들고, 과거와 다른 <스팩!>을 갖춘 <신유럽인>을 표현할 용어가 필요했던 거지. 

그리하여....

과거 찬란했던 그리스와 로마 제국의 시대인 먼 옛날의 시대를 <고대>라고 규정했어. 그리고, 로마 제국의 유산이 사라진 시대를 <중세>로 표현한 거지. 그리고 르네상스를 겪은 자신들의 위대한~ 시대를 <근대>로 부르게 된 거야.

그런데 말야. 문제가 생겼어. 15-16세기에 살았던 르네상스인들이 자신들의 세계를 가장 가까운 시대인 <근대>라고 표현했는데, 시간이 계속 지나니깐 19세기, 20세기가 온 거야. 헐.... 그럼 이 새로운 시대는 또 뭐라고 불러야하지???

서양의 학자들은 고민에 빠지기 시작했지. 아... 산업혁명이 시작되더니, 뭔가 세상이 더 빠르게 바뀌고, <근대>와는 다른 또 다른 <신세계>가 시작되었는데, 이걸 무슨 용어로 표현해야 하냐구....

그래서, 세계 1, 2차 대전이 끝날 때쯤 새로운 용어를 찾게 된 거야. 히틀러가 자살하고 일본이 원자폭탄을 맞고 난 이후... 새롭게 변화한 세상. 미국이라는 나라를 중심으로 <자본주의> 체제가 정착된 세상. 즉, 1945년 이후의 세계를 표현할 새로운 용어를 창작한거야.

그것이 바로 근대보다 더 지금을 표현할 수 있는 시기, 즉 <현대>라는 용어인거지. 그리하여.... <고대-중세-근대-현대>라는 4단계 시대구분법이 드디어 완성된 거야.

아까 위에서 마르크스의 시대 구분 보았지?

마르크스는, 이런 4단계 시대 구분법에다가 자신의 철학을 합쳐서 <마르크스식 시대구분>을 만든 사람이야. 그 사람은 노예제 사회, 봉건제 사회, 자본주의 사회, 공산주의 사회 등을 거치면서 사회가 발전한다고 믿은 사람이지. 그래서 그 사람을 사회주의자이자, 공산주의 사상의 아버지라고도 표현하곤 해.

마르크스는 고대, 중세, 근대 등등의 시대구분에 노예제, 봉건제, 자본주의 등을 짝~ 리믹스해서 자신만의 시대구분을 만들었지. 물론, 이 사람 말고도 고대, 중세, 근대 등등의 시대에 자신의 철학을 붙여 시대구분을 한 사람은 많겠지?

그런데, 이 시대구분법은 문제가 있었어. 뭐~ 19세기 이후에 서양 애들이 세계사의 주도권을 잡았기 때문에 이 시대구분법을 널리 애용했거든. 하지만, 아시아에서는 이게 너무나 안 맞는 다는게 큰 문제였지.

생각해봐봐. 한국이나 중국, 일본 역사에다가 고대니, 중세니, 근대니... 이런 단어들를 끼워 맞추려고 하니깐 안 맞는게 한두가지겠어? 한국인이 15세기 르네상스를 살았던 사람들이 아닌데, 서양애들이 살았던 시대를 무리해서 적용하기엔 너무 안맞아서 삑사리가 나지 시작한거지.

서양 애들도 골치가 무척~아팠을 거야. 서양식 시대구분이 만능인줄 알았지만, 다른 세계에서는 적용이 안되니깐 환장하겠지.

해결책은 뭘까? 유럽의 제국주의 국가들은 아주 심플한 해결책을 내놓았어. 심플하다기 보다는 귀찮아서 대충 방법을 마련한거지. 시대구분이 애매한 아시아에다가는 몽땅 다 <중세 수준이네>를 가져다 붙여 버리면... 참~ 쉽죠.. 잉~ 

영국의 스펜서 : 뭐야... 중국, 일본, 한국, 인도, 오스만 제국... 이것들은 나름대로 세계 4대문명의 발상지 라면서 19세기까지 쭈욱~ 중세 봉건시대 수준이네. 그니깐 니들이 우리 서양한테 정복이나 당하지 ㅋㅋ 찌질이들~

하지만, 그나마 아시아에서는 <메이지 유신>이니 뭐니 하면서, 쫌~ 산다 싶었던 <일본> 이라는 나라가 있었어. 아시아의 다크호스~ 일본이 그 말에 바로 발끈~ 했지.

일본 : 되거든!!! 웃기지도 않네.. 아시아는 아시아 나름대로 발전과정이 있거든! 니네 유럽애들 발전이랑 다른 면도 무지 많거든? 니들이 <천황제도>를 알고, <막부시대>를 알아? 글고... 우리도 <메이지 유신>으로 나름 수준급으로 발전했는데, 몰랐어? 니네 시대 구분이 좀 우리랑 많이 다르네. 아시아에는 근대도 아니고, 현대도 아니지만, 독특하게 발전했다는 걸 왜 몰라주는 거야? 오 좋아.. 우리 아시아에서 독특하게 발전한 그 시대... 그걸 <근세>라고 부르면 되겠네.

그리하여 일본 학자들의 연구로, 4단계 시대 구분법이 <근세>를 포함한 5단계 시대 구분법으로 정착된거야. 그래서~ 아시아 역사에서는 바로 이 <근세>라는 말도 종종 사용하기 시작했지.  물론 우리 한국사에서도 지금 사용하고 있구.

뭐, 암튼 중요한 것은 서양식 시대 구분이라는 것이 우리랑 너무나 안 맞는다는 거야. 우리식으로 고대니, 중세니, 근대니 때려 맞추려고는 하는데, 당연히 서양애들이랑은 안 맞는게 너무 많겠지? 도대체, 서양의 고대 국가인 로마 제국이랑 데칼코마니처럼 완전 일치하는 우리 고대 국가가 어디 있겠냐구...

그리고 우리 나라 국사 교과서도 한번 봐봐. 뭐, 고대 사회로의 발전, 근세로의 전환... 이런 거창한 제목들은 많이 나오는데, 왜 고대고, 왜 근세고... 이런 설명들은 살짝 생략되어 있잖아~~

그래도 나름대로 역사 학자 님들께서 고민해서 만들어놓은 시대구분이 있고, 왜 그런지에 대해서도 (교과서에는 없지만) 설명해 놓은 것들이 있으니 지금부터는 그거라도 참조하면서 글을 써야 할 것 같네.

그런데, 이 점은 분명히 해둬야 할 것 같아. 여기서 시대구분 이야기를 하는 것은 어쩔 수 없이 하는 거라는거... 기존의 모든 역사가들이 자기 나름대로 <시대 구분>을 해 놓고 이야기를 전개하기 때문에 여기서도 어쩔 수 없이 시대 구분이라는 걸 다루는 것 뿐이야. 사실, 시대 구분은 절대적인 것도 아니고, 필요하면 원하는 대로 시대구분을 해 버려도 상관없거든.

http://historia.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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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사 이야기 (NO.4)

한국사에서 시대구분이 시작된 시기는?

- 시대구분 이야기 -

자, 이제 서양의 시대구분에 대한 이야기는 끝내자. 이제, 우리 역사에서는 어떻게 <시대 구분>를 하는 지 알아보도록 할꺼야. 자, 칼하나 들고 우리 역사를 이렇게도... 저렇게도... 조각조각 내보면서 <카리스마> 있게 놀아볼까나? (헉... 유치한 개그 ㅋ)

그럼, 한국근현대사를 공부할 테니, 한국사에서 근대, 현대라는 개념이 언제 등장했는지 알아봐야겠지? 그 첫 번째, 시간.... First Time.... go!

지난 시간에 서양 <근대인>들이 <중세>와는 다른 자신들의 세계를 표현하기 위해 <근대>라는 말을 사용했다는 이야기를 했잖아. 그런데 말야. 고대-중세-근대라는 서양인들의 구분은 시간에 따라 나눈 구분점이야. 서양 근대인들이 가까운 시간을 자신들의 시간인 <근대>로 파악하면서, 점점 멀어지는 시대를 다른 용어로 표현했었지.

자 그럼 자세히 한번 볼까? <근대>의 사람들은 역사를 이렇게 생각한 거야. 역사는 먼 옛날의 이야기부터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시간별로 나눈 것이라구.... 하지만, 어떤 시대를 나누었다면, 아무 생각없이 나누진 않았겠지? 당연히 시대마다 그 시대를 상징하는 무언가 특징이 있다고 생각하고 시대를 나누었을 거야. 그렇게 시간이 쭈욱~~ 흐르면서 점점 나은 세상으로 <발전>했기 때문에, 가장 발전한 근대라는 시대까지 왔다고 생각한 거지.

결국, <근대인>들이 시대 구분을 했던 목적은 <세상이 가장 올바르게 발전했다>라는 자부심을 갖고 싶었기 때문이야.

하지만, 우리 역사에서는 <서양 근대인>들이 생각하는 그런 발전을 똑같이 찾기가 너무 어려운 일이거든. 우리 역사는, <시대에 따라 발전했다>라는 명확한 기준보다 더 확실한 기준점이 있어. 그건 바로 <고조선 - 삼국시대 - 고려 - 조선>과 같이 왕조가 바뀌면서 새로운 시대가 되었다는 <우리식 기준>이 있다는 거야.

한마디로, 우리 역사에서는 왕조별로 각 시대를 나누는 것이 한 시대를 이해하는데 훨씬 편하거든. 이렇게, 왕조별로 역사가 다 다르고, 발전하는 모습이 다 다른데, 서양식으로 나누는 구분법을 사용하려고 하니깐 너무~ 안 맞는거야.

에구구... 우리 역사는 서양의 기준에 맞추어 표현하기 너무 힘들다. 그런데 옛날 한때.... 이걸 이용해서 우리 역사를 아주~ 비하하는 역사학자들이 짜잔~ 하고 등장했었어. 그 나쁜 사람들이 누구냐구? 바로 우리나라를 점령했던 시기, 즉 일제 식민지 시대의 <일본 역사학자>들이지.

일본 역사학자들은 박은식, 신채호 선생님 같은 민족주의 역사학자 분들이 우리 역사를 연구하는 것을 너무 싫어했어. 조선의 역사 연구가 많이 진행될수록 일본이 조선인들을 <무식한 인종~>으로 몰아세우기가 어려웠거든.

그래서~  일본 총독부에서는 1920년대부터 <조선사 편수회>라는 단체를 만들어 조선 역사를 왜곡하기 시작했지.

그럼 이 <조선사 편수회>는 당연히 뭘 했을까? 당연히~ <일본이 조선을 점령한 것이 너무 잘된 일이다> 라는 글들을 쓰기 시작했겠지, 뭐...  그럼 이 단체의 사람들이 주장한 것들을 한번 쭉~ 들어보고, 그 결론이 뭔지 같이 볼까나?

