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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4. 갑신정변이 일어나다!

1. 1880년대 이후 개화파의 분위기

오늘 다룰 내용은 갑신정변입니다. 갑신정변은 1884년에 일어난 사건이지요. 갑신정변은 개화기의 모든 정황과 동 떨어져 단독 사건으로는 볼 수 없는 사건입니다. 개화기의 큰 흐름 속에서 척사와 개화라는 양대 기류가 정면 충돌한 사건이지요.

따라서 갑신정변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이전 포스트에서 다룬 조선책략, 위정척사, 임오군란, 개화파의 흐름 등을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그럼 간략하게 그 흐름만 다시 짚어볼까요?

1880년 개화의 지침서인 조선책략이 들어온 이후, 조선 사회는 개항과 개화를 반대하는 위정척사운동이 본격화되었습니다.이 운동은 조선책략 태우기 운동, 개화를 추구하는 민씨 정권 타도 운동으로 까지 발전하려는 분위기였죠.

반대로,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 속에서 숨 죽여 개화를 주장하는 개화 1세대들은 민씨정권의 등장이후 더욱 힘을 얻게 됩니다. 이들은 1878년 충의계라는 개화조직을 결성하고 본격적으로 개화를 위한 깃발을 흔들기 시작합니다. 이 개화와 척사라는 큰 흐름은 언젠가 한번 크게 터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폭발은 엉뚱하게도 <임오군란>을 통하여 전혀 다른 역사 방향으로 흘러가게 됩니다.

임오군란은 청의 도움을 받은 민씨세력의 재집권으로 실패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결과 청나라의 전면적 내정간섭이 시작되었지요. 문제는 개화와 척사라는 큰 흐름이 <청>이라는 외세에 의해 거꾸로 흐르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청나라는 조선에 정치고문인 묄뢴도르프, 군사고문인 마젠창을 보내면서 민씨정권의 소극적인 개화마저도 태클을 걸게 됩니다.

안 그래도 민씨정권의 개화에 맘이 안 들었던 급진개화파들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김옥균, 박영효 등의 급진적 개화파들은 그동안 민씨정권에서 추진해온 소극적 개화파들의 정책으로는 근대화가 늦어질 것으로 판단하고 <고종>에게 직접 접근하여 빠른 근대화를 추진하려고 시도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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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신정변의 주역들 : 김옥균, 서광범, 박영효, 홍영식(좌측부터)>

2. 급진개화파가 청의 세력에게 밀리다.

임오군란 이후 청의 내정간섭이 심해지고, 기존의 개화파들의 입지가 좁아지자 급진 개화파들이 고종에게 적극적으로 접근하여 청의 세력을 견제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1883-1884년간 김옥균, 박영효, 서광범 등 급진개화파들은 조정에서 일본의 세력을 이용하여 청의 세력을 견재하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특히 철종의 딸인 영혜공주와 결혼한 <박영효>는 고종과의 인척관계를 이용하여 적극적으로 청을 견재할 수 있었습니다. 이 분위기에서 김옥균은 고종에게 개화가 필요한 이유를 역설합니다.

과연 그렇다면 어찌하여야 하겠습니까? 이는 오직 밖으로 널리 구미 각국과 신의로 친교하며, 안으로는 정략을 개혁하여 우매한 백성들을 문명의 도로 교육하며, 상업을 번성시켜 재정을 정리하는 데 있습니다. 또 군대를 기르는 일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이와 같이 할 수 만 있다면 영국은 마침내 거문도에서 물러날 것입니다. 그 밖의 여러 나라도 역시 침략의 뜻을 버릴 것입니다.

바야흐로 세계는 상업을 주로 하여 서로 산업의 크고 많음을 자랑하고 경쟁하는 때이거늘, 아직도 양반을 제거하여 뿌리를 뽑지 않는다면 국가의 패망은 기어코 앉아서 기다리는 꼴이 될 뿐입니다. 전하께서 이를 철저히 반성하시어 하루 빨리 무식 무농하고 수구 완고한 간신배를 축출하시고, 문벌을 폐하고 인재를 골라 중앙 집권의 기초를 확립하여 백성들의 신용을 얻으시고, 널리 학교를 세워 백성의 지식을 깨우치게 하시옵소서. 외국 종교를 들여와 교화를 돕는 것도 하나의 방편이 될 것입니다.

