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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스탄티누스

로마사 이야기 8 - 디오클레티아누스, 콘스탄트누스, 그리고 콜로누스 제도 디오클레티아누스, 콘스탄티누스 그리고 콜로누스제도 1. 디오클레티아누스의 군인황제 시대 이래 약해진 로마는 제국의 영광을 되찾기 위한 최후의 노력을 시도합니다. 제정 로마가 후기로 가면서 디오클레티아누스와 콘스탄트누스는 강력한 황제권을 유지하기 위한 독재적 개혁정치를 실시합니다. 그럼 이번 장에서는 이들 철인황제들의 개혁 정치를 한번 볼까요? 디오클레티아누스의 정치는 로 총괄할 수 있습니다. 디오클레티아누스는 2명의 황제와 그 2명의 황제 아래 2명의 부황제로 이루어진 황제단이 제국을 나누어 통치하는 4제통치를 실시합니다. 이중 디오클레티아 누스가 최고 황제권을 가지며, 그가 죽을 시 아래에 속한 직속 부황제가 제국을 계승하는 형태의 정치체제입니다. 이것을 실시한 목적인 황제가 죽은 후 군인들에 의해 이.. 더보기
최후의 철의 여제 갈라 플라키디아, 그리고 로마의 멸망 로마의 마지막 재건노력 - 갈라 플라키디아, 그러고 로마의 멸망 1. 갈라-플라키디아와 아타울푸스 갈라 플라키다아(이후 갈라)는 알라리크에 의해 로마가 함락당하고, 로마의 문명이 폐허가 되었을 때, 인질로서 잡혀간 황제의 여동생이었습니다. 황제인 호노리우스는 로마가 망했다는 소식을 듣고도 자신이 안죽었다는 사실에 안도하면서 닭을 키우고 놀았다고 전해집니다. 호노리우스는 자신의 생명보전을 위해 로마를 버리고 라벤나까지 수도를 옮긴 대단한 황제였거든요. 로마가 망하는 것은 그에게는 관심밖의 일이었습니다. 로마를 지켜줄 장군인 스틸리코를 맘에 안든다는 이유로 죽인 황제니, 그 무서움은 치밀하면서도 지독했습니다. 호노리우스 황제는 자신의 동생 갈라가 잡혀갔다는 사실보다는 황제의 동생을 야만족인 서고트가 잡아갔다.. 더보기
테오도시우스 1세의 기독교 국교화 정책의 이유 테오도시우스 1세 황제와 이민족의 로마 1. 테오도시우스 1세의 이민족 융합 정책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동쪽으로 수도를 옮긴 후 2개의 로마가 되었을 때, 동로마에서 강력한 왕권을 바탕으로 로마의 영광을 재현하려고 했던 황제였습니다. 이당시 서로마 제국에서는 황제 발렌티니아누스 2세가 막스무스라는 반란군 때문에 동로마로 피신해 있었는데,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서로마 발렌티니아누스 2세의 여동생(갈라티아)에게 반하여 그녀와 결혼을 했습니다. 그리고 역적 막시무스를 치기 위해 서로마로 진군했지요. 당시 로마는 이미 고대 제국의 영광이 사라져가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동로마, 서로마는 모두 게르만 용병을 동원하여 공격과 수비를 하고 있던 시기였지요. 당시 동로마는 주력부대가 고트족 부대였습니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