나쁜넘A : 야... 조선애들은 지들 고대 역사가 없어. 북쪽은 중국애가 내려와서 무슨 기자 고조선을 만들었잖아. 또, 중국 한사군한테도 점령당해서 뚜들겨맞구... 남쪽은 우리 일본에게 점령당해서 임나일본부를 세웠고... (타율성이론)

나쁜넘 B : 뭐, 그 이후에도 거란애들, 여진애들, 몽골애들... 돌아가면서 한반도를 박살냈잖아. 뭐, 만주쪽 이민족들의 역사가 바뀔 때마다 조선 역사가 바뀌니... 이건 뭐, 조센징은 역사가 있긴 있어? (만선사관)

나쁜넘 C : 결국 조선애들의 역사는 한반도를 벗어나보지도 못한 역사야. 뭐? 위대한 대륙 진출? 다 뻥이지 뭐~  중국, 일본, 이민족을 따라하면서 이루어진 역사일 뿐야... 어설픈 따라쟁이의 역사네!! (반도사론, 사대주의론)

나쁜넘 D : 한마디로, 고려니, 조선이니 하는 왕조 교체는 별 의미도 없는거라니까... 얘들은 쭈욱~ 고대 수준이니, 자본주의같은 건 생각도 못한 원시인들이지. 뭐, 우리 일본 아니였으면 영원히 발전도 없는 애들이야.(정체성 이론)

결논내봐 : 결과적으로 원시적인 조선이 식민지가 된 건 천만다행인 거야. 일본덕에 근대화도 된거잖아. 조센징들은 일본의 식민지 교육을 감사해야돼.(식민사관의 결론)

뭐, 이런 논리를 만든거야. 한마디로~ 일본이 한국을 지배한 것이 <축복>이라는 것을 광고하기 위해 한국사를 연구한거지.

그럼 우리 역사학자들도 본격적으로 <시대 구분>이라는 것을 하면서, 일본의 이상한 주장을 반박해야겠지?

그 때, 짜잔~ 하고 나타나 시대 구분을 시작한 한 남자가 있었으니... 그 인물이 바로 <마르크스의 시대구분>을 가지고 일본과 싸웠던 사회주의 역사학자 <백남운>이란 사람이야.

일본학자 : 야... 조선 너네는 왕만 자꾸 바뀌지, 발전도 없고 수준은 계속 고대 수준이고.... 너무 미개하잖아.

백남운 : 아니거든? 우리도 고대-중세-근대 사회가 있었어. 내가 쓴 <조선사회경제사>, <조선봉건사회경제사> 뭐 이런책 읽어볼래?

일본학자 : 귀찮어. 그 책에서 뭐라고 쭝얼거렸는데? 어쨌든 조선애들은 원시적이라 중세가 없었다니깐?

백남운 : 자, 우리 마르크스 선생님이 말씀하신 시대 구분을 조선에 적용해 볼까? 이걸로 계산해보니깐, 와... 서양 고대처럼 우리 역사에도 노예제도 있었지, 토지생산 있었지.... 서양 고대처럼 중세 봉건제도도 있었고, 넓은 토지를 경작하는 장원제도도 있었네. 거기에도, 지주와 농노라는 계급투쟁도 있고... 와... 아 있다, 다 있어!!! 자료 들춰보니깐 하나하나 증거 다 있다!!!

자, 이렇게 백남운 선생을 시작으로 우리도 시대 구분이라는 걸 시작한 거야. 근데, 이 시대구분은 일본애들의 황당한 헛소리에 대항하기 위해 <마르크스> 이론을 우리 역사에 마구마구 가져다 붙인 거라서, 약간 억지도 좀 있었다는게 단점이라면 단점이랄까?   

자, 이렇게 시작한 시대구분은, 민족주의 역사학자들에게도 퍼지기 시작했지. 그런데, 민족주의 역사학자들은 우리 민족이 찌질하지 않다는 것을 강조하다보니, 위대한 고대 북방의 역사, 특히 고구려의 역사 연구에 많이 집중하게 되었지. 심지어 어떤 학자는 <고구려>를 <로마제국>과 맞먹는 위대한 고대 제국으로 표현하기도 했어.

그러던 어느 날... 일본이 패망하고 우리가 광복을 맞이한 그 기쁜 날...

일본으로부터 해방된 이후 문제가 생겼어. 사회주의자인 백남운 선생도 북한으로 넘어갔고, 대부분 민족주의 역사가들이 스스로 북한에 갔거나, 납치되서 북한에 넘어가 버린 거지.

그 결과!!! 1950년대 이후, 남한에 남은 역사학자들은 시대구분 같은 것에는 관심이 없는 <실증주의> 역사학자들이 대부분 이였어. 실증주의 역사학자들은, 있는 그대로의 사실만 가지고 역사를 연구한다는 입장이였지. 따라서 이들은 민족주의니, 공산주의니, 자본주의니 하는 단어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고 해.   

그나마, 1960년 4.19혁명이 일어나서 이승만 정권이 무너지자 <시대구분>이라는 말이 빤짝~! 등장하기도 했지. 역사는 <혁명으로 발전한다>는 생각을 갖는 시민들이 등장했기 때문이야. 그래서 <시대를 구분할까?> 라고 생각한 용감한 역사학자들이 등장하기도 했어. 하지만....

그것도 잠깐~ 이었구.... 박정희 군사 정권이 시작되자, 또 다시 자기만의 관점을 가지고 시대 구분을 하겠다는 용기를 가진 역사학자들은 점점 사라졌지. 교과서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시대구분을 한 학자들은 <재야학자> 소리를 듣기도 했구.

그럼 본격적으로 <시대구분>이란 걸 시작한 것은 언제일까? 그건 바로, 한국 사회에서 <민주화 운동>이 성공한 이후야. 한국 사회에서 민주화 운동이 성공한 건,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였으니, 시대구분도 1990년대가 되어서야 겨우 교과서(3차 교과서)에 등장하게 된 거지.

자, 그럼 다음 장에서는 1990년대 이후 짜잔~ 하고 연구가 시작된 우리 역사의 시대 구분 기준을 한번 살펴보면서 이야기 해볼까나...


-  다음 정보들을 참조하면 더 많은 자료를 얻을 수 있어요!  -


중국사시대구분론
국내도서>역사와 문화
저자 : 민두기
출판 : 창비(창작과비평사) 1997.08.31
상세보기

한국사 시대구분론
국내도서>역사와 문화
저자 : 차하순
출판 : 소화 1995.04.25
상세보기

조선사회경제사
국내도서>역사와 문화
저자 : 백남운 / 박광순역
출판 : 범우사 1999.02.10
상세보기

조선민족의 진로 재론
국내도서>역사와 문화
저자 : 백남운
출판 : 종합출판범우(BW범우) 2007.08.15
상세보기

르네상스의 마지막 날들
국내도서>역사와 문화
저자 : 시어도어 래브 / 걍유원,정지인역
출판 : 르네상스 2008.12.29
상세보기


- 유튜브 시대구분 자료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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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사 이야기 (NO.3)

근대, 현대라는 시대 구분을 해보자!

- 시대구분 이야기 -

자, 지금부터 시작할 이야기는 시대 구분에 대한 이야기야.

그런데 말이죠. 우리가 지금부터 시작할 이야기가 바로 <근현대사>잖아. 그럼, 이야기를 전개하기 위해서는 <근대, 현대>라는 용어부터 알아야겠지? 

대체, 근대는 뭐고, 현대는 또 뭘까? 대체, 누가 기준을 정한건지... 뭐, 근현대가 뭔지 모르고 이야기를 할 수 없으니 우선 그것부터 끄적거려 볼꺼야. 역사책을 보면 흔히 고대, 중세, 근대, 현대... 뭐 이런 말들이 나오잖아? 근데 그건 누가 정한 건지 참.... 이런 거 안 정하고 그냥 역사이야기를 하면 참 편할텐데... 

자, 이렇게 고대니, 중세니, 근대니... 이렇게 시대를 나눠두는 것을 <시대 구분>이라고 한다나 뭐래나.. 이 시대 구분 중에서 가장 유명한 구분이 바로, <마르크스>의 시대 구분이야. 하지만, 이 사람이 처음으로 시대구분을 한 것은 아니고, 그냥 가장 유명한 시대구분일 뿐이지.  

사실, 시대구분이라는 것은 스스로 <근대인>이라고 생각했던 서양인들이 만들어 낸 <발명품>이야.  혹시, <르네상스>라는 말은 들어봤어? 미켈란젤로니, 라파엘로니, 레오나르도 다빈치 선생이니 하는 분들 나오는 서양 15-16세기 시대를 말하지.

그 시대의 사람들은 이전 시대와 자신들의 <자부심>있는 시대를 구분하고 싶어했거든. 그래서 시대구분을 시작한거야. 뭐, 한자로 봐도 딱 답이 나오네. 고대는 옛 시대, 중세는 중간세상, 근대는 지금과 가장 가까운 시대....

하지만 시대구분이라는 게 절대적인 <법칙>은 아니야. 역사를 살아가는 건 우리 인간들이니깐, <인간>들이 자신의 입장에서 지금과 다른 과거를 정리하기 위해 임의로 나누어 놓은 게 바로 <시대>라는 단어거든.

예를 들어, 내가 일기를 쓸 때에도 나의 유아기, 유치원기, 소년기, 청년기... 뭐 이렇게 나누지만, 사실 그건 내 맘대로 기준을 잡고 대충~ 정한 거잖아.

또 하나 예를 들자면, 그 당시 기독교인들은, 창세시대, 아브라함시대, 유대시대, 예수시대... 등등으로 시대를 나누었어. 하지만, 이것도 크리스찬이 아니면 절대적인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꺼 아냐? 반대로, 르네상스인들의 시대구분은 <크리스찬>들이 보기엔 신앙에 맞지 않잖아? 뭐, 이렇게 임의적이라는 거지.

결국, 자신의 기준과 다른 시대구분은, 그냥 임의로 나눈거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어. 시대 구분은, 사람에 따라 주관적으로, 자기 맘대로... 하는 거니깐.

어쨌든 간에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보자.

서양의 근대인들은, 근대가 시작된 15세기를 무지 자랑스러워 했어. 솔직히 그 이전 시대인, 중세 시대에는 기사도가 어쩌구, 십자군 원정이 어쩌구, 교황이 어쩌구 말은 많이 했어도 <우물 안 개구리> 시대였거든.

한번 <근대인>들의 눈으로 중세를 바라보자. 

아직... 미국이라는 신대륙도 아직 몰랐고, 아시아 애들이랑은 무역도 제대로 못했고, 종교개혁도 이루어지지 않은 시대....  한마디로, 아시아인들은 각각 무역권을 만들고, 문명간 교류도 활발히 하고 하던 시기에 좁은 땅덩어리에서 지들끼리 죽자 살자 치고 받고 싸운 시대.... 휴... 우리가 100년전의 시대를 지금보다 덜 발달한 시대라고 생각하듯이 근대인들도 중세 시대가 쫌~ 한심했겠지?

그런데, <근대>라는 새로운 세계가 시작되었어. 이제, 짜잔~ 하고 <세계화> 시대가 시작된거야.  콜럼버스가 신대륙도 발견하고, 아시아 무역권에 가서 후추도 얻어 왔어. 와~ 세상이 이렇게 넓고, 신기한 세상이 많구나... 하고 생각했겠지? 이런 새로운 세상을 본 사람들은 자신들의 시대가 얼마나 자랑스러웠겠어?

야...  르네상스, 종교개혁, 신항로 개척.... 우리 쫌 잘나가기 시작하는구나...

그러다 보니, 지금까지 믿었던 가치관이 점점 흔들리기 시작하면서 지금까지의 세상이 너무 현실과 달라보이기 시작한 거지. 자, 그럼 이 시대에 사람들의 생각이 어떻게 변해가는지 몇몇 인물들의 가상 대화를 통해 살펴볼까?