- 고균 김옥균전 -

고종은 급진개화파의 사상을 어느 정도 공감하였습니다. 이미 강화도 조약 이후 개화파의 추진 정책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현실은 달랐습니다. 당시 조정의 실권은 청의 고문들에게 있었으니까요.

이러한 급진개화파와 청의 세력간의 갈등은 <재정문제>를 둘러싸고 크게 한판 대결을 벌이게 됩니다. 임오군란 이후 조선의 재정은 상당히 악화되어 있었는데, 이 재정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청의 고문은 묄렌도르프는 <악화주조>를 주장합니다. 악화주조란, 일단 재정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돈을 찍어내자는 것으로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짓기 위해 <당백전>을 발행한 것처럼 <당오전>을 발행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청의 재정고문의 의견에 급진개화파는 적극 반대합니다. 흥선대원군의 당백전 발행으로 물가가 올라서 백성들의 삶이 황폐해졌다는 것을 이유로, 돈을 만들어 찍기 보다는 <차관을 빌려서 재정 위기를 해결한다는 경제원칙>을 주장한 것이지요. 즉, 급진개화파의 재정해결책은 <차관도입론>이었습니다.

박영효는 일본에서 돈을 빌려서 국가의 정치적 위기를 해결하고, 급진개화파의 입지를 확실히 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산업혁명을 겪은 후 내부적으로 일시 불황을 겪고 있던 일본은 돈을 빌려주지 못하였습니다. 이렇게 되자 급진개화파의 입지는 한없이 좁아졌고, 청의 고문들은 급진개화파를 공격하여 그 세력을 뿌리뽑을 수 있는 기회를 맞이하였습니다.

3. 하늘이 도와 청군이 일시 물러가다.

차관 도입에 실패한 개화파들은 정치적으로 구석에 몰려 곧 괴멸당하거나, 망명해야 할 위기에 처하였습니다. 그런데 마침 하늘이 도왔습니다. 청과 프랑스 사이에 청불 전쟁이 벌어졌고, 청나라는 조선의 군대를 급히 인도차이나 반도로 돌려야 했습니다. 당시 조선에는 3000명의 청군이 있었는데 이중 절반 이상이 조선을 떠난 것입니다.

김옥균 등 개화파들은 일본에 군사적인 지원을 약속받고 정변을 계획합니다. 일본 역시 청 때문에 약해진 자신들의 입지를 고려해서 급진개화파를 적극 지원하기로 합니다. 급진개화파들은 친청파인 보수세력을 제거할 시기로 <우정국 축하연>을 이용하기로 합니다. 그럼 갑신정변의 과정을 상세한 사료로 한번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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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신정변의 진행도 : 정변의 과정>

갑신(1884) 9월 다케조에 신이치가 부임지인 조선에 왔다. 이때 중국와 프랑스는 안넘전을 벌이고 있었으므로, 일본 공사는 김옥균 등을 꾀어 말하기를 <청국은 이제 조선을 돌아볼 틈이 없으니 청국세력을 배제하고 독립할 기회는 바로 이때다. 기회를 놓치지 말라> 하니 매일 밤 모여서 은밀한 화합을 가지고 일본군을 의탁하여 청국인을 방어하며 자객을 양성하여 청당을 제거하려고 하였다. 또한 일본 정부로부터 군함을 파송하여 후원해준다는 밀약까지 받았다.

- 박은식, 한국통사 -

같은 해 10월 17일 우정국이 낙성되고 홍영식이 총판이 되매, 연회를 베풀고 대관들과 각국 공사, 영사들을 초청하였다. 이에 육조판서와 내아문, 외아문 독판, 전후좌우 네 영사, 그리고 미국 공사 푸트, 영국 영사 애스톤, 청국 영사 진수당 등이 모두 연회에 참석하였다. 그런데 일본 공사는 병을 칭탁하고 오지 않았으며 서기 시마무라를 시켜서 대행하도록 하였다.

