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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조 정권의 계승 과정

이번 장에서는 5호 16국 시대가 진행되는 동안 한족 정권인 남조 정권에 대하여 간략히 포스팅해보겠습니다. 그 두 번재 국가로 <송, 제, 양, 진>을 살펴보죠. 중국 남조는 동진 - 송 - 제 - 양 - 진 - 수(통일국가)로 연결됩니다.

5호 : 후한조부터 중국내지 이주  → 중국지식인의 사융론(한(흉노) - 후조(갈) - 전진(저 : 비수전투) -북위(선비))

△ 秦의 통일(BC 221) → 한제국(BC 202) → 왕망(8년) → 후한(23년) → 삼국시대(220) → 서진(265)

△ 화북 : 5호 16국(304-439) → 북위(439-539) → 동위(북제), 서위(북주) → 수의 통일(589)

△ 화남 : 동진(317-420) → 송-제-양-진(420-589)

1. 송 나라 시대

실제 송, 제, 양, 진의 남조시대는 엄청난 격동기로서 전투와 전쟁이 많았던 만큼, 제대로 포스팅 하려면 시리즈로 나가야 합니다. 하지만, 이 포스트는 이야기 중국사가 아닙니다. 나중에 중국사를 다시 포스팅할 때 고사들은 다시 정리하기로 하고, 아주 간략히 왕조의 흥망만을 다루겠습니다.

동진의 뒤를 이어 선양으로 송을 건국한 사람은 <유유>입니다. 바로 송 무제라고도 하죠. 유유는 사실 동진의 군사적 기반이었던 화북 서진 군대의 장군이었습니다. 유유는 화북을 통일한 전진의 부견과 중국 패자자리를 놓고 엄청난 격전인 <비수의 대전>을 이끈 장수입니다.(5호편 포스트를 보시면 됩니다.) 그는 비수의 전투를 대승으로 이끌어 북방 민족들이 남조를 넘볼 수 없도록 일시적으로 쐐기를 박아놓은 영웅이었죠.

유유는 북방 민족들을 끊임없이 공격하여 남연, 후진 등을 박살내고 강자로 떠올랐습니다.그리고 5호에 대한 적대감을 그대로 표출하여, 남조 귀족들에게 든든한 <장수>라는 인상을 심어줍니다. 결국 무력을 가진 유유가 동진의 왕으로부터 <선양>의 예로서 황제에 즉위합니다. 이 나라가 송입니다.

그런데 문제점은 유유라는 <군인>이 황제가 되었는데, 남조의 귀족들은 이 유유를 인정했다는 점입니다. 인정한 정도가 아니라 유유가 왕이 되도록 적극적으로 지원까지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논란이 많습니다.

첫 번재는 무인정권이 군사적 기반으로 귀족들을 굴복시켰다는 설입니다. 두 번째는 귀족들이 자신들이 사회, 정치적 지배권을 가졌기 때문에 적당한 <무인 영웅>을 왕으로 앉혀놓고 왕에게 북방 이민족을 견제하도록 유도했다는 설입니다. 실제, 무인 출신 왕은 북방 이민족과의 싸움에 이긴 영웅으로 중앙정치를 하는 왕이었지만, 대토지를 소유하고 있던 사희 지배집단은 호족출신의 귀족집단들이었습니다. 따라서 여기서는 두 번째 논점을 인정하는 형태에서 포스팅을 할 까 합니다.

실제 무인으로서 왕이 된 <유유>를 비롯한 남조의 왕들은 모두 싸움밖에 할 줄 아는 것이 없는 미천한 <무장 세력>이었습니다. 이 무인들은 무술 실력으로 북방 민족들을 견제하면서, 귀족들의 방파제 역할을 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들은 정치적 실권이 없었기에, 송- 제 - 양 - 진으로 이어지는 남조 국가들은 모두 단명하고 맙니다. 즉, 군사력으로 집권한 왕들은 군사적 가치가 떨어지면 실세인 귀족이나 지주세력에 의해 제거되는 것이지요.

실제 송나라는 송무제(유유)이래 문제 시대에 안정기를 맞이하였습니다. 이 당시 북조에서는 북위가 북방을 통일하고 송을 대대적으로 공격하였지만, 무신정권은 이들을 효율적으로 막아내였지요. 그러나, 송 문제 이후 왕권이 약해지고 군사력이 약해지자 결국 송은 더욱 강력한 무장은 <소도성>에게 선양의 형식으로 왕을 양위하고 맙니다. 그 결과 평화적으로 송에서 <제>나라로 양위가 양위됩니다. 그러나, 이후 강력한 무장들이 서로 왕위를 노리는 상황에서 소연의 쿠테타로 <제>라는 무신정권도 몰락하고 <양>이라는 무신국가가 다시 등장합니다.

2. 양의 시대

송 - 제를 이어 왕에 오른 자는 강력한 무신 집단이지만, 가문이 미천했던 양 무제입니다. 양나라의 소연은 왕이 되자 바로 실세인 <귀족집단>의 특권을 인정하기 시작합니다. 화북 귀족들의 정치, 경제, 사회적 특권을 보장하기 위해 <백가보>라는 것을 작성해주고, 문벌귀족들을 국가 관리로 적극 등용합니다. 그는 유교와 불교 등을 정비하고, 지방 호족적 성향의 관리들을 중앙에 적극적으로 끌어오려고 하지만 <후경의 난>으로 몰락하고 맙니다.

<후경의 난>이란, 북위가 동위, 서위로 분열된 이후 북에서 내려온 동의의 후경 장군이 일으킨 난입니다. 후경은 하남 13개 주를 양나라에 바치고 남조에 충성할 것을 맹세했지만, 결국 자신의 기득권을 위해 쿠테타를 일으킨 사건입니다. 이 후경의 난으로 당시 지방세력이었던 문벌귀족들이 대거 죽습니다. 후경은 본래 남조 출신이 아닌 만큼, 남조의 귀족들을 우대할 이유도, 그들의 눈치를 볼 이유도 없었습니다. 이 후경의 난은 진압되었지만, 결국 문벌귀족체제가 무너지는 신호탄과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이후, 양을 이어 진패선이라는 장군이 진을 건국하였지만, 당시 강성했던 북방의 국가들에게 멸망하였고, 중국은 <수>나라에 의해 통일국가로 전환됩니다. 남북조 시대가 끝난 것이지요.

3. 남조 정권의 가장 큰 특징

결국 남조 정권을 살펴보면, 커다란 공통점이 있습니다.

1. 귀족세력이 실세였지만, 귀족들은 북조의 침략을 막을 만큼 실력있는 장군을 추대하여 왕으로 삼았다.
   2. 남조의 왕들은 모두 무장 출신으로서 쿠테타를 통해 집권했지만, 그 집권 방식은 대부분 선양이었다.
   3. 남조의 창업주들은 철저하게 귀족들의 지위를 보장하고 그들의 협조로 국가를 운영해 나갔다.
   4. 귀족들은 군인무장을 왕으로 삼은 뒤 자신들의 가문의 영광만을 추구하였다.
   5. 남조의 왕조는 모두 문벌귀족의 신임을 잃으면 망하였기 때문에 황제권이 약하였고 단명하였다.

남조 왕조의 특징은 이 정도로 정리하고 이후에 포스팅은 북조 왕조의 통일 국가 북위를 다루겠습니다. 북위를 다루기 위해서는 5호 16국을 어느정도 다루어야 하고, 효문제와 우문태를 키워드로 왕조를 설명하는 것이 좋겠네요. 그럼 북조의 전성기로 고고!!

이 글에 대한 참고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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