교황 : 야... 니들 라틴어 읽을 줄 모르잖아. 내가 성경책 읽어 줄테니 잘 들어. 하나님께서는 <면죄부>라는 티켓을 사는 사람에게 천국을 예약하셨거든. 무식한 일반인들아, 이해되었니? 자, 줄서... 티켓사세요.. 티켓... 교황한테 돈 바치면 천국가요... 교황믿음 만세천국 교황불신 바루지옥.....

로렌쪼 발라 : 놀구있네. 내가 조사해 봤더니, 교황이랑 황제랑 밀약맺고 둘이 이중장부 만들어서 이 땅, 저 땅 다 나눠먹었던데...  이게 뭐야~ 대체, 교황이 판교지구 투기업자랑 뭐가달라? 교황이랑 프랑크 왕국 황제랑 서로 땅따먹고, 정치자금 대주고 이런 뒷거래 했다메? 내가 자료 다 찾았다. 뭐 지금부터는 성경책 내가 직접 읽을란다. 니가 읽어주는 거 안 믿어.

루터 : 라틴어? 되었구... 지금부터는 모국어로 성경책 번역해줄테니 그거 읽으면 되겠다. 성경 직접 읽고 스스로 믿음을 가지세요... 우리 힘으로 종교를 바꿔 보자구요. 일단, 교황 자금줄 좀 끊어놔야겠네. 그래야 존경하는 우리 귀족분들이 힘좀 쓸거 아니겠어? 교황불신 귀족만세~~ 종교개혁 만세~~~

  갈릴레이 : 근데, 교황이 한 말을 반박해도 될까? 내가 망원경 만들어서 보니깐 지구가 돌던데.... 근데,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는 말은 내가 안했는데... 어떤 넘이 책 팔아 먹으려고 그런 말을 써 놓았어?

콜롬버스 : 그래? 그럼 난 지구가 돈다는 말도 믿을께. 지구가 둥글다는 말도 믿어볼께. 이제, 지구 반대편으로 돌아서 인도 가봐도 될까? 진짜 간다.. 진짜루.... 지구 반대로 갔다가 낭떠러지 만나서 죽는 거 아니지? 확실... 하지? 후덜덜...

뭐, 점차 이런 분위기가 되가는 거다.

세상이 바뀌고 세계가 넓다는 것을 알았으니, 유럽인들도 이제 <세계화> 시대에 걸맞는 뭔가가 필요했던거야. 이제, 아시아 애들 노는데도 좀 놀아달라고 애원해보고, 무역도 같이 해보고 싶었겠지.

한마디로!! 유럽애들도 점차 <스팩!>이 마련된 거야. 그래서 서양인들은 지금까지의 시간과 공간을 구분하는 기준점을 만들고, 과거와 다른 <스팩!>을 갖춘 <신유럽인>을 표현할 용어가 필요했던 거지. 

그리하여....

과거 찬란했던 그리스와 로마 제국의 시대를 먼 옛날의 시대, <고대>라고 말하면서 시대를 나누었어. 그리고, 로마 제국의 유산이 사라진 시대를 <중세>로 표현한 거지. 그리고 르네상스를 겪은 자신들의 위대한~ 시대를 <근대>로 부르게 된 거야.

그런데 말야. 문제가 생겼어. 15-16세기에 살았던 르네상스인들이 자신들의 세계를 가장 가까운 시대인 <근대>라고 표현했는데, 시간이 계속 지나니깐 19세기, 20세기가 온 거야. 헐.... 그럼 이 새로운 시대는 또 뭐라고 불러야하지???

서양의 학자들은 고민에 빠지기 시작했지. 아... 산업혁명이 시작되더니, 뭔가 세상이 더 빠르게 바뀌고, <근대>와는 다른 또 다른 <신세계>가 시작되었는데, 이걸 무슨 용어로 표현해야 하냐구....

그래서, 세계 1, 2차 대전이 끝날 때쯤 새로운 용어를 찾게 된 거야. 히틀러가 자살하고 일본이 원자폭탄을 맞고 난 이후... 새롭게 변화한 세상. 미국이라는 나라를 중심으로 <자본주의> 체제가 정착된 세상. 즉, 1945년 이후의 세계를 표현할 새로운 용어를 창작한거야.

그것이 바로 근대보다 더 지금을 표현할 수 있는 시기, 즉 <현대>라는 용어인거지. 그리하여.... <고대-중세-근대-현대>라는 4단계 시대구분법이 드디어 완성된 거야.

아까 위에서 마르크스의 시대 구분 보았지?

마르크스는, 이런 4단계 시대 구분법에다가 자신의 철학을 합쳐서 <마르크스식 시대구분>을 만든 사람이야. 그 사람은 노예제 사회, 봉건제 사회, 자본주의 사회, 공산주의 사회 등을 거치면서 사회가 발전한다고 믿은 사람이지. 그래서 그 사람을 사회주의자이자, 공산주의 사상의 아버지라고도 표현하곤 해.

마르크스는 고대, 중세, 근대 등등의 시대구분에 노예제, 봉건제, 자본주의 등을 짝~ 리믹스해서 자신만의 시대구분을 만들었지. 물론, 이 사람 말고도 고대, 중세, 근대 등등의 시대에 자신의 철학을 붙여 시대구분을 한 사람은 많겠지?

그런데, 이 시대구분법은 문제가 있었어. 뭐~ 19세기 이후에 서양 애들이 세계사의 주도권을 잡았기 때문에 이 시대구분법을 널리 애용했거든. 하지만, 아시아에서는 이게 너무나 안 맞는 다는게 큰 문제였지.

생각해봐봐. 한국이나 중국, 일본 역사에다가 고대니, 중세니, 근대니... 이런 단어들를 끼워 맞추려고 하니깐 안 맞는게 한두가지겠어? 한국인이 15세기 르네상스를 살았던 사람들이 아닌데, 서양애들이 살았던 시대를 무리해서 적용하기엔 너무 안맞아서 삑사리가 나지 시작한거지.

서양 애들도 골치가 무척~아팠을 거야. 서양식 시대구분이 만능인줄 알았지만, 다른 세계에서는 적용이 안되니깐 환장하겠지.

해결책은 뭘까? 유럽의 제국주의 국가들은 아주 심플한 해결책을 내놓았어. 심플하다기 보다는 귀찮아서 대충 방법을 마련한거지. 시대구분이 애매한 아시아에다가는 몽땅 다 <중세 수준이네>를 가져다 붙여 버리면... 참~ 쉽죠.. 잉~ 

영국의 스펜서 : 뭐야... 중국, 일본, 한국, 뭐 인도, 오스만 제국... 이것들은 나름대로 세계 4대문명의 발상지라면서 19세기까지 쭈욱~ 중세 봉건시대 수준이네. 그니깐 니들이 우리 서양한테 정복이나 당하지 ㅋㅋ 찌질이들~

하지만, 그나마 아시아에서는 <메이지 유신>이니 뭐니 하면서, 쫌~ 산다 싶었던 <일본> 이라는 나라가 있었어. 아시아의 다크호스~ 일본이 그 말에 바로 발끈~ 했지.

일본 : 되거든!!! 웃기지도 않네.. 아시아는 아시아 나름대로 발전과정이 있거든! 니네 유럽애들 발전이랑 다른 면도 무지 많거든? 니들이 <천황제도>를 알고, <막부시대>를 알아? 글고... 우리도 <메이지 유신>으로 나름 수준급으로 발전했는데, 몰랐어? 니네 시대 구분이 좀 우리랑 많이 다르네. 아시아에는 근대도 아니고, 현대도 아니지만, 독특하게 발전했다는 걸 왜 몰라주는 거야? 오 좋아.. 우리 아시아에서 독특하게 발전한 그 시대... 그걸 <근세>라고 부르면 되겠네.

그리하여 일본 학자들의 연구로, 4단계 시대 구분법이 <근세>를 포함한 5단계 시대 구분법으로 정착된거야. 그래서~ 아시아 역사에서는 바로 이 <근세>라는 말도 종종 사용하기 시작했지.  물론 우리 한국사에서도 지금 사용하고 있구.

뭐, 암튼 중요한 것은 서양식 시대 구분이라는 것이 우리랑 너무나 안 맞는다는 거야. 우리식으로 고대니, 중세니, 근대니 때려 맞추려고는 하는데, 당연히 서양애들이랑은 안 맞는게 너무 많겠지? 도대체, 서양의 고대 국가인 로마 제국이랑 데칼코마니처럼 완전 일치하는 우리 고대 국가가 어디 있겠냐구...

그리고 우리 나라 국사 교과서도 한번 봐봐. 뭐, 고대 사회로의 발전, 근세로의 전환... 이런 거창한 제목들은 많이 나오는데, 왜 고대고, 왜 근세고... 이런 설명들은 살짝 생략되어 있잖아~~

그래도 나름대로 역사 학자 님들께서 고민해서 만들어놓은 시대구분이 있고, 왜 그런지에 대해서도 (교과서에는 없지만) 설명해 놓은 것들이 있으니 지금부터는 그거라도 보면서 이야기 해보자. 다음 이야기에서는 우리 역사에서의 근현대사는 어디서 부터인지 파해쳐보도록 할꺼야. 

그런데, 이 점은 분명히 해둬야 할 것 같아. 여기서 시대구분 이야기를 하는 것은 어쩔 수 없이 하는 거라는거... 기존의 모든 역사가들이 자기 나름대로 <시대 구분>을 해 놓고 이야기를 전개하기 때문에 여기서도 어쩔 수 없이 시대 구분이라는 걸 다루는 것 뿐이지. 시대 구분은 절대적인 것도 아니고, 필요하면 원하는 대로 시대구분을 해 버려도 상관없거든. 자 그러면 한국사의 시대구분은 어떻게 해 놓았는지.... 출발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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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학계의 한국근대사 논쟁 - 사회성격과 시대구분 문제
국내도서>역사와 문화
저자 : 이병천
출판 : 창비(창작과비평사) 1989.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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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시대구분론
국내도서>역사와 문화
저자 : 차하순
출판 : 소화 1995.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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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보는 고대사
국내도서>역사와 문화
저자 : 박노자
출판 : 한겨레출판 2010.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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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따라잡기 1 - 원시시대부터 남북국 시대까지 (개정판)
국내도서>아동
저자 : 송은명 엮음
출판 : 바른사 2004.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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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신문 1 - 원시시대
국내도서>아동
저자 : 역사신문편집위원회
출판 : 사계절 1995.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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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그렇구나 우리역사 1 - 원시시대
국내도서>아동
저자 : 송호정
출판 : 여유당 2005.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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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국내도서>아동
저자 : 프랑수아즈샤팽 / 고선일역
출판 : 보물섬 2003.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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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의 세 거장
국내도서>청소년
저자 : 클라우디오 메를로 / 노성두역
출판 : 사계절 2003.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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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인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국내도서>아동
저자 : 김지혜
출판 : 푸른나무+(푸른나무플러스) 2010.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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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를 만든 사람들
국내도서>역사와 문화
저자 : 시오노 나나미(Nanami Shiono) / 김석희역
출판 : 한길사 2001.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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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히스토리아 기업부설연구소

한국 근현대사 낙서 노트 (1)

근대를 구분하는 기준점과 세계사

1. 시대구분은 누가하는 거야?

한국 근현대사 낙서장 첫 이야기이다. 근데 말이지, 이야기를 하려다 보니 용어부터 맘에 걸리네. <근현대사>라니... 그럼 근대, 현대라는 건 뭐고, 누가 기준을 정한거야? 먼저 근현대가 뭔지 모르고 이야기를 할 수 없으니 간략하게 끄적거려보자.