같은 날 오후 6시에 연회를 시작하였는데, 홍영식 등은 미리 왕궁문 앞과 경우궁 안에 사관생도들을 매복시켰으며, 또한 우정국 앞 개천에 자객을 매복시켜 방화로 신호를 하게 하였다. 김옥균 등은 출입이 잦았으나 지휘하는 형적은 속이고 극비에 부쳤다. 10시가 되어 갑자기 담장 밖에서 불길이 일어났다. 그 때 달이 밝아 대낮 같은데 불빛이 충천하였다. 민영익은 <불이야> 소리를 외치며 먼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문밖으로 나오니 앞 개천을 따라오던 자객이 칼로 내려치자 영익이 몇 군데 자상을 입고 쓰러지자, 빈객들은 모두 대경실색하였다. 일당들은 여기서 청당을 모두 죽이려 하였으나 단지 민영익 한 사람만을 부상시켰다. 박영효, 김옥균, 사광범 등은 대궐로 달려가 바로 침전에 들어갔으니, 미리 내응이 되어 있던 궁녀가 문을 열고 기다린 까닭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들은 헐떡이며 급히 아뢰되 <청나라 군사가 난을 일으켜 불빛이 성안에 가득하고 대신들을 마구 죽이니 급히 자리를 옮기시어 피신하소서> 라고 청하고, 아울러 일본 공사를 불러들여 호위케 하라고 청하였으나 왕은 듣지 않았다.

김옥균 등은 울며불며 달래다가 위협하며 빨리 떠나라고 요구하였다. 중관 유재현이 살해되니, 왕은 창황히 침전에서 나갔으며, 조태호, 홍태후와 왕후, 태자 이하는 모두 걸어서 따라나섰다.

영숙문에 이르러 갑자기 총소리가 일어나자, 김옥균 등은 급히 외치며 청병들이 많이 이르렀으니 서둘러야 한다고 하였다. 이 총소리는 일당들이 미리 이곳에 사관생도들을 매복시켜 왕이 이르는 것을 엿보아 총소리를 내 암호로 삼은 것이었다. 다시 일본 공사를 불러들여 호위해달라고 청했으나 왕이 듣지 않자, 김옥균, 서광범 등은 품과 있던 연필과 서양 종이를 꺼내어 일사내위(일본공사는 나를 지켜라)라는 넉자를 쓰고, 인신 증거도 없이 일본 공관에 보냈다. 왕이 경우궁에 당도하였다는 소식이 일본 공관에 이르자, 일본 군사들은 이미 낭우에 가득하고 일본 역관 아사야마는 맞아 뵙고, 공사 다케조에는 따라 들어왔다. 왕은 동상에 어거하시고, 일본 공사와 일당들은 청사에 거처했다. 조금 뒤 사관생도 12명이 입궁하여 둘러쌌으며 김옥균, 홍영식 등은 슬퍼하며 우는 모양을 짓고 있었다. 이에 일본병은 궁문을 에워싸고 일당들은 그 가운데 거하면서 외부와 내통을 억제했다.

- 박은식, 한국통사 -

이 때 우리 민인들은 일본인을 원수로 보았고 맹세코 함께 살 수 없다 하여 만나면 치고받아 죽이기까지 했다. 청병 또한 일본 공사관을 밤에 몰래 공격하여 39명을 죽이고 부녀는 욕을 보였으며 방사를 파괴하니, 드디어 다케조에 공사는 깃발을 내리고 군대를 이끌고 서소문을 빠져 도망쳤다. 이 때문에 우리 백성들은 더욱 노하여 일본 공관을 불태우고 육군 대위 이소하야시를 죽였다. 김옥균, 박영효, 서광범, 서재필 등은 머리를 깎고 양복 차림으로 영사관에서 나무 궤짝 속에 몸을 감추고 24일 일본 상선을 타고 도망쳤다.

- 박은식, 한국통사 -

4. 갑신정변과 김옥균에 대한 평가들

갑신정변의 여러 적들(김옥균 등)은 서양을 존중하고 요순과 공맹을 비판하면서 유교를 야만이라고 하고, 도를 바꾸려 하면서 매번 개화라 일컬었다.

