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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사 이야기 33 - 한 왕조의 건국

이번 장부터는 중국 한 나라 시대에 대한 역사를 간략히 개관하겠습니다. 한 왕조는 건국기, 한무제기, 한무제 이후기로 역사를 나눠보고, 그 후에는 경제사, 제도사, 사회사를 다뤄서 쭉 정리하는 식으로 할께요. 자세한 한의 세부적인 역사는 이후 중국사 시즌 2, 시즌 3을 정리할 때 다룰 예정입니다.

1. 한 왕조의 건국과 유방

한의 역사는 진이 멸망한 이후 <초한지>에 나오는 초나라 항우와 한나라 유방의 싸움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초한지를 보면, 힘이 장사였고 귀족집안 출신이었던 항우에 비해, 유방의 세력은 미약했고 그를 돕는 자들도 의리로 뭉친 의협집단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역사에서는 유방이 더 통솔력이 뛰어났고 시세를 잘 파악하여 항우를 물리치고 건국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물론 승자의 관점에서 적은 기록이겠지만, 이 초한지는 중국 역사상 아주 드라마틱한 소재로 많이 이용됩니다. 예전에 패왕별희를 연극으로 본 적이 있는데, 중국인들의 사고에는 이 한의 건국이라는 것이 중국 역사에서 진시황의 최초 통일만큼이나 중요하게 다루는 듯 싶더군요.

항우가 건국에 실패한 원인은 너무도 시대의 흐름을 못 읽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진나라의 유산인 아방궁을 태우고, 진이라는 통일국가를 원수처럼 적대시한 것은 당시 새로운 집권층에게는 신 세력이라기 보다 <초적>세력으로 비추어졌을 가능성이 컸습니다. 또, 지배층을 위한답시고 주나라의 이상 정치인 <봉건제도>를 시행하려 했던 것은 너무 역시대적 발상이었지요. 거기에 진의 근거지인 관중지방을 완전히 무시한 것도 실책입니다. 진은 망했지만, 진의 유산으로 계승할 수 있는 경제력과 정치적 역량을 완전히 버리는 것이었으니까요. 항우는 강남의 팽성에 도읍을 정함으로서 중국 고대로부터의 문화적 역량을 모두 버린 결과를 초래하였습니다.

한의 고조 유방은 한을 건국한 이후 진의 멸망을 거울삼아 법가주의적 통치를 계승하면서도 군현제가 아닌 <군국제도>를 통해 지방을 장악하려 했습니다. 수도도 진의 근거지인 함양와 가까운 장안으로 정했구요.

유방의 창업공신들은 항우와는 달리 능력으로 유방을 도와 건국까지 달려온 <유협집단>이었습니다. 솔직히 건국기 한나라는 유교가 뭔지, 예절이 뭔지도 모르는 협객들이 오로지 능력과 의리로 뭉쳐 달려온 집단이었습니다. 유방도 유교사상에 무지했습니다. 유방에게 가의와 같은 유교사상에 능통한 신하가 없었다면 유방 역시 건국 후 어떤 변수를 맞았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유교 사상이 한나라에 정착될 쯔음 유방의 창업공신 중 일부가 제거되고, 일부는 유교적 사상을 받아들여 새로운 왕조의 기반을 든든히 할 기틀을 마련합니다.

유방은 건국 후 <군국제도>를 실시하였습니다. 군국제도는 군현제와 봉건제를 절충한 제도입니다. 유방이 보기에 봉건제도란, 춘추전국시대의 오랜 분쟁을 양산한 산만한 제도였고, 항우가 주장했다가 실패한 시대역행적 제도였습니다. 그렇다고 군현제는 진시황제가 실패한 정책으로, 봉건제와는 달리 국가 기반이 약할 경우 황제권을 보호해줄 든든한 혈적이 없어 위험한 제도였습니다. 결국 유방은 경기지방(장안인 수도 근기)은 군현제로서 황제가 직접 다스리고, 지방은 유씨 일족과 공신들을 분봉함으로서 봉건제도로 다스리는 절충안을 내놓는데, 이것이 군국제도입니다.

또 건국초기의 혼란을 막기 위하여 유방은 흉노와 화친정책을 시도합니다. 진시황의 몰락 중 하나의 원인이 지나칠 정도로의 무모한 흉노 정벌과 만리장성 축조 등 인력 착쥐에 있었다고 생각한 유방은 흉노와의 평화를 통해 내치에 주력하고, 법가사상을 가미한 유교사상으로 국가 이념을 완성하려 했습니다.

또, 건국 후 유방은 이성제후들을 제거하고 동성제후(유씨)들에게 특권을 주는 정책을 점차 확대합니다. 대표적인 사건이 창업의 일등공신인 한신을 제거한 사건입니다. <사냥감을 잡은 뒤에는, 필요없어진 사냥개를 사냥한다>라는 토사구팽이라는 말은 너무도 유명한 말이죠.