뭐 역사책을 보면 흔히 고대, 중세, 근대, 현대... 뭐 이런 말들이 나온다. 근데 그건 누가 정한 거지?

사실 말이지. 시대구분이라는 것은 스스로 <근대인>이라고 생각했던 서양인들이 만들어 낸 <발명품>이야. <르네상스>라는 말은 다 알지? 미켈란젤로니, 라파엘로니, 레오 선생이니 하는 분들 나오는 서양 15-16세기 말야.

서양의 근대인들은, 15세기를 무지 자랑스러워 했어. 솔직히 중세 시대에 기사도가 어쩌구, 십자군 원정이 어쩌구, 교황이 어쩌구 말은 많이 했어도 그 시기는 <우물 안 개구리> 시대였거든. 아시아인들은 각각 무역권을 만들고, 문명간 교류도 활발히 하고 하던 시기에 유럽인들은 좁은 땅덩어리에서 지들끼리 죽자 살자 치고 받고 싸웠잖아.

그런데, 르네상스니, 종교개혁이니, 신항로 개척이니 하면서 밖으로 눈을 돌려보니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너무나 많았다 이거야. 그러다 보니, 지금까지 믿었던 가치관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하는 거였지.

교황 : 야... 니들 라틴어 읽을 줄 모르잖아. 내가 성경책 읽어 줄테니 잘 들어. 하나님께서는 <면죄부>라는 티켓을 사는 사람에게 천국을 예약하셨단다. 자, 줄서... 티켓사세요.. 티켓... 교황한테 돈 바치면 천국가요... 교황믿음 만세천국 교황불신 바루지옥.....

로렌쪼 발라 : 놀구있네. 내가 조사해 봤더니, 교황이랑 황제랑 밀약맺고 둘이 해 쳐먹은 거 많던데, 이게 야~ 대체, 교황이 교지구 투기업자랑 뭐가달라? 교황이랑 랑크 제랑 따먹고, 치자금 주고 이런 거래 다메? 료 다 았다. 지금부터는 성경책 내가 직접 읽을란다. 니가 읽어주는 거 안 믿어.

루터 : 라틴어? 되었구... 지금부터는 모국어로 성경책 번역해줄테니 그거 읽으면 되겠다. 성경 직접 읽고 스스로 믿음을 가지세요... 우리 힘으로 종교를 바꿔 보자구요. 일단, 교황을 좀 죽여놓아야 우리 귀족분들이 힘좀 쓰실거에요. 교황불신 귀족만세~~

갈릴레이 : 근데, 교황이 한 말을 반박해도 될까? 내가 망원경 만들어서 보니깐 지구가 돌던데.... 근데,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는 말은 내가 안했는데... 어떤 넘이 책 팔아 먹으려고 그런 말을 써 놓았어?

콜롬버스 : 그래? 그럼 난 그 말 믿고 지구 반대편으로 돌아서 인도 가봐도 돼? 진짜 간다.. 진짜루.... 지구 반대로 갔다가 낭떠러지 만나서 죽는 거 아니지? 확실... 하지? 후덜덜...

뭐, 점차 이런 분위기가 되가는 거다. 세상이 바뀌고 세계가 넓다는 것을 알았으니, 이제 <세계화> 시대에 걸맞게 아시아 애들 노는데도 좀 놀아달라고 애원해보고, 무역도 같이 해보고 싶었겠지. 유럽애들도 점차 <스팩>이 되잖아~ 그래서 서양인들은 지금까지의 시간과 공간을 구분하는 기준점을 만들어 본 거야.

과거 찬란했던 그리스와 로마 제국의 시대를 <고대>라고 기준점을 잡고, 로마 제국의 문화유산이 박살난 시대를 <중세>로, 그리고 르네상스를 겪은 자신들의 시대를 <근대>로 파악한거지. 이 시대 구분법이 여러 서양의 역사 학자들을 거치면서 <현대>라는 살까지 더해서 4단계 시대구분법이 나왔어.

그런데, 이 시대구분법은 문제가 있었지. 뭐 19세기 이후에 서구 애들이 세계사의 주도권을 잡았기 때문에 이 시대구분법을 널리 애용하긴 했지만, 아시아 문화권에서는 이게 너무나 안 맞는다는 거야.

영국의 스펜서 : 뭐야... 중국, 일본, 한국, 뭐 인도, 오스만 제국... 이것들은 나름대로 세계 4대문명의 발상지라면서 19세기까지 쭈욱~ 중세 봉건시대 수준이네. 그니깐 니들이 우리 서양한테 정복이나 당하지 ㅋㅋ

일본 : 되었네 이 사람아.. 아시아는 아시아 나름대로 발전과정이 있었고, 니네 발전이랑 조금 다른 면이 많거든? 우리도 <메이지 유신>으로 나름 발전했는데, 몰랐어? 니네 시대 구분이 좀 우리랑 안 맞는다. 우린 근대랑 현대 사이에 독특한 발전 과정이 있거든? 오.. 그걸 <근세>라고 부르면 되겠다...

그리하여 4단계 시대 구분법이 <근세>를 포함한 5단계 시대 구분법으로 정착된거야. 뭐, 암튼 중요한 것은 이 시대 구분이라는 것이 서구적인 것에서 출발했다는 점이지. 따라서 우리식으로 고대니, 중세니, 근대니 때려 맞추려고는 하는데 너무나 안 맞는다는 거야.

일단, 한국사 교과서부터 봐봐.... 뭐 고대 사회로의 발전, 근세로의 전환... 이런 거창한 제목들은 많이 나오는데, 왜 고대고, 왜 근세고... 이런 설명들은 살짝 생략되어 있거든. ㅋㅋ

그래도 나름대로 역사 학자 님들께서 고민해서 만들어놓은 시대구분이 많으니, 그걸 참조로 근현대사가 어디서 부터인지 파해쳐보자.

2. 한국 근대와 현대의 기준점

자, 그럼 한국사에서 근대사회가 언제부터인지 밝혀보자.

사실 한국사에서 근대는 서양인들이 구분하는 기준과는 완전 달라. 서양애들의 근대 기준은 자본주의가 시작되고, 민족이라는 개념이 잡히기 시작하는 시기야. 뭐, 칼뱅이라는 종교개혁가가 기독교인들은, <돈 잘 벌어도 천국가유~>라고 자본주의의 단서가 되는 말을 했다나 뭐래나... 또 로마제국의 울타리에서, 교황의 울타리에서 살던 유럽인들이 <근대민족국가>라는 개념을 잡고 절대왕정이라는 걸 만든 것도 바로 이 <르네상스> 이후야.

아시아의 <근대 기준>은 사실 유럽인들이 말하는 <자본주의>가 언제 생겼냐는 거야. 근데, 아시아는 대부분 유럽인들에 의해서 식민지가 되었거나, 강제로 개항했잖아.

따라서 아시아의 <근대화>란, 거의 대부분 유럽인들이 협박~해서 강제로 <자본주의>가 들어온 시기가 바로 근대란 거지. 또, 하나 중요한 것은 강제적인 개방이었기 때문에 <국가>를 지켜야한다는 확고한 의지가 생겨서 <민족의 생존>을 생각하게 된 시기를 근대로 볼 수 있어.

뭐, 유럽과 좀 다른 점이라면, 걔네들은, 다른 나라를 점령해서 민족의 영광을 널리 알리려는 거고, 아시아인들은 꼴보기 싫은 유럽민족들이 식민지를 넓히자, <니들 짱난다~>면서 저항했던 민족주의라는 거 정도지.

자, 그럼 한국사에서 말하는 근대의 기준이 감잡히지? 정치적으로는 <근대민족국가의 수립>,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 국가의 수립>이 바로 근대화의 기준인 거지.

그럼, 민족국가, 자본주의 국가가 대체 언제야? 이걸 가지고 많은 학자분들께서 싸웠는데, 뭐 대충 정리하자면 이런거야.

18세기 주장파 : 일본이 안 쳐들어왔어도 우린 스스로 민족국가를 만들 수 있었거든? 특히 박지원, 박제가 등 실학파들 중에 <북학파> 있었잖아. 우리 민족이 강해지기 위해서 청나라의 발달된 문물을 배우자는 사람들. 특히, 조선후기에 영조, 정조 시기를 봐봐. 거의 서양의 루이 14세 안 부러울 도로 대군주잖아. 그 때 자본주의가 발달할 딱... 찬스였는데. 박지원의 양반전 보면 양반이 장사하는 방법도 나오구...

흥선대원군기 주장파 : 흥선대원군이 프랑스 격파, 미국 격파하고 침략전쟁을 다 막았잖아요... 일본, 청나라 간섭도 다 막아 버리고... 그것만큼 민족적인게 어디있어요? 그리고 대원군기에 국가 재정이 튼튼해지면서 서울 등 근기지방부터 자본주의가 발전하잖아요?

강화도 조약 주장파 : 그래도 확실한 것은 일본이랑 맺은 <강화도 조약>이거든? 그 조약으로 우리가 비로소 세계사에 눈뜨고, 자본주의가 먼지 경험하게 된 거잖아. 비록, 일본이 나쁜 의도를 가진 것은 맞지만, 조선이 개항하고 자본주의를 배운 건 1876년이야. 또, 일본 덕분에 외세에 저항하려는 <민족주의>가 비로소 시작되었고...

갑오개혁 주장파 : 강화도 조약은 그냥 문서일 뿐이구요. 실제로, 양반, 싱민, 노비같은 신분제도가 없어지고, 모든 사람이 평등해진 건 1894년 갑오개혁 아닌가요? 모두가 평등해야 비로소 하나의 민족이죠. 솔직히 조선시대에 노비가 <우리는 같은 민족, 평등한 백성이다>라고 생각했겠냐구요. 신분제 폐지, 과거제 폐지, 정치, 사회 개혁이 선행되야 근대화든 뭐든 하죠. 그리고 갑오개혁 때 조세 개혁이 시작되면서 자본주의 발전을 공식적으로 승인하는 국가권력이 성립된 거 아닌가요?

음... 다 조금씩 맞는 말인거 같다. 하지만, 현재 교과서나 일반 서적에서는 <강화도 조약>을 가장 많이 언급하는 것 같다. 뭐... 강화도 조약을 챙기려면 서양과 일본 세력의 침략도 언급해야 하고, 그러려면 당대 흥선대원군과 명성황후도 언급해야 하고.... 그러다 보면 어짜피 19세기 중반으로 넘어가게 되지.

그럼 현대의 기준은 어디지?

그건, 만장일치야.... 일본이 핵무기 꽝~ 하고 맞아서 망하고, 아시아 전체가 이 날만 되면 모두 모두 기념하고 행사를 치루는 1945년 8월 15일.... 즉 광복절 날이지.

현대가 되려면 식민지 상태에서 <민족국가의 발달>이나, <독점적 자본주의>의 발달이 이루어질 수는 절대~ 없는 거잖아. 뭐... 친일파의 국가라면 모를까.... 혹... 요즘 친일을 애국으로 바꿔주시는 뉴라이트 분들이라면 새로운 시대 구분이 가능하기도 하겠지만... ㅋㅋ

자, 그럼 재미없는 시대 구분 이야기를 여기서 끝내고 본격적인 근현대사 낙서에 돌입해보자. 그럼 19세기 서양 열강의 침입과 독자적 발전을 이루려 했던 조선의 이야기를 시작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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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히스토리아 기업부설연구소

고대 경제 무역권이 우리 민족국가의 운명을 좌우하였다.