- 속음청사, 상 -

김옥균은 청군의 종주권 아래에 놓여 있는 굴욕감을 이겨내지 못하여 어떻게 하면 이 같은 치욕에서 벗어나 조선이 세계 각국 가운데서 평등하고 자유로운 일원이 될 것인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노심초사 하였다. 김옥균은 그대 교육을 받지 못하였으니, 시대 추이를 통찰하고 조선도 강력한 현대 국가가 되어야 함을 절실하게 바랬다. 그리하여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기술 채용에 따라 정부와 일반 사회의 구투인습을 일변시킬 필요를 확신하였다.

그(김옥균)는 구미 문명이 하루저녁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열국이 서로 경쟁을 벌여 점진적으로 이룩해낸 것으로서 수세기나 필요했으나, 일본은 일대만에 속성하였다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스스로 일본을 본보기 삼고자 백방 분주하였다.

- 서재필, 회고 갑신정변 -

한국이 생존하기에 적합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앞으로 내가 해야 할 일은 최선을 다해 한국이 적자로서 살아남게 하는 것이다. 한국이 공정한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지 못한다면 한국이 적자로서 생존할 능력이 없음을 의미한다.

- 윤치호일기, 1982년 4월 7일 -

1884년 중엽에 새로운 집단이 영향력을 끼치기 시작하였다. 일본으로 유학 간 몇몇 젊은이들은 철저한 개혁론자가 되어 돌아왔다. 일본이 변모하는 과정을 본 이들은 일본처럼, 아니 일본보다 더 철저히 개혁을 바랐다. 가능하다면 필봉 한자루로 조국을 서구화하고 싶어하였다. 또 일본 관료의 품에 몸을 던져 혁명적 변혁을 위한 만반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 F. A. 맥켄지, 대한제국의 비극 -

처음 김옥균은 박규수 선생 문하에서 배웠다. 1881년 나는 영선사로, 김옥균은 조사시찰단으로 일본에 건너갔다. 다같이 나라를 일으킬 것을 기약하였다. 임오군란 이후부터 청이 우리나라에 내정간섭을 자주했다. 나는 청나라당으로 지목되었고, 청국이 우리의 자주권을 침해하는 데 분노해 갑신정변을 일으켰던 김옥균은 일본당으로 지목되었다. 그 후 일이 허사로 돌아가자 세상을 그를 역적이라 하였는데, 나는 정부에 몸을 담고 있어 그를 공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마음은 결코 다른 나라에 있지 않았고, 애국하는 데 있었다.

- 김윤식, 속음청사 -

갑신정변에 대하여, 김옥균에 대하여 당시의 전통 성리학자들은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온건개화파를 비롯하여 개화사상을 알고 있는 이들은 김옥균에 대하여 동정을 보낸 것 같습니다. 독립협회의 서재필은 그를 민족의 근대화를 위하여 노심초사한 인물로, 윤치호는 당시 근대화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점을 인정합니다. 같은 개화파이지만 노선을 달리한 김윤식은 김옥균 역시 애국자였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또, 김옥균이 걸어온 길이 우리 개화사상의 전통적 맥을 잇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 다룬 개화파의 연결그림이 아래 있죠? 김윤식이 말한 김옥균의 스승이 박규수라는 점, 김옥균 역시 개화파의 계보를 그대로 이어가고 있던 인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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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화파의 흐름도>

5. 정권을 잡은 급진개화파, 바로 개혁 정강을 내 놓다!

갑신정변으로 정권을 잡은 김옥균은 바로 개혁 정강을 내놓습니다. 이것이 유명한 갑신정변 14개조 정강이죠. 내용을 한번 볼까요?

