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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사 이야기 16 - 남북조 시대와 무로마치 막부의 전성기

1. 14세기 남북조 시대가 있었다. (1336-1392)

지난 장에서 가마쿠라 막부가 멸망한 원인 중 하나로 천황가를 중심으로 한 막부 타도 운동이 있었음을 이야기했습니다. 가마쿠라 막부를 타도한 천황가가 다시 천황중심의 강력한 독재 체제를 마련한 것이 겐무 신정이었죠.

그러나, 천황중심의 강력한 중앙집권 정책은 막부를 타도하고 천황가를 도왔던 무사들의 반발을 사게 됩니다. 특히 대장군이었던 아시카가 다카우지는 천황이 무사들을 무시하면서 천황권만 강화하려고 하자 반란을 일으켰고, 그가 곧 <무로마치 막부>를 연 아시카가 가문의 선구자였습니다.

그러나 아시카가가 살았던 시기에 가마쿠라 막부 타도의 벗이자, 최대의 라이벌 닛타 요시사다와 같은 명장이 같이 존재하였습니다. 아시카가는 요시사다와 천하를 놓고 한판 승부를 벌여야 했죠. 또 아시카가를 피해 남으로 내려간 고다이고 천황은 남쪽으세 아시카가에게 저항을 하였습니다.

이로부터 약 50년간 아시카가의 북쪽 왕조와 전통적 천황가문의 남쪽 왕조가 대립하게 되었는데, 이것을 일본사에서 <남북조 시대>라고 합니다.

남북조 시대에 큰 전쟁은 없었지만, 계속된 긴장의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한반도에 전쟁이 없지만 휴전선 너머로 서로 대치하고 있는 국면과 같은 상황이 이어진 것이죠. 북조는 강력한 군사력에도 불구하고 남조를 완전히 정복하지 못하였습니다.

2. 슈고 다이묘가 등장하다.

남북조 시대는 역사상 큰 특징적인 측면은 없습니다. 이 시대의 가장 큰 특징은 가마쿠라 막부에서 시작된 일본식 봉건질서가 약간 변화하고 있다는 점이 주목됩니다. 즉 초기 가마쿠라 막부의 봉건제와 후기 에도 막부기의 봉건제의 과도기적 단계가 나타나는 것이죠.

원래 가마쿠라 막부의 봉건제는 쇼군, 슈고, 지토라는 개념이 확고하였습니다.

일단 쇼군은 수도가 아닌 거점, 즉 출신지나 군사주둔지에서 전국의 무사를 지배하는 식의 통치 질서를 유지하였습니다. 그러나 남북조 시대의 혼란기에는 쇼군이라는 직함이 이전보다 강력하지 못하였습니다. 즉, 각 지방의 영주들이 각각 세력을 가지고 있었고, 그 지방 영주들이 쇼군 밑에서 어느 정도 권력을 가진 정치 형태였죠. 우리식으로 말하면 호족 연합 정권 정도의 성격이랄까요?

그러나 이후 무로마치 막부와 에도 막부로 넘어가면서 쇼군의 지방 통제가 전환됩니다. 즉, 쇼군은 지방이 아닌 수도에 거주하면서 전국의 무사들을 통솔하고, 말을 듣지 않는 무사들은 그 식솔들을 인질로 잡아두게 되었죠. 이러한 정책의 변화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에도막부기의 <산킨고타이 제도>입니다. 한자로 해석해서 <참근교대제도>라고도 하죠. 이 제도는 고려의 기인제도와 비슷합니다.

이러한 제도가 등장하고, 쇼군이 수도를 중심으로 전국을 통치하는 체제로 바뀐다는 점은 막부의 국가 장악력이 후반으로 갈수록 강해진다는 것을 의미하죠.

그러나, 이 남북조 시대는 쇼군이 강해진 후대와는 정 반대의 상황이었습니다. 남북조 시대의 슈고는 그 권한이 너무 막강했습니다. 쇼군(막부최고 통치자)은 지방 행정관으로 보낸 슈고를 통제할 수 없었고, 슈고에게 군사권, 경찰권을 넘어 소작세와 연공의 절반을 걷어갈 수 있는 권리마저 주었습니다.

남조에서 먼저 슈고를 다스리기 위해 슈고에게 많은 권한을 부여했고, 북조도 차츰 이에 따라 슈고에게 많은 권한을 부여했습니다. 슈고는 이제 가마쿠라 막부시기의 슈고가 아니였습니다. 단순히 막부를 위해 세금을 걷고, 감찰하는 관리가 아니라 슈고 자체가 거대한 영지를 가진 영주가 된 것입니다. 슈고는 행정권을 넘어 지토가 가진 토지경제권마저 장악할 수 있었죠.