   <뒤집어 읽어보는 역사>는 역사적 사실일 수는 있지만, 정설로 인정된 내용은 아닙니다. 일부 사료의 파편으로 구성한 내용이거나, 아직 공식적으로 인정되지 않은 역사적 내용들을 가지고 구성한 페이지입니다. 정설이 아니니, 글에 대한 비판보다는 이런 내용도 있을 수 있구나 하는 측면에서 만든 카테고리라는 점을 이해하고 읽어주세요.


1. 고대의 전쟁을 왜 공성전으로만 보는가?

우리는 고대의 전쟁하면 동이족과 중국족의 싸움.... 고조선, 고구려 등 북방의 패자들과 중국 춘추시대와 수당으로 이어지는 중국 국가들간의 세력 다툼으로 이해하곤 합니다. 그리고 동북아 국가와 중원국가의 싸움에서 주목하는 것은 부여성 - 요동성 - 평양성 등으로 이어지는 공성전을 생각하곤 합니다. 하지만, 뒤집어 생각해보면 꼭 고대의 전쟁이 공성전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바다를 통한 전쟁 역시 항상 같이 전개되었으니까요. 그리고, 당시 중국과 우리 민족의 영역 사이에 바다라는 것이 역사에 씌여진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것을 말해보고자 합니다. 그럼 시작해 볼까요?

일단 고조선과 고구려가 중국 민족과 항쟁을 벌인 경로를 보면 <교과서가 고대사에 대하여 상당히 부실하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는 교과서를 비판하려는 것이 아니라, 교과서는 중고등학생을 위한 지침용 3차 사료이기 때문에, 이 부분을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요구하는 만큼의 자세한 내용과 중요한 사료를 다룰 수 없다는 것을 말하고자 합니다. 그럼 교과서에 빠졌거나, 1단어만 기술되어 빠져 버린 바다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일단, 우리나라의 서쪽 바다는 동해와는 달리, 서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서쪽 바다의 국제적인 공식 명칭은 <황해>입니다. 아니 왜, 동쪽 바다는 일본해도, 청해도 아닌 <우리 영토로서의 동해>이면서 서쪽 바다는 <황해>라고 해야되나요? 이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여기서는 역사적인 이유만 말해보도록 하죠. 동해는 고대부터 근대까지 우리가 지배권을 가지고 영향력을 행사하던 바다입니다. 일본이 동해바다에 대한 관심을 두기 시작한 것은 임진왜란 이후 에도 막부가 들어서면서 조선과의 관계가 대등한 관계라고 인식한 이후부터이고, 메이지 유신 이후 자국의 경제력이 성장한 이후부터입니다. 즉, 근대 이전까지 이미 역사적으로 <동해>는 우리 영역으로 자리잡았죠.

그러나 <황해>는 다릅니다. 이 바다는 중국민족과 우리 민족이 고대부터 주도권을 놓고 치열하게 다투던 바다였고, 이 바다의 주도권을 누가 잡는가에 따라 고대 천하관이 바뀌곤 하였습니다. 따라서 역사적으로도 이 바다는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주도권을 잡고 자국의 <영해>로 편입하기에는 껄끄러운 면이 있었던 바다였죠.

실제 고조선, 고구려와 대중국 항쟁은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운 것처럼 육로에서의 전쟁만이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중국의 한무제가 고조선을 공격할 때, 서해바다를 이용했고, 수, 당나라의 고구려 침공도 항상 바다를 경유하였습니다. 그리고, 황해바다라는 것은 실제 한, 수, 당이 우리 국가를 침공하였던 원인 중의 하나였습니다. 그럼 나라별로 차근히 보도록 하죠.

2. 한무제는 왜 고조선을 1년간이나 공격해야만 했는가?

중국과 고조선의 치열한 항쟁이 시작된 것은 중국 한무제 때부터입니다. 진시황제도, 한고조 유방도 고조선과 직접적인 대립을 하지 않았습니다. 진나라 이후 통일된 중국은 끊임없이 흉노 등 북방민족과 영역 싸움을 하였지만, 고조선과의 직접적인 큰 대립은 없었습니다.

중국과 고조선이 직접적으로 대결구도에 들어간 것은 위만조선 때부터입니다. 교과서에서는 위만조선이 들어서면서 고조선에 철기 기술이 도입되었고, 중계무역이 성행하였다고 나옵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이 바로 <중개무역>입니다. 위만 조선이 시작한 중개무역이란, 한반도 남부의 진국과 중국 한나라 사이에서 무역을 하여 그 차액으로 큰 이득을 보는 것을 말합니다.(중개무역이란 A국과 C국사이에서 B국이 물품을 운송해주고 중간에서 차액을 챙기는 것을 말합니다. 중계무역이란, A국의 물건을 B국이 자국에 가져와 가공하거나, 물품 표지를 한 다음에 C국에 넘기는 것으로 보다 적극적인 무역을 말합니다. 역사에서는 이 2가지를 구분할 필요가 없으므로, 그냥 합쳐서 중간무역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 위만이 남방국가들의 물품을 중국에 교역하기 시작하면서 이용한 루트는 바로 <대동강>이라는 고대 상업 해상망이었습니다. 특히 위만조선 때 철기를 이용하여 정복사업을 많이 하였다는 기사도 대부분 이 대동강 유역의 루트를 확보하기 위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리고, 대동강 루트를 통한 중개 무역은 위만조선이 곧 중국의 골치거리인 흉노와도 무역을 할 것이라는 예상도 가능하게 하는 했습니다. 보통 중국이 위만조선을 공격하여 멸망시킨 것을 <고조선과 흉노와의 차단>이라고 말하는데, 그 속사정에는 이런 경제적 문제가 숨어 있었던 것입니다.

중국 한나라는 고조선을 공격할 때, 단순히 요동성을 중심으로 육로로 쳐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육로에서는 좌장군이 침입하였고, 바닷길을 통해서는 누선장군이 대동강 뱃길을 통해 평양으로 직접 쳐들어오는 양동작전을 전개하였습니다. 그리고, 고조선은 1년여간의 항쟁끝에 무너집니다.

3. 대동강 루트와 서해 북부를 일시 중국이 장악하다.

중국은 고조선을 멸망시킨 이후, 한사군을 설치하고 고조선의 영역을 한의 영역으로 끌어당겼습니다. 이 한사군은 현토군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고조선 멸망이후 나타난 조선유민들의 저항으로 거의 사라져 갑니다. 하지만, 끝까지 남아있었던 지역이 있었으니, 그곳이 대동강 연안의 <낙랑군과 대방군>이었습니다.

낙랑군이 중요하게 부각된 이유는 이곳이 바로 고대 황해안 루트를 이어주는 상업권의 맥으로서 그 중심지가 <대동강>이었기 때문입니다. 실제, 교과서와 개론서들을 보면 변한에 철이 많이 생산되는데, 그 철은 바닷길을 통해 낙랑군으로 수출된다고 적혀 있습니다. 그리고, 금관가야가 대가야에게 주도권을 넘겨주게 된 이유중 하나가 바로 낙랑군이 고구려, 백제의 협공에 망하게 되면서 <중개무역 루트>를 잃었기 때문이라고 적혀 있지요. 즉, 금관 가야는 일본 - 가야 - 낙랑군을 이어지는 고대 상업 루트를 통해 발전한 나라였지만, 낙랑군이 망하게 되면서 그 교역 대상국을 일본 - 가야 - 백제로 바꾸게 됩니다. 이것은 고구려를 자극하게 되어 광개토 대왕이 일본, 가야, 백제를 동시에 격파하고 신라를 구원하게 되는 원인으로도 작용합니다. 이 정도면 이 당시 대동강 무역로가 역사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었는지 알 것 같지요?

4. 백제와 고구려의 초기 싸움은 강과 강을 두고 무역권을 쟁탈하려 하였다.

이제 대동강을 일시 점령했던 낙랑군은 사라졌습니다. 이제 황해안 무역권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사라진 것이지요. 낙랑군이 멸망한 것은 백제, 고구려 군의 협공 때문이었고, 이들의 협공은 곧 영역 확보와 중국 민족 축출이라는 관점도 있지만, 고대 무역권 확보라는 관점도 있습니다. 낙랑이 사라져 서로 국경을 마주보게 된 백제, 고구려는 강을 사이에 끼고 큰 한판 전쟁을 시작합니다. 이들의 초기 전쟁은 한강 - 예성강, 재령강 - 대동강 이라는 황해안 루트를 두고 전쟁을 하였습니다.

먼저 주도권을 잡은 것은 백제였습니다. 4세기 백제 근초고왕은 고구려의 대동강 연안의 평양성까지 진격하여 고국원왕을 죽이고, 고구려의 해상 무역로를 장악해 버렸습니다. 보통 삼국시대의 4세기 하면, 근초고왕의 전성기로 왜 - 황해안 - 중국 남조, 북조 - 요서 점령 등으로 이어지는 고대 상업권 확보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이 상업권의 확보는 결국 당시 가장 중요한 고대 무역로인 대동강 연안과 황해안을 확보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5. 5세기 이후 황해안 무역권은 대동강이 아닌 한강을 두고 벌어졌다.

5세기 이후, 백제와 고구려의 공방전은 이제 한강을 두고 벌어집니다. 광개토대왕은 북방 영토를 확장하면서, 한강 이북까지 진출하였습니다. 백제는 수도인 한강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국운을 걸고 사투를 벌여 사수합니다. 대동강은 고조선의 중심지로서 정치, 경제, 문화의 선진지역이고, 평양평야와 바닷길을 이용할 수 있는 천연의 자원이었습니다. 반면, 한강 역시 백제의 중심지로서 김포평야의 농업중심지이자 정치적 중심지로서 그 가치가 말로 할 수 없었죠. 실제 황해안 유역의 금강 - 한강 - 대동강으로 이어지는 무역로는 모두 정치, 사회적 중심지였습니다. 사실 황해안 루츠를 이용할 수 없어서 중국의 선진문물을 받아들이지 못한 신라는 6세기 이전까지는 삼국간 항쟁에 끼지도 못하였습니다. 그리고, 삼국 중 2- 3세기 가장 체제 정비가 빨랐던 나라가 백제인 이유도 활발한 중국과의 대외교역으로 경제적 성장과 함께 중국 정치제도를 빨리 인식하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한강을 고구려의 장수왕이 차지하면서 삼국의 주도권은 순식간에 고구려로 넘어갑니다. 그리고 고구려와 백제의 경계는 이제 금강이 되어버립니다. 장수왕이 평양성으로 천도하면서 국가 기반은 고조선의 문화유산과 풍부한 물산이 집약된 대동강 연안으로 집중되었습니다. 그리고 한강은 남진정책의 전초기지가 되었는데, 그 가장 선봉지역이 남한강 하류의 충주지역입니다. 즉, 남한강 하류를 장수왕이 경영하면서 한강의 자원을 확보함과 동시에 백제를 견제하는 전초기지로 이용한 것이지요. 이것을 보통 개론서들에서는 <장수왕의 충주경영설>이라고 합니다.