1. 청에 잡혀간 흥선 대원군을 곧 돌아오도록 하게 하며, 종래 청에 대하여 행하던 조공의 허례를 폐지한다.
  2. 문벌을 폐지하여 인민 평등의 권리를 세워, 능력에 따라 관리를 임명한다.
  3. 지조법을 개혁하여 관리의 부정을 막고 백성을 보호하며, 국가 재정을 넉넉하게 한다.
  4. 내시부를 없애고, 그 중에 우수한 인재를 등용한다.
  5. 부정한 관리 중 그 죄가 심한 자는 치죄한다.
  6. 각 도의 환상미를 영구히 받지 않는다.
  7. 규장각을 폐지한다.
  8. 급히 순사를 두어 도둑을 방지한다.
  9. 혜상공국을 혁파한다.
  10.귀양살이를 하고 있는 자와 옥에 갇혀 있는 자는 그 정상을 참작하여 적당히 형을 감한다.
  11. 4영을 합하여 1영으로 하되, 영 중에서 장정을 선발하여 근위대를 급히 설치한다.
  12. 모든 재정은 호조에서 통할한다.
  13. 대신과 참찬은 의정부에 모여 정령을 의결하고 반포한다.
  14. 의정부, 6조 외의 모든 불필요한 기관을 없앤다.

이 14개조 정강의 핵심 내용을 정치, 사회, 경제적으로 나눠보죠.

일단 정치적으로 급진개화파가 추구한 것은 <입헌군주제>입니다. 김옥균은 조선 사회가 추구해야 할 근대화는 서양식 <부르조아>계급이 사회를 주도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조선에서 부르조아 계급은 곧 토지를 가진 지주계급과 대외무역에 종사하는 상공업 계급이었죠. 따라서 이들을 중심으로 국왕의 권한을 제한하고, 일본 메이지 헌법처럼 법으로서 국가를 통치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즉, 동양식 전제군주제를 영국, 미국식 의회제도로 바꾸어 <내각이 책임지고 통치한다>는 방식을 선택한 것입니다. 이것은 영국의 젠트리 계급이 명예혁명을 일으켜 내각을 수립한 것을 모델로 하며, 그것을 받아들인 일본의 메이지 유신 헌법을 모방하려 한 것입니다. 따라서 궁안의 내시부를 혁파하고, 의회식 회의제도인 고관 회의를 적극 도입할 것을 주장합니다.

다음으로 외교분야에서는 그동안 내정간섭을 해온 청을 적극 배제하고, 자주 독립국임을 주장합니다. <흥선대원군을 돌아오게 하라>라는 것은 대원군의 집권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나라의 어른을 납치는 청을 질타하고, 사대외교를 폐지하여 나라의 자주권을 세우기 위함입니다.

다음 경제분야에서는 부세제도의 개혁인 <지조법>을 실시합니다. 이것은 지주의 봉건적이고 불법적인 수탈을 방지함으로서 <근대적 세율의 법정화>를 추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또 불명확한 토지의 소유권을 확실하게 하여, 주인이 없는 땅은 국유지로 편압하는 것도 포함합니다. 즉, 일정한 국유지를 확보하면서도, 토지소유자인 지주의 소유권을 인정하여 <지주계급의 부르조아지화>와 <국가 재정 확보>를 동시에 하겠다는 것이 목적이지요. 이렇게 확보한 재정은 호조가 일괄적으로 관리하고 예산을 계획함으로서 국가 재정을 근대화하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메이지 유신을 모방한 것이지만, 큰 약점이 있습니다.

지조법은 실제 지주층에게 유리한 반면, 백성들이 원한 <토지제도 자체의 개혁>과는 상당히 거리가 먼 것이었습니다. 이 지조법을 통한 근대적 부르조아지 양성은 농민층의 지지를 상실하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사회분야에서는 봉건적 관습인 신분제도, 과거제도 폐지를 주장합니다. 이것은 유럽의 시민 혁명과 메이지 유신에서 모방한 것으로, 전근대적 제도를 타파해야 근대적 사회로 나아갈 수 있음을 인식한 결과입니다.

즉, 양반중심의 지배체제를 청산하고, 지주층의 기득권을 중심으로 한 <서구적 자본주의>가 바로 갑신정변에서 추구한 이상적 근대화의 모습이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위해서는 청나라라는 외세의 간섭을 완전 배제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6. 갑신정변의 실패

우정국 정변을 계기로 정권을 잡은 김옥균 일파는 3일만에 청군의 개입으로 망명을 떠납니다. 청의 대응은 김옥균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무척 빠른 것이었습니다. 청은 개화당의 정권 획득이 조선에서 기득권을 잃게 되는 것임을 인식하고 발빠른 대응을 한 것입니다. 문제는, 개화파를 돕기로한 일본 공사가 김옥균을 돕지 않은 것입니다. 청군이 예상과는 달리 빠르게 대군을 조선에 보낸 마당에 일본 공사관군이 대응하기가 적절하지 못했기 때문이죠. 갑신정변은 3일만에 실패로 끝납니다.

