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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위의 분열과 <수>의 재통일 과정

이번 장에서는 5호 16국시대 정치사의 마지막 파트로서 북위가 분열된 이후 수나라가 재통일하는 과정을 간략히 다루겠습니다. 중요한 파티는 아니지만, 내용연결상 없으면 허전해서 그냥 포스팅 합니다.

1. 이주영의 부장들.... 강력한 무력으로 화북을 나눠먹다

지난 시간까지 북위의 발전과정을 포스트 하면서 북위 정권이 가진 <위험성>도 함께 언급했었습니다. 그 위험성이란 바로, 효문제 등이 추구한 강력한 <한화정책>이 평성 원 거주지의 선비족들의 불만을 가져왔다는 점이었지요.

북위는 철저히 중국식 제도와 중국식 문화를 수용함으로서, 기마민족의 한계를 극복하고, 농경사회로 전환하려고 하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선비족의 근거지인 평성을 버리고, 낙양으로 천도하였으며, 낙양에서 <한족 관리>들을 적극적으로 등용하는 정책을 실시하였습니다. 그리고, 철저한 한화정책을 통해 유교적 문치주의 정책을 실시하였습니다.

이로 인하여 북위정권은 불만 세력을 양성하게 됩니다. 하나는 평성 중심의 선비 세력이었고, 하나는 군부세력이었습니다. 이 불만은 결국 변경 군부세력인 6진의 반란을 초래하였고, 한화정책에 반대하는 귀족들은 이를 계기로 북위 정권에 도전하기 시작합니다.

이 6진의 반란은 강력한 군부세력인 이주영에게 진압되었지만, 이후의 북위는 이주영과 그 부하 무장인 우문태 등이 정권을 잡고 국가 자체를 뒤흔들기 시작합니다. 또 6진의 난 때 서북 방면에서는 만사추노의 난이 있었는데, 이를 진압한 장군인 고환, 후경 등도 군부로서 성장힙니다.

당시 북위의 황제인 효장제는 이주영 세력을 두려워하여 <이주영>을 암살하여 죽입니다. 그러나, 이주영 이후 부장들인 우문태, 고환 등은 각각 자신들이 왕을 추대하면서 동, 서로 국가를 나누어 갖고 맙니다. 고환은 동위를 세웠고, 우문태는 서위를 세우게 되면서 북위는 동위, 서위로 분열되어 멸망하게 됩니다.

2. 고환의 동위는 불안전한 내분만 겪게 되다 (동위 - 북제)

북위 분열 후 동위는 5호16국시대의 수많은 이민족 국가들이 내분과 황실약화로 망했던 것을 그대로 답습합니다. 고환은 황제권을 강화하기 위하여 와위찬탈을 노리는 외척들까지 제거해가면서 왕권을 강화하려 했지만, 이것은 오히려 끊임없는 왕실 내분만을 불러옵니다. 특히, 고환과 같은 무장 출신인 후경이 반란을 일으키고 남조로 내려가 버린 사건은 동위 정권에게 정치적으로 타격이 큰 사건이었습니다.

동위는 이후 국가체제 정비를 통해 기존 평성 귀족들을 끌어안으려고 했습니다. 따라서 수도는 업이었지만, 군사중심지는 진양에 두어 효문제의 한화정책의 문제점을 보완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정치적 중심지와 군사적 중심지를 분리한 것은 결국 선비족들에게 더욱 반감을 사게 되고, 후에 <북주>에게 허망하게 망하게 됩니다.

3. 우문태의 서위는 차분히 북위의 후계자 노릇을 계속하다 (서위 - 북주)

서위는 동위에 비해 처음 시작은 안좋았습니다. <장안> 지역이 토지와 인구도 적고 문화수준도 낮았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서위는 오히려 후진지역이라서, 평성의 선비족 본거지의 간섭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국가 기구를 개편할 수 있는 <자율성>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중국식 한화정책을 계속 추진하였습니다. 특히 조조 이래 중국에서 추진해왔던 국민개병제도를 실시하여 군사력을 강화합니다. 이 국민개병제는 <한족, 선비족, 기타 민족>의 차별없이 모든 국민들에게 병역을 부과함으로서 병농일치적 군사제도로 정착합니다.

서위는 강력한 호족세력도 없었고, 황제권을 위협할 강한 강남국가와도 멀었습니다. 그들은 차분히 준비하였고, 서위를 계승한 북주는 결국 화북을 통일하고, 남방을 정복하여 <수>라는 통일제국으로 나아갑니다.

북주는 특히 <무제>기에 통일의 기반을 마련합니다. 북제 무제는 형식에 치우친 불교를 국가종교로부터 분리시키고,(폐불사건) 신비주의적인 도교도 국가종교에서 제외시킵니다.(폐도사건) 그리고, 한나라의 한무제가 실시했던 <유교주의에 입각한 황제권의 신성화>작업을 실시합니다. 이러한 유교주의적 사회분위기로의 전환이 곧 통일의 기반이었습니다. 이 무제가 죽은 뒤 군부 총관인 <양견>이 군사력을 이끌고, 선양으로 왕위에 오릅니다. 이 사람이 바로 <수>의 양제입니다.

이 글에 대한 참고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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