6. 고구려의 무역권 독점과 반고구려 체제의 형성

고구려는 광개토대왕, 장수왕의 영토 확장으로 대동강 무역권, 한강 무역권으로 이어지는 서해안 무역권을 장악하였습니다. 또, 북방으로 넓힌 영토를 통하여 말갈, 거란, 돌궐 등에 대한 무역로도 확보하였습니다. 이러한 고구려의 패권주의는 다른 국가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였습니다. 고구려에 우호적이었던 신라는 백제와 동맹을 맺었고, 그 동맹의 핵심 내용은 한강 무역권의 탈환이었습니다. 중국을 통일한 수나라와 당나라는 고구려에 대한 적대감을 표출하였는데, 그 핵심적인 적대 이유는 흉노 이래 중국이 지배해오던 조공경제 무역 질서를 고구려가 빼았아갔다는 것에 있었습니다. 광개토 대왕 이후 고구려는 거란, 말갈, 돌궐 등에게 영향력을 행사하여 동북아시아 상권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장수왕 이후 고구려는 확보한 광대한 상권을 지키지 못하고, 그 부산물을 차기 하기 위한 내분을 겪고 있었습니다. 그 결과 신라에게 한강을 빼앗기게 되었고, 수나라에게 끊임없는 위협을 당하기 시작합니다.

고구려와 수의 전쟁은 요동성 등 공성전과 함께 대동강을 통한 바닷길 싸움도 동시에 이루어졌습니다. 수는 평양성을 직접 공격하려다가 을지문덕 장군에게 청천강에서 크게 대패하고 맙니다.(살수대첩) 이후 수는 지속적으로 고구려를 공격하였는데, 대군은 육로였지만, 실제 큰 격전지는 압록강, 대동강, 청천강 등 강 하류에서였습니다.

고구려에 대한 지나친 전쟁도 하나의 원인이 되어 수가 망해 버리자, 당나라는 고구려보다는 고구려와 무역을 통해 교류를 하고 있는 주변국들을 먼저 점령하였습니다. 서역의 경제권을 가지고 있던 돌궐 고창국을 멸망시키고, 거란과 말갈족의 주요 상업 중심지를 당이 장악하면서, 당은 다시 중국식 조공 경제 무역을 회복하였습니다. 고구려는 이러한 경제적 압력으로 인하여 친리장성을 축조하고, 연개소문이 대당강경책을 구사하기 시작합니다. 당은 고구려의 동북아 상권과 황해안 상권마저 빼앗고, 고구려를 멸망시키고자 하였지만, 안시성 싸움의 패배등으로 한걸음 물러섭니다.

7. 신라가 지키려고 했던 대동강 까지의 확보

당은 이후 나당동맹을 통하여 신라와 손을 잡고, 백제, 고구려를 멸망시켰습니다. 나당동맹에서 신라가 요구한 것은 <대동강 유역까지의 영토 인정>이었습니다. 그것은 신라 진흥왕이 한강을 차지한 이후, 대동강까지 진출하여 황해안에 대한 전면적인 권리를 행사하겠다는 의도가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당은 고구려 멸망 이후 신라에게 대동강은 절대 줄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고, 이것은 결국 신라 전체를 복속하려는 당의 야심으로 <나당 전쟁>을 유발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신라는 끝까지 사수하여 대동안 연안을 확보하였지만, 당은 이후 150년 이상 <대동강이 신라의 영토라는 것>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대동강 연안의 황해를 자국의 근거지로 생각합니다. 실제, 대동강 연안에서 중국의 동부지역까지는 많은 신라인들이 활동하고 있었고, 동부아시아의 가장 활성화된 무역로로서 많은 물자가 오가고 있었습니다.

대동강을 신라의 영토로 당이 인정한 것은 신라 성덕왕 때로, 당이 신라에게 대동강 무역권을 인정한 이유는 발해 때문이었습니다. 발해가 북방 상권을 장악하고 고구려의 뒤를 잇는 국가로 성장하자 당은 신라를 회유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8. 해상왕 장보고의 상권 확보

그러나 8세기 이후 안사의 난 당으로 당의 국력이 쇠약해지고, 동북아의 상권과 황해안의 상권은 점차 깊은 혼란 속으로 빠져들어 갑니다. 이 때 중국 - 신라 - 일본과의 해상 루트를 장악하고 거대한 상권 루트를 재건한 인물이 바로 장보고입니다. 장보고는 청해진을 바탕으로 일본 - 신라 - 중국 동부의 상권을 움켜쥐었습니다. 신라원, 신라방, 신라소 등의 명칭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이미 신라인들은 중국 동부 해안가에 무역로를 개척해두고 있었고, 장보고가 중국, 신라, 발해의 약세를 틈타 그 무역로를 완전 장악하여 <국가보다 더 큰 권력>을 확보한 것입니다. 그러나, 어이없게도 장보고는 신라 왕실의 왕위 다툼 속에서 암살당하고 맙니다.

장보고가 죽은 시점은 곧 고대가 중세로 넘어가는 시기였습니다. 중국은 송으로 넘어가 중세가 시작되고, 한반도에서는 고려가 건국되어 중세가 시작되는 과도기였습니다. 일본 역시 전후 중세시대로 넘어갔으며, 고대의 영광을 재현한 발해도 이 무렵 거란에 망하게 됩니다.

이렇게 고대 상업권에 대하여 쭈욱 한번 적어보았습니다. 상업이라는 한쪽 시각에서만 적은 글이라 편협하긴 하지만 그냥 이런 관점도 있구나라는 점을 알리기 위한 글이었으니, 그런가 보다 하고 읽어주세요.

<뒤집어 읽어보는 역사>는 기존 관점과 다른 부분들이 있거나, 숨어있는 한줄의 문장이 눈에 띄면 정리해서 글로 만들어 보겠습니다.


- 이 글을 위해 참고한 역사도서 모음

1. 한국사특강, 서울대학교 출반부, 1991
  2. 한국사통론, 변태섭 저(4개정판), 1997
  3. 7차 교육과정 근현대사 교과서(대한교과서)
  4. 이야기 한국사, 교양국사연구회, 청아출판사, 1988
  5. 한국통사, 박은식 지음, 김승일 옮김, 범우사, 2006
  6. 누드교과서 한국 근현대사, 이투스, 2007
  7. 뿌리깊은 한국사 샘이 깊은 이야기 1권, 서의식, 강봉룡 지음, 2003, 솔출판사
  8. 한국고대사 산책, 한국역사연구회 고대사분과 지음, 1992
  9. 한국역사입문 제 1권, 한국역사연구회 엮음, 도서출판 풀빛, 1979
  10. 한권으로 읽는 중국의 사상, 권순우 편역
  11. 동양사개론, 신채식, 삼영사(1993)
  12. 삼국사기(김부식), 삼국유사(일연), 7차 교육과정 국사 교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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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에서 중세 시대를 바라보는 관점에 대한 사료들

1. 통일신라가 중세이다!

1. 신라초기

      읍락에는 호민이 산다. 하호라 불리는 자들은 모두 노복이다. 제가는 별도로 사출도에 산다.

      대가는 모두 일을 하지 않는다. 하호는 노복으로서 부세를 공급해야 한다.

      순장으로 죽이는 자가 수백에 이른다.

2. 지증왕 : 명을 내려 순장을 금지하였다. 전대의 왕이 죽자 남녀 오십인을 순장하였는데, 이 때 금지하였다. 주군을 나눠 농사를 권장하였고, 우경이 시작되었다.

3. 신문왕 : 7년 5월 교를 내려 문무 관리들에게 관료전을 차등있게 지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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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록들은 모두 통일신라시대부터 중세가 시작되었음을 증명하는 사료들입니다.

이 사료들의 근거는 삼국시대의 고대적인 요소가 통일신라시대에 봉건적인 요소로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통일신라가 중세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토지를 직접 가지고 있는 토지의 소유자들과 토지에서 농사를 직접 짓는 실제 농업종사자들간의 관계가 노예적인 요소에서 봉건적인 요소로 바뀌었음을 강조합니다.

자료 1을 볼까요?

신라초기에는 토지를 가진 귀족들이 농업에 실제 종사하는 생산자인 하호들을 노예처럼 부렸습니다. 이것을 <인신적 예속>이라고 합시다. 이 인신적 예속의 대표적인 예가 다수를 죽이는 <순장>이라는 풍습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토지소유자(귀족)들의 특권이 신라가 통일될 무렵 전환됩니다. 일단 지증왕기에는 순장을 금지하여, 개인적으로 관리하던 노동력을 국가가 관리하도록 유도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부체제로 대표되는 독자적인 귀족 기반이 점차 국왕권으로 넘어감을 의미합니다. 진흥왕기에는 귀족들의 기반보다 왕권이 강화되어 <단독하교>가 등장하고, 국왕에 의한 <정치질서가 획립>되며, 화랑도, 불교교단 정비 등을 통한 <종교, 사회, 문화적 질서의 일원화>를 추구합니다.

이것은 통일이후 신문왕기에 전제왕권이 확립되면서 더욱 강화됩니다. 신문왕기에 관료전을 지급함으로서 이제 토지제도는 어느 정도 국가 관리에 의한 기반이 마련됩니다. 즉, 봉건제도에서 말하는 지주전호제적인 요소가 강화되거나, 국가가 수조권을 줌으로서 토지를 규제하는 전주전객제가 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지주전호제(사전)난 전주전객제(공전)에서의 직접생산자는 노예가 아닌 경작인입니다. 그들은 인신적 지배보다는 경제적 지배를 받는 경향이 강해진 일정 수준의 자유민입니다.

즉, 통일신라기에 인신적 예속을 벗어난 것을 중세로 보는 입장이 통일신라 중세설입니다.

2. 고려초기가 중세이다!

1. 재상가에는 녹이 끊이지 않으며, 노예가 3천이고 이에 상당하는 수의 갑병(군인)과 소, 말, 돼지가 있었다. 바다 가운데 섬에서 길러 필요할 때 활로 쏘아 서 잡아먹었다. 곡식을 꾸어서 갚지 못하면 노비로 삼았다.

<신당서> 동이열전 신라

2. 죽만랑(죽지랑)의 낭도에 득오실이라는 급간(후에 급간이 되었다는 말, 당시 급간이 아닌 듯함)이 있었는데, 풍류황권(화랑도 명단을 적은책)에 이름을 올려두고 날마다 출근하더니 열흘 동안 보이지 않았다. 낭(죽지랑)이 그 어미를 불러 아들이 어디에 있는가 물으니 어미가 말하였다. <당전(군대책임자)인 모량부의 익선 아간(아찬)이 내 아들을 부산성 창고지기로 뽑아서 데려갔습니다. 급히 가느라고 낭에게 말씀드리지 못하였습니다> 라고 말하였다. 낭은 <네 아들이 사사로운 일로 갔다면 찾아볼 필요가 없지만, 공적인 일로 갔다니 마땅히 가서 대접해야겠다.>라고 말하였다. 낭은 떡 한 합과 술 한 병을 가지고 측근을 거느린 채 가니 낭도 137명이 위의를 갖추고 따라갔다. 부산성에 이르러 문지기에거 물었다. <득오실은 어디 있는가?> 문지기가 답하길, <지금 익선의 밭에서 예에 따라 부역을 합니다>라고 하였다. 낭이 밭으로 찾아가서 술과 떡을 먹이고, 익선에게 휴가를 얻어 같이 돌아가고 싶다고 청하니, 익선은 끝내 안된다며 허락하지 않았다. 이 때 세금수취인 간진이 추화군(밀양)의 능절조 30석을 거두어부산성으로 싣고 가다가 낭이 선비를 소중히 여기는 풍모를 아릅답게 보았다. 익선이 융통성이 없는 것을 더럽게 여겨, 가지고 있던 30석을 익선에게 주고 낭의 요청을 거들었으나 여전히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또 간진 절사지(세금수취인)가 말안장을 주니 그제서야 허락하였다. 조정의 화주(화랑일을 보는 관리)가 이 말을 듣고 익선을 잡아다가 더럽고 추함을 씻어주려 하자 익선이 도망하여 숨으니 그 아들을 잡아갔다.