갑신정변이 실패한 원인은 일본이 돕지 않은 것 외에 급진개화파의 미숙성도 있습니다. 김옥균은 단순히 근대적 개혁을 국민들이 지지할 것이라고 생각하였지만, 큰 착각이었죠. 일단 개혁의 방향이 국민중심이 아니라 <지주적 부르조아> 중심이었습니다. 급진개화파들은 백성들을 우매하여 계몽시켜야할 대상이라는 <계몽관>적 관점에서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지주제를 인정하고 지주층을 중심으로 부르조아적 지조법을 단행함으로서 봉건적인 부분을 개선하지 못한 개혁이 되고 말았습니다. 또 일본과 밀착한 개혁이었던 만큼 백성들은 개혁 자체의 의도를 불순하게 보고 있었지요. 갑신정변은 최초의 근대국민국가 건설을 지향한 운동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실패할 수밖에 없는 개혁이 되고 말았습니다.

7. 청과 일본은 정변을 핑계로 경쟁적으로 조선에 침투하다.

갑신정변이 청의 간섭으로 실패함으로서 조선은 다시 <청의 고문>이 실권을 잡아 정치하는 임오군란 이후로 되돌아갔습니다. 청의 간섭이 심화될수록 보수세력은 계속 장기집권을 할 수 있는 기반을 가지게 되었고, 개화세력은 이제 완전 도태되고 맙니다. 이후 김홍집, 박영효 등이 깁오개혁, 독립협회 등의 세력과 연계되어 활동하지만 그 활동은 제한적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갑오개혁의 결과, 조선은 일본공사관이 훼손되었다는 이유로 일본 공사관의 신축비를 부담하고 일본에 배상금을 지불하게 됩니다.(한성조약)

또 청과 일본은 조선에서 공동출병, 공동철수 할 것을 약속하는 톈진 조약을 체결합니다. 이것은 조선에서 정치적으로 밀린 일본이 세력을 만회하기 위해 맺은 것으로, 일본이 청과 동등한 파병권을 확보함으로서 조선에 대한 군사적 기반을 계속 유지해나감을 의미합니다.

다음 장에서는 갑신정변 이후 청과 일본이 조선의 주도권을 놓고 다투는 과정을 다루겠습니다. 밤이 깊었네요. 그럼 안녕히....


- 이 글을 위해 참고한 역사도서 모음

잃어버린 혁명(갑신정변 연구) 상세보기
강범석 지음 | 펴냄
한반도 근대 이행기에 일어난 1884년의 갑신정변의 진실을 연구한 책. 저자는 김옥균이 갑신정변이라는 역사적 사건의 전말을 써서 남겼다는『갑신일록』이 김옥균의 일기가 아니라 일본인에 의해 위작된 것임을 주장한다. 갑신정변의 배타적인 제1차 사료가 되어온『갑신일록』이 김옥균의 일기가 아니라는 착상을 통해, 갑신정변에 대한 포괄적이고도 심도 있는 시각을 보여준다. 1부에서는『조선 갑신일기』,「메이지 17년 조
갑신정변 회고록 상세보기
김옥균 지음 | 건국대학교출판부 펴냄
갑신정변에 대한 회고록을 편역해 소개한 책. 풍운의 한말을 살다간 김옥균, 박영효, 서재필 등 갑신정변 주역들에 대한 역사적 평가와 함께 그 시대를 이해하기 위해 그들의 육성을 들어보며 갑신정변을 이해하는 발판을 마련하고자 했다. 당시 혁명의 주역들이 자신들의 과거를 되돌아보며 남긴 회고록 4편을 소개하고 있다.
갑신정변 연구(한국학연구총서 27) 상세보기
박은숙 지음 | 역사비평사 펴냄
근대 변혁운동의 선구적 시발점인 갑신정변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서. 보다 실증적이고 객관적인 연구방법으로 갑신정변에 총체적으로 접근한 책이다. 갑신정변을 주도한 개화파들의 개혁방안을 보여주는 정령 14개조안을 다양한 측면에서 분석하고, 정변 관련자들의 회고록과 각종 저술들을 비교 분석하여 당시의 상황을 입체적으로 추적하고 있다. 이 책은 개화파가 당시 개화사상을 받아들인 참여층의 자발적 동참과 협조를 이
임오군란과 갑신정변 상세보기
김용구 지음 | 원(이보란) 펴냄
임오군란과 갑신정변에 대하여 19세기 세계정세와 관련하여 설명한 연구서. 임오군란과 갑신정변 같이 한국사와 세계사의 충돌에서 나오는 격동적인 사건들에 우리가 어떻게 대처했고 그런 대응 태도가 남긴 정신적 유산이 오늘날 국제정치 구조에서 살아가는 데에 치유할 것이 있는지 해부한다.