이렇게 슈고이면서 엄청난 토지마저 소유할 수 있게되어 지방 영주(다이묘)가 된 그들을 <슈고 다이묘>라고 부릅니다.

슈고 다이묘의 개념은 남북조 시대 뿐 아니라, 무로마치 막부 전반에 걸쳐 중요한 개념입니다. 막부의 전성기를 이끈 자들도 이들이고, 무로마치 막부의 멸망과 관련된 자들도 이들이기 때문이죠. 이들이 지방의 실세가 되면서 무로마치 막부기 슈고들은 지방 <호족>처럼 되어 갑니다.

실제 남북조 시대는 슈고 다이묘들의 연합정권이라고 볼 수 있을 정도로 슈고들의 영향력이 지대하였습니다.

3. 무로마치 막부의 성립과 전성기 : 14세기

남북조 시대가 지속되던 시기, 남조와 북조는 오랜 대립을 끝내고 통일을 합의하게 됩니다. 노무현과 김정일이 한반도 비핵화와 종전선언을 하자고 만난 것처럼, 남북조의 대립은 전쟁 위협속에서 합의로 끝났습니다.

일단 천황의 자리는 무로마치 막부가 있는 북조에게 양보한 뒤, 남조의 천황가의 후예를 황태자로 삼아 평화적으로 정권을 이어가자는 것이었죠. 따라서 천황가는 계속 명백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고, 무로마치 막부는 전국을 통일한 막부로서 실권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전국정권은 무로마치 막부가 탄생하였습니다.

무로마치 막부의 초기에는 지방 세력이었던 슈고 다이묘들에 대한 통제를 강력하게 실시하려 했습니다. 특히 3대 쇼군인 아시카가 가문의 요시미츠는 동양사에서도 이름이 잘 알려진 인물입니다.

요시미츠는 무로마치 막부의 성립 시기에 동아시아 상황이 급변하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가마쿠라 막부를 멸망으로 몰아넣었던 원인을 제공한 원나라(몽골)이 망해가면서 새로 명나라가 등장하고 있었고, 고려 역시 공민왕 이후 고려가 급격히 쇠퇴하면서 조선왕조로의 변화를 겪고 있었죠.

이렇게 동아시아의 질서가 어지럽자, 일본 해안의 해적들이 중국대륙과 한반도에 넘어들어가 재물을 약탈하는 일이 빈번하였습니다. 동양사에서는 이들을 <왜구>라고 부르죠. 왜구는 명, 조선에게는 너무나 골치아픈 일이었지만, 무로마치 막부는 이것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였습니다.

일단 조선과의 관계는 <교린정책>으로 정리됩니다. 조선은 일본 막부와는 적대하지 않되, 왜구는 철저히 토벌하였죠. 따라서 무로마치 막부는 조선과 공식적으로 공무역을 한다는 입장이었고, 조선의 문물을 적극 수용하였습니다. 그러나, 막부와 별도로 지방 권력을 가진 다이묘들과 해안 난민들은 왜구짓을 계속하였고, 조선에서는 삼포개항과 쇄국책을 적절히 써가며 이들을 막아야 했죠. 혹은 조선과의 무역에 불만이 있을 경우, 막부가 왜구의 약탈을 방치하기도 하였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삼포왜란>과 같은 왜구의 약탈 사건이었죠.

요시미츠는 명과의 관계를 <감합 무역>으로 정리하였습니다. 명나라 역시 왜구 문제가 골치거리였기 때문에, 막부가 명과의 공식 무역을 하는 대신, 왜구를 근절하겠다는 약속을 한 것이지요. 따라서 무로마치 막부는 왜구를 적절히 통제하면서 공식적으로 <막부가 일본 무역을 대표하는> 형태의 무역을 활발하게 진행하였습니다. 명나라는 무로마치 막부에 <무역허가증>을 주고 왜구의 약탈이 아닌 공무역을 보호하였습니다.

전성기 때의 무로마치 막부는 중국, 조선 뿐 아니라 남쪽의 오키나와 해상 세력, 당시 독립국가인 류쿠 왕국까지 무역을 전개하였고, 더 나아가 동남아시아와도 무역을 재개하였습니다.

이 활발한 무역정책은 지방 슈고다이묘에 의해 약화된 막부의 재정을 튼튼하게 하여 막부 창건이후 수십년간 무로마치 막부를 지탱하였습니다.

여기까지 하고, 다음 장에서는 무로마치 막부의 사회상과 붕괴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적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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