- 삼국유사 2권 죽지랑조 -

3. 성주산파(선종 9산의 하나)를 처음 연 낭혜(朗慧)는 속성(俗姓)이 김씨이며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이 그 8대조가 된다. 조부 주천(周川)은 품(品)이 진골이고 위(位)가 한찬(韓粲)이었으며 고조와 증조가 모두 나가서는 장군이 되고 들어와서는 재상을 지냈음은 집마다 아는 바다. 아버지는 범청(範淸)이다. 족(族)은 진골에서 한 등급이 떨어지니 이른바 득난(得難)이다. 나라에 5품이 있는데, 첫째가 성이진골(聖而眞骨)이고 둘째가 득난(得難)이다. 귀성(貴姓)의 얻기 어려움을 말한 것이니, 《문부(文賦)》에도 "혹 구하기는 쉬워도 얻기는 어렵다[惑求易而得難]"고 한 대목이 있다. 6두품부터는 숫자가 큰 신분일수록 귀한데, 이는 마치 일명(一命)에서 구명(九命)에 이르는 것과 같다. 그 4·5품은 족히 말할 바가 못된다.

- 성주사 낭혜화상 백월보광탑비 -

 불교를 행하는 것은 몸을 닦는 근본이며, 유교를 행하는 것은 나라를 다스리는 근원이니, 몸을 닦는 것은 내생을 위한 것이며, 나라를 다스리는 일은 곧 오늘의 할 일 입니다. 오늘은 극히 가깝고 내생은 지극히 먼 것이니, 가까운 것을 버리고 먼 것을 구하는 일이 그릇된 일이 아니겠습니까.

- 최승로의 시무 28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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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료들은 모두 고려초기부터가 중세라는 것을 뒷받침하는 사료들입니다.

사료 1을 보면, 노동 3천이 있다는 것으로 보아 일반인을 집단적으로 인신지배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노동은 노예인지가 확실하지는 않지만, 조세, 역, 공납을 했다는 것으로 미루어 인신적 지배를 당하는 고대 사회의 전형적인 피지배층임을 알 수 있습니다.

사료 2에서 보면 득오라는 계급도 부족의 노동력 징발에 참여하였으며, 그 당시에도 국가가 사사로이 인신적인 지배를 하는 것을 당연시 했다는 것이 보입니다.

그러나 사료 3을 보면, 통일신라의 골품제도가 모순을 보이며 친족공동체의 규모가 줄어듬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고대적 특징인 골품제도는 7세대 공동체로서 골품제도에 입각하여 부족적인 전통이 강하였습니다.

그러나, 고려 사회로 가면서 이 골품제적인 7세대 친족공동체가 무너지고, 공동체의 규모가 2배 이상 줄어듬을 알 수 있습니다. 통일 공신인 김유신 계열마저도 진골내부에서 족적 강등을 당하면서 <득난>이라는 새로운 관료계급으로 전환되고 있으니까요. 이것은 혈연적인 계급 공동체 사회의 운영원리가 무너지면서, 관료제적인 새로운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진통으로 보여집니다.

사료 4를 보면 이제 확실히 <골품적 원리>가 사라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최승로는 관료주의에 입각하여 고려의 국가통치이념을 유교사상으로 해야 함을 주장하였고, 이것을 성종이 수용하였습니다. 즉, 고려 초기부터는 <골품제적인 친족공동체>사회가 아니라, <관료제적인 유교적 정치이념>의 사회로 전환되었다는 것이죠.

이것은 친족공동체의 변화와 함께 국가 이데올로기상의 변화를 수반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지배체제가 완전히 변화하고 사회편성원리와 정치이념이 변화한 고려 초기를 중세로 보는 관점입니다. 이 관점은 다수설이며, 7차 교과서에서 제시한 정설입니다.

3. 조선시대부터가 중세이다!

1. 인두세는 포 5정이며, 곡 오석이다. 유민은 3년에 1세를 내야 한다. 세는 상호는 1석, 중호은 7두, 하호는 5두이다. - 고려 -

2. 역은 무릇 토지 8결당 1명에 부여한다. 일년동안 역은 6일을 넘기지 않는다. 만약 그 길이 멀아 6일 이상 걸리면, 그것에 준하여 다음해의 역을 감해주어야 한다. - 조선 세종 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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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록은 조선시대부터가 중세시대라는 증거 사료입니다. 이 조선시대 중세설은 일제시대부터 내려온 일종의 구시대 사학의 유물같은 이론입니다.

이 이론은 국가가 잉여생산물로서 걷는 조세를 어떤 기준으로 걷는 가에 따라 시대를 구분하려는 관점입니다. 즉, 고려시대까지는 인두세, 호등세로 세금을 걷었습니다. 즉, 개인마다, 호마다 세금을 걷었다는 것은 개인을 국가가 인신적으로 지배했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고려시기까지가 고대라는 입장입니다.

그러나 고려 후기 농업생산력이 증가하고, 조선 초기에 급격하여 농법이 발전하면서 고대적인 토지수취제도는 토지에 기준을 두어 세금을 걷는 중세적인 수취방식으로 바뀝니다. 즉, 토지 8결당 세금을 걷는 다는 것에서 보듯이 조선은 <토지를 바탕으로 한 봉건적 지대 수취 구조>를 가지고 있었으므로, 조선시대 이후부터가 중세라는 입장입니다.

그러나, 이 입장은 이미 녹읍, 관료전, 전시과로 이어지는 중세적 수조권 제도가 이미 존재하였음을 간과하고 있습니다. 이 입장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일제시대 이후 활동했던 사학자들 이외에는 거의 없는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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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고려시대 중세설(교과서설)의 입장에서 통일신라 중세설(새로운 학설)로 분위기가 이동하고 있는 듯 합니다. 7차 교과서에서는 고려시대 중세설을 지지하고 있는데, 8, 9차 교과서에서는 어떻게 바뀔지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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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중세의 발전 과정 1

1. 영국 초기의 역사 - 캘트인의 역사와 베어울프 이야기

영국 초기의 역사는 보통 캘트인의 역사라고 합니다. 캘트인들은 잉글랜드 지역에서 수렵, 목축, 그리고 기초적인 농경을 통해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원시적이지만 강인하고 단합이 잘되는 시민회를 가진 부족이었다고 합니다. 로마 제국은 이 잉글랜드 지역을 정복하려는 계획은 세웠지만, 이 지역이 로마에게 특별히 수요가 있는 것이 아니였기 때문에, 형식적인 지배 정도를 했었습니다. 그러나 로마의 영글랜드 점령은 캘트 사회에 선진문물을 전파하는 역할을 한 듯 합니다.

초기 켈트인의 생활과 문명상을 잘 보여주는 이야기가 <베어울프> 설화입니다. 그러나, 베어울프 설화는 초기 캘트인의 이야기를 구전으로 전하다가 훗날 앵글로-색슨족들이 이교도의 민족영웅을 기독교적으로 해석하였기 때문에 액면 그대로 캘트의 문화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게르만적 요소가 많이 들어간 영웅 서사시입니다. 이 이야기의 배경은 현재 덴마크와 스웨덴 이야기로 각색되어 영국에 보관되어 있기도 합니다.

베어울프 이야기는 총 2부인데, 1부는 베어울프가 조국인 Dane를 떠나 무용담을 펼치는 이야기입니다. 그는 왕궁에 침입한 괴물을 처치하기도 하고, 간신인 그란달을 처치하기도 합니다. 베어울프는 각종 정의를 실현한 뒤 귀국하여 자신의 군주에게 모험담을 들려주고 많은 보석을 받습니다. 1부의 베어울프 내용은 국왕에 대한 신하로서의 충성심을 말한 내용입니다.

2부는 베어울프가 왕이 된 시기의 이야기입니다. 50년간 평화롭게 캘트족 사회를 이끈 베어울프 시기에 어느 죄인이 용의 보물을 훔치게 됩니다. 화가난 용이 전 국토를 불바다로 만들자 늙은 베어울프가 화룡과 결투를 벌이게 되고 화룡과 함께 같이 죽게 됩니다. 여기서의 베어울프는 정의를 실현하는 군주이고, 기독교적 기사도를 가진 기사이자, 불굴의 정신을 가진 영웅의 모습입니다.

2. 4-5c의 영국 초기의 역사 - 캘트인의 역사와 아더왕 이야기

켈트가 유명한것은 아더왕 전설(Arthurian legend)에 나오는 그 유명한 아더가 켈트의 후예이기 때문입니다. 영국 문학을 보면 [브루트]라는 작품이 있는데, 이 작품은 아더왕의 전설에 관한 초기 캘트 전설을 묶은 것이라고 합니다. 전설에 따르면 영국은 로마의 시조였던 트로이의 영웅 아에네아스(Aeneas)의 후예인 브루타스(Brutus)에 의해 건국되었다고 합니다. 영국의 본토인 잉글랜드 지방의 브리튼 섬이라는 지명 이름이 이 브루타스라는 용어에서 생간 것이라고 하네요.

아더왕 전설은 이 브루타스의 휴예인 아더왕이 로마와 싸워 브리튼을 로마의 지배로부터 해방시키고, 앵글로-색슨의 침입자들로부터 캘트족을 지켰다는 것이 주요 내용입니다.  지금 영국의 민족이 앵글로-색슨 계열이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보아 캘트족의 아더왕 이야기는 영국 고대사에서 흥미있는 이야기 정도의 소재로 쓰이는 것 같습니다. 아더왕 이야기는 후에 프랑스로 가서 프랑스의 전설 이야기로 변형되기도 합니다.

AD 약 500년 경의 아더왕은 영국의 전설적인 왕으로 '아더왕과 그의 기사들'의 전설(원탁의 기사)은  소설이나 만화로도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아더왕 이야기에는 충직한 기사들과 부인 기네비어 등 많은 귀부인들의 이야기, 환타지에도 많이 등장하는 위대한 마법사 멀린 등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고대 구약신화와 연결되는 전설의 성검 엑스칼리버 이야기 등도 나오죠.

아더는 원래 웨일즈 남부의 브리튼족(캘트 잎파)의 군주인 유더 펜드리건의 아들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펜드리건이란 말은 <왕중의 왕>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우리 식으로 보면 <마립간> 정도 되는 군장이라고 할까요? 아더는 앵글로-색슨 족의 침입기에 열심히 싸워 국가를 수호했습니다. 전설에서는 12번의 대전투의 승리라고 말합니다.

앵글로-색슨 족은 물러갔고, 캘트는 평화를 유지했습니다. 그러나 조카 모드레드가 반역을 일으켜 콘월의 대전투를 하게 되었는데, 모드레드는 죽였지만 아더 역시 큰 부상을 입어 귀부인들은 아더를 아발론(애발로니아) 섬으로 보내어 치료하도록 하였다고 합니다. 아발론은 웨일즈어로 사과라는 뜻으로 사과들의 섬이라는 뜻입니다. 이 섬은 실제 섬이 아니라 전설적인 섬이지요. 영국에는 글라스톤 벨리(유리 섬)라는 섬이 있는데, 이 섬을 아발론과 동일시하면서 죽은 영웅들의 휴식처라고 여긴다고 합니다.