갑신정변연구 상세보기
한국정치외교사학회 편 지음 | 평민사 펴냄
김옥균(역사논술교과서 38) 상세보기
서울교육대학교 역사논술연구회 지음 | 파랑새 펴냄
『역사논술교과서』시리즈 제38권《김옥균》. 본 시리즈는「인물로 보는 한국사」시리즈를 읽은 후 활용하면 좋은 통합논술 대비 부교재이다. 학습자는 7단계로 나뉜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사를 종합적으로 꿰뚫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체계적인 논술 학습을 할 수 있다.
한국의 근대사상(세계의사상 36) 상세보기
김옥균 외 지음 | 삼성출판사 펴냄
살아있는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 상세보기
김육훈 지음 | 휴머니스트 펴냄
미래의 눈으로 한국 근현대사를 읽는다 <살아있는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는 우리나라 청소년을 위한 살아있는 역사 교과서이다. 민주주의와 공화주의야말로 오랜 세월의 분투를 통해 달성한, 그래서 돌이킬 수 없는 우리 모두의 현재임을 분명히 하면서 우리가 실현한 민주주의, 우리가 지향해야 할 민주주의란 관점에서 한국 근현대사를 살펴본다. 대안적인 특징점을 바탕으로 21세기 근현대사 인식과 역사교육, 그리고
서재필(주니어세계의인물자서전 13) 상세보기
송건호 역 지음 | 금성출판사 펴냄
뿌리깊은 한국사 샘이 깊은 이야기 6 상세보기
김태웅 지음 | 펴냄
대원군 정권의 성립부터 3.1운동 직전인 일제의 무단통치 시기까지를 다루었다. 내용 역시 이런 범위에서 외세의 침략과 수탈,사회경제 변화및 근대 개혁 운동의 전개등을 집중서술하였다. 특히 반봉건, 반침략을 둘러싸고 처지와 이념에 따라 상이한 방략을 제시하는 여러 계열의 노선과 활동에 초점을 맞추었다. 개설서와는 달리 생생한 자료의 정확한 전달과 충실한 해설에 비중을 두고 개별 항목단위로 구성한 나머지 한국 근
한국사 편지 세트(전5권)(사진과 그림으로보는) 상세보기
박은봉 지음 | 웅진닷컴 펴냄
※ 이 도서를 구매하신 고객 분께 알립니다! [한국사 편지 세트] 일부 품목에서는 별책부록인 '역사 여행을 떠나요'가 발송되지 않았습니다. 별책부록을 받지 못한 고객 분에게는 별도로 별책부록을 보내 드립니다(출판사로 연락해 주시면 바로 발송해 드립니다). 문의전화 : 웅진주니어 편집부 02-3670-1590, 영업부 3670-1501 불편을 드려 대단히 죄송합니다! 학부모의 마음을 고스란히 담아낸 역사책 친근한 글로
갑신일록 상세보기
김옥균 지음 | 건국대학교출판부 펴냄
이조말의 김옥균이 그가 주동한 갑신정변의 거사에 실패하고 망명처인 일본 땅에서 정변의 전후를 회고하면서 적은 기록으로 당시의 정세와 정변의 실상을 생생 하게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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