그러나, 유방은 무지한 촌부 출신으로 왕위에 오른 탓에 유교적 지식이 너무 부족하였습니다. 따라서 그의 곁에는 항상 유교적 학식이 뛰어난 학자들이 많이 조언을 해주었습니다. 특히 육가는 건국초기 유교사상 완성에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는 진나라의 제도를 계승하여 법가주의적 통치제도를 유지하면서도 그 위에 예악, 법률, 문화에 있어 유교적인 색채를 가미하는 법가적 유교정치의 실시를 유방에게 건의합니다. <창업은 마상에서 이룰 수 있어도, 수성은 마상에서 이룰 수 없다>는 말은 유명한 말이죠.

2. 문경지치의 시대

한을 세운 유방이 죽은 뒤 한나라는 한차례 건국 홍역을 치릅니다. 보통 유명한 제국들이 건국시조가 죽은 뒤 왕위계승과 외척 다툼으로 한차례 위기를 넘기고 더 단단해지는 경우가 많은데, 한이 그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유방이 죽은 뒤 부인인 여씨는 유방이 아끼었던 다른 부인들을 모두 주살합니다. 특히 미인이었던 두씨 부인을 죽인 것은 유명한 일화입니다. 여씨부인은 두씨의 눈을 파고, 얼마 뒤에는 손을 자르고, 또 얼마 뒤에 벙어리로 만들고, 또 얼마뒤 다리를 자른 뒤 변소간에 버렸습니다. 보통 옛 시대의 변소간에는 사람의 변을 받아먹고 사는 돼지들이 있었는데, 여씨부인은 자신이 평소 질투하던 아름답던 부인들을 <인간 돼지>로 만들어 죽지도 못하게 한 뒤 고통스럽게 만든 것입니다.

사실 유방이 통일할 때, 여걸로서 1등공신을 뽑으라면 부인인 여씨였습니다. 그녀는 중국을 통일하는 것을 우습게 알 정도의 베포 큰 여장부였다고 합니다. 평소에 유방은 그녀만 보면 무서워서 벌벌 기었다는 자료도 많이 보입니다. 그녀는 여씨 일족을 국가 주요 자리에 앉히고, 국정을 좌지우지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여씨 일족은 문제 시대에 대부분 제거되고, 황제권이 다시 강해집니다. 정권은 여씨에서 유씨로 돌아온 것이지요. 이후 문제, 경제 시대는 중국 한나라의 전성기이자 태평성대라고 하여 <문경의 치>라고 부릅니다.

문경지치는 문제와 경제의 중국 전통의 검약관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문제는 가의의 <치안책>을 받아들여 유교식으로 국가체제를 정비하고, 덕에 의한 정치를 실시하였습니다. 특히 이 당시에는 미신적인 황노사상이 유행하였는데, 황노사상은 도교와 음양기적 색체가 상당히 강한 무위자연적이고 음양오행적인 사상입니다. 문제, 경제는 이러한 황노사상의 영향을 받아 무위자연의 순리와 우주 오행의 순리에 맞추어 국가 운영을 하였다고 합니다.

문경시대의 업적은 토지세의 감면이 가장 큰 업적입니다. 국가가 긴축재정을 하면서 백성들에게 토지세를 1/30만 받았고, 이것이 백성들의 지지를 받게 된 가장 큰 이유입니다. 또 연좌제와 육형제도를 폐지하고, 언론의 자유를 보장함으로서 진시황제의 시대와는 다른 보다 <민본적인> 사회로 나아갔던 것입니다.

또, 중국사에서 유명한 한무제 시기에 흉노정벌 등 엄청난 대규모의 원정이 가능했던 점, 그리고 그러한 원정이 진시황제와는 달리 국가 체제 위기까지 가지 않았던 점은, 이 문경시대에 만들어놓은 축척된 경제력이 뒷받침된 것입니다.

3. 오초 칠국의 난

그러나 경제 후기에는 다시 국가 수입이 줄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생산력의 증가로 조세가 늘어나야 정상이지만, 한고조 유방이 실시한 군국제로 인하여 지방의 봉건제후들이 조세를 제때 내지 않고 독자적인 세력을 유지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되자 생산력의 증가는 곧 지방 세력의 성장을 뜻하는 것이 되어 국가 입장에서는 상당히 불안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신하인 조조는 제후국의 영지를 삭감해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했습니다.(강간약지정책) 즉, 군국제의 모순으로 동성제후들이 중앙권력을 이탈하기 시작한 만큼, 그들의 권한을 줄이는 것이 꼭 필요하다는 주장이었죠. 이에 대해 지방 제후들은 7국이 모여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여차하면 중국이 다시 춘추전국시대로 돌아갈 판이었죠.(이렇게 봉건제도를 실시할 경우, 혈연관계가 소원해지면 꼭 반란이 일어났다는 것이 중국사에서 특이한 점입니다.)

비록 영지삭감을 주장한 조조는 죽었지만, 결국 7국의 난은 진압하였습니다. 이후 한의 황제들은 철저하게 지방의 제후왕들을 탄압하면서 중앙집권을 추진하는 방향으로 국가체제를 전환합니다. 이것이 곧 한무제 시대의 <군현제>로 귀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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