3. 4-5c 게르만의 이동 - 앵글로 색슨의 시대

4-5 세기 무렵 유럽에서 게르만 족의 대이동이 시작되면서 일군의 게르만 일파가 영국으로 건너왔습니다. 이들이 현재 영국과 미국인의 조상이라고도 볼 수 있는 앵글로-색슨족(Angle-Saxon, 5C에 침입한 게르만인들)족입니다. 이들은 현재 브리튼 섬(잉글랜드)에 집중적으로 침략하여 수많은 소국국가와 해상 국가들을 구성합니다. 게르만족의 대이동기에 게르만들은 로마 제국 영토에 수많은 게르만 국가를 세우는데, 그 무렵 앵글로-색슨족도 약 450년경 브리튼 섬을 정복하였습니다.

앵글로-색슨족이란, 게르만의 일파로 앵글 족(Angles) 과 색슨 족(Saxons) 그리고 주트 족(Jutes)의 세 종족으로 이루어진 민족을 한번에 묶어 부르는 말입니다. 이들 집단들은 상호 항쟁과 교류를 통해 작은 소국들로 나뉘어 체제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리스의 폴리스와 같이 같은 민족이라는 혈연 의식과 상호 공동체 의식을 가지고 있어서 외적이 있을 경우에는 소국들이 모여 같이 항쟁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일단 정복에 성공하고 나면 그들은 다시 자연스럽게 정치적 분열의 상태로 되돌아갔습니다.

이러한 동네 국가 수준의 앵글로-색슨국가들을 통합한 것은 노르만정복 (1066년)이후 부터입니다. 영국 역사에서는 이 시기를 중세사에 포함된 시대로 보시면 될 듯 합니다.

그럼 캘트족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캘트족은 앵글로-색슨족이 침입한 이후 잉글랜드 본토와 브리튼섬을 내준 대신에 <아일랜드> 지방으로 이주했습니다. 노르만의 일파들은 아일랜드도 지속적으로 공격했지만, 끝내 용맹한 캘트 전사들이 고향의 무덤이라 생각하며 지킨 아일랜드는 함락시키지 못했습니다. 여기서부터 영국 본토인 잉글랜드와 아일랜드의 역사적, 민족적인 갈등은 시작됩니다.

4. 9c 이후 노르만족의 침입 - 노르만의 시대

그런데 9c 무렵 유럽 전체에서 노르만의 이동이 시작되자 영국사회도 동요하기 시작했습니다. 노르만족들은 바이킹이라 불리는 스칸디나비아반도 출신의 게르만 일파였습니다. 북방계 해상민족으로서 힘을 키운 이들은 섬나라인 영국도 해상을 통해 공략하기 시작합니다. 영국의 본토에는 노르만 왕조가 성립되었습니다. 노르만족들은 캘트인들이 사는 아일란드까지 공격했지만 함락시키지 못했습니다. 아일랜드에 진춣하지 못한 용감한 바다의 노르만들은 아이슬랜드, 그린란드, 북미대륙으로 진출하게 되는데, 어떤 학자들은 이 때부터 미국대륙에 고대 앵글로 아메리카 문명인 원주민 문명이 생긴 것이라는 설도 제기합니다. (물론 이것은 너무 영국중심적인 생각입니다. 이것은 고대 아메리카에 아시아계 몽골계통의 이주민이 초기에 이동했다는 아시아설에 대항하기 위한 측면이 강한 것 같습니다.)

노르만족이 이동할 무렵 덴마크게 데인족들도 영국에 침입하여 북동부 영국 지방을 점령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후 크리스트교로 개종하면서 앵글로-색슨족의 일파가 됩니다.

자, 그럼 영국 고대사와 중세사에 대한 개관은 이쯤하고 본격적으로 영국 중세의 발달 과정을 하나씩 개관해보겠습니다. 영국 중세사로 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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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세기 이베리아 반도의 재정복 운동

이번 장에서는 이슬람이 지배하고 있었던 이베리아 반도를 서유럽 국가가 재탈환하는 시기의 역사를 다뤄볼까 합니다. 이 지역의 역사는 교과서든, 어디든 다 서유럽의 관점에서 기술되어 있습니다. 이슬람 세력을 유럽이 몰아내고, 크리스트교 세계를 복구하였다라는 것이 이 파트의 내용인데, 상당히 불만입니다. 이슬람의 입장에서는 그게 아닐텐데요. 하지만, 제 주관을 배제하고 중세 유럽사의 내용에서 이 파트를 다룬 뒤 이슬람사에서는 이슬람의 입장에서 이 파트를 다른 관점으로 다루겠습니다.

1. 이베리아 반도의 상황

11세기 이전까지 이베리아 반도는 이슬람 국가가 지배하였습니다. 7세기 이후 마호메트의 이슬람 세력이 그 위세를 떨칠 무렵 이슬람은 전 유럽을 이슬람의 영역으로 만들고자 하였습니다. 이 때 비잔틴 제국은 이슬람 세력에 의해 그 영토가 축소되었고, 페리시아는 이슬람에 망했으며, 지중해와 유럽의 대서양은 이슬람의 바다가 되었습니다. 이슬람 세력은 지중해에는 유럽 배의 판자 조각 하나도 돌아다니지 못하게 하겠다라고 호언하면서 모든 영토를 이슬함화 하였습니다. 이때 이베리아 반도도 이슬람에게 넘어가 버린 것입니다.

이슬람 세력은 더욱 세력을 넓히고자 프랑크 왕국을 침범하고 유럽 내륙으로 세력을 넓히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프랑크 왕국의 궁재 마르텔과 이슬람이 정면으로 충돌한 투르 전투에서 이슬람이 패배함으로서 이슬람이 전 유럽을 지배하려는 꿈은 좌절되었습니다. 이후 프랑크 왕국의 카롤루스 대제는 교황의 힘을 등에 업고 이슬람 정벌을 위해 에스파냐 변경에서 이슬람과 전쟁을 벌였습니다. 그러나 카롤루스 대제도 이베리아 반도의 이슬람을 몰아내지 못하였고, 이후 이베리아 반도(에스파냐 지방)은 영원히 이슬람의 땅으로 남을 듯 했습니다. 이 때를 배경으로 한 유명한 무훈시가 바로 그 유명한 <롤랑의 노래>입니다. 유럽과 이슬람의 경계는 카롤루스의 정복전쟁 실패 이후 에스파냐 변경주(프랑스와 에스퍄냐의 경계)를 경계로 나뉘었습니다.

이후 이 지역은 후옴미아드 왕조 등 이슬람의 칼리프가 오랜 시간 지배하였습니다. 유럽의 민족은 이슬람에게 도전하기도 하였지만, 당시 후진적이었던 유럽의 힘으로 이슬람을 몰아낸다는 것은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러나 역사는 언제까지나 영원할 수는 없는 법... 10세기 이후 유럽의 후옴미아드 왕조와 서아시아의 아바스 왕조 등 이슬람의 강력한 왕조들이 서로 분열하면서 이슬람 세계에 자체 균열이 심해졌습니다. 이 틈을 이용하여 이베리아 반도의 국가들은 독립을 시도합니다.

2. 유럽은 이것을 <재정복>이라 부른다.

유럽의 서구적 시각에서는 10세기 이후 이슬람 국가를 축출하는 크리스트교 유럽인들의 움직임을 <재정복>사업이라고 하며 <십자군> 원정의 전초전으로 생각하는 등 아주 높게 평가합니다.

11세기 이베리아 반도에서는 작은 단위의 크리스트 국가들이 등장합니다. 이 때의 반 이슬람 세력은 게르만족의 일파인 <서고트족> 위주의 집단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레온, 카스티야 등 작은 소국을 형성하기 시작하면서 이슬람에게 위기 의식을 심어줍니다. 또 카롤루스 대제가 과거 이슬람과 싸워서 경계가 된 에스파냐 경계주는 점차 크리스트인의 국가가 생가면서 유럽인들이 잠식하기 시작합니다. 이 이슬람과 유럽의 국경 지방에서 나바르, 아라곤 왕국, 바르셀로나 백작령 등의 국가가 형성됩니다.

이렇게 형성된 크리스트교 국가들은 일제히 힘을 합쳐 이슬람 왕조에 대한 공격을 시도합니다. 이것이 11세기의 <재정복>운동이라 부르는 사건의 시작입니다. 11세기에 작은 소국들은 차츰 카스티야와 아라곤을 위주로 뭉쳐서 주변 소국과 이슬람 영토를 잠식하기 시작합니다. 12세기에는 카스티야에서 포르투갈이라는 국가가 독립하여 신생독립국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이들 카스티야, 아라곤, 포르투갈은 이슬람을 계속 압박하였고, 13세기가 되면 그라나다 지역을 제외한 전 에스파냐 영토가 이들 크리스트교 국가에게 넘어갑니다.

실제 이러한 이슬람에 대한 재정복 운동은 유럽인들에게 이슬람 국가와의 전쟁이 유럽인의 힘으로도 해볼만 하다라는 인식을 심어주기 시작합니다. 유럽은 이제 이슬람과 붙어도 승산이 있을 정도로 11세기 이후 발전했습니다.(발전한 건 사실이지만 당시 유럽이 이슬람을 이길 수 있다는 것은 상당한 의문였습니다. 유럽인의 자신감은 대단했지만, 이슬람에서는 유럽을 후진지역으로 인식했기 때문이죠) 이것이 훗날 십자군 원정에 대한 자신감을 불러 일으켜 주게 됩니다. 유럽에서는 이 <재정복>사업을 십자군 원정의 전초전이라고도 부르기도 하였습니다.

3. 시칠리아를 탈환하라.

이탈리아의 섬 시칠리아는 9세기 무렵 이슬람이 확장하면서 이슬람의 영토였습니다. 유럽인들은 11세기 이후 이베리아 반도에서의 크리스트교 확장 등에 영향을 받아 이탈리아에서 이슬람을 몰아내기 위한 대대적인 운동을 전개합니다. 12세기 로저 2세는 결국 분열기에 있는 이슬람을 몰아내고 왕국을 성립시켰습니다. 이것은 단지 섬 하나의 탈환이라는 의미보다 더 큰 <지중해 회복>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갖습니다. 이 때 성립한 왕국이 바로 양 시칠라아 왕국(2개의 시칠리아)입니다. 이제 유럽인들은 이슬람에 대한 자신감을 완전히 회복했습니다. 이제는 성지인 예루살렘마저도 탈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이젠 이슬람의 팽창기가 아니라 유럽인의 반격 시기를 맞이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11-13세기에 이르는 오랜 시간동안 이슬람의 본거지를 공격하기 시작합니다. 십자군 원정의 시작이죠. 그러나, 십자군 원정은 결국 후진지역이었던 서유럽의 완패로 끝나고 맙니다. 유럽은 이제 이슬람 지역에 대한 도전은 완전히 포기하고, 내부 정리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15세기 이후에는 이슬람을 피해 아프리카 희망봉을 돌아가거나, 지구 반대편을 통해 동방으로 확장하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바로 <신항로 개척>이죠. 아이러니 하게도, 유럽이 전세계적 네트워크를 구성하게 된 계기인 신항로 개척은, 당시 동양과 서양의 네트워크 중심이었던 이슬람 세력을 철저히 피해가면서 이루어졌다는 것이 재미있는 역사적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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