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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풀이/히스토리아 역사 스토리

역사를 다 아는 자만 돌을 던져라~ 낙서 세계사 (1) 역사를 다 아는 자만 돌을 던져라~ 1. 아... 교과서같은 역사여~~~ 지금부터 일기를 쓰듯이 풀어서 역사를 조잘조잘 써보려고 한다. 그런데 말이지, 책이나 뭔가 보면 그럴듯한 서문들을 앞에 적어 놓잖아. 나도 뭐 그럴 듯한 뭔가를 적어보려고 하는데 말이야. 뭐 폼나는 거 없을까? 생각해보니깐 인터넷으로 역사에 관한 글을 적는다는 건 너무나 자유로운 일이다. 누구도 간섭하지 않고, 누구나 기분나쁘면 반박할 수 있는 공간인데, 난 그동안 너무 딱딱하게 샌님처럼 글을 적은 것 같아. 고등학교 때가 생각나는군. 누구나 한번쯤 겪은 일이라 특별할 것도 없는 같은 이야기인데, 아마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T(샘) : 자... 공부했으니 확인해야지? 삼국통일의 의의가 뭐지? S(우리.. 더보기
포스트 모던과 문화 코드 (5) - 왜, 교과서는 천하무적인가? 포스트 모던과 문화 코드 (5) 왜, 교과서는 무적이 되야 하는 것일까? 1. 교과서의 절대성 오늘은 21세기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포스트모던으로 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지에 대해 이야기 해보려고 한다. 많은 교사들이 포스트모던의 철학으로 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한국 사회의 현실 때문이다. 입시를 위한 역사 교육이 우선시 되어야 하며, 입시에 강한 역사 교사가 우대받는 공교육에서 어떻게 을 부정하는 교육이 이루어진다는 것인가? 포스트모던의 역사 철학은 공교육의 절대성을 부정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7차 한국사, 세계사 교과서의 첫 시작은 로 출발한다. 역사를 공부하면 삶을 윤택하게 만들 수 있는 다양한 지식을 쌓게 되며, 과거를 바라보는 눈을 갖게 된다. 이 과거를 바라보는 .. 더보기
역사 속의 종교 이야기 <불교편> - 16화. 고구려의 불교 이야기 역사 속의 종교 이야기 16화. 고구려의 불교 이야기 1. 불교가 원시 신앙을 대신하다. 자, 이번 회부터의 불교 이야기는 우리 역사 속의 불교 이야기이다. 그럼 시작해볼까? 한반도의 불교 이야기는 인도나 중국 이야기처럼 재미있는 일화로 구성하기가 힘들다. 특히, 고대 불교는 삼국사기, 삼국유사, 해동고승전 등 일부 자료와 중국측 기록 외에는 남아있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누가 불교 이야기를 적더라도 거기서 거기일 수밖에 없는 현실을 감안해야 한다. 일단, 삼국유사에 따르면 불교는 고구려 소수림왕 2년(372)에 전진왕 부견이 승려 순도를 통해 불상과 불경을 전파했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2년 뒤 아도화상이라는 스님이 다시 건너오자 성문사에 순도를, 이불란사에 아도를 머물.. 더보기
역사 속의 불교 이야기 - 15화. 평생을 불교와 싸운 신문학인 - 한유 역사 속의 종교 이야기 15화. 평생을 불교와 싸운 유학의 아버지 - 한유 1. 맹신적인 종교가 국가를 망치는 것이다. 중국 불교를 마무리 하면서 어떤 상징적인 이야기를 꺼내야 쉽게 이해될까 고민하느라 포스트가 지연되었다. 오늘 이야기는 불교를 배척하면서 평생을 살아간 의 이야기로 중국 불교편을 정리하고자 한다. 중국 당나라 시기... 불교는 최전성기를 맞이하였다. 국가 권력과 밀착한 화엄종, 천태종 등 교종 종파 뿐 아니라, 백성에게 직접 뛰어들어 불교의 대중화를 이끈 정토종, 선종에 이르기까지 불교천하를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불교의 힘이 너무 강해질 때마다 중국 황제는 종교에 태클을 걸었다. 그 이유는 정치적 목적 때문이다. 국왕이 불교를 용인하는 것은 불교가 왕권 강화에 도움을 준다고 생각했기 .. 더보기
역사 속의 불교 이야기 - 14화. 보리달마와 선종 : 지식은 권력층만의 것이 될 수 없다. 역사 속의 종교 이야기 14화. 달마 이야기 : 지식은 권력층만의 것이 될 수 없다. 1. 선(禪)이란 본래 수행방법이었다. 선(禪)은 원래 인도 불교의 수행방법으로서 과 비슷한 것이었다. 선은 범어로 드야나(dlhyana)를 번역한 것인데, 원 뜻은 이다. 그런데, 이 수행방법이었던 선이 어떻게 동아시아 불교에서 가장 큰 위상을 차지한 로 거듭나게 되었을까? 오늘은 선 사상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중국에서의 은 보리달마 이전과 이후로 나누는데, 달마가 중국에 건너오기 전의 을 교학선이라고 한다. 이란, 소승불교에서 개인 수양을 위해 적어놓은 등과, 대승불교 경전에 기록되어 있는 요가수행법 등을 바탕으로 한 을 말한다. 경전을 바탕으로 하는 여러 종파들이 책을 읽은 후 수행법으로 익힌 것이다. 따라서 은 .. 더보기
포스트 모던과 문화 코드 (4) - 주몽도 리니지의 캐릭처럼 레벨업을 해야 살아남는다 포스트 모던과 문화 코드 (4) 주몽도 리니지의 캐릭처럼 레벨업을 해야 살아남는다. 1. 사극의 천국을 찾아낸 작가들... 오늘 이야기할 포스트모던의 주제는 TV 사극이다. 자, 그럼 한 번 시작해볼까? 21세기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던 카운트 다운이 있기 전까지 우리 나라의 정통 사극들은 신세대들의 큰 호응을 얻지 못하였다. 옛날 사극들의 지루함을 한번 볼까? 국왕이 라고 묻는다. 그러자 양쪽으로 길게 늘어선 신하들이 돌림 노래를 부른다. 영의정 아뢰오... 저는 이렇게 생각하오... 좌의정 아뢰오... 부당하신 말씀이요.... 이조 참판 아뢰오.. 전적으로 동감하오... (대사 무지 많다... 옛날 배우들 정말 고생많으셨습니다...) 5분 동안 이어지는 신하들의 릴레이 토론으로 우리는 역사 교과서 10장.. 더보기
동아시아의 토지 이야기 (2) - 동아시아의 신석기 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동아시아의 토지 이야기 (2) 동아시아의 신석기 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1. 신석기 시대가 도래하다.... 인류가 땅을 이용하여 생상력을 확보한 시기는 약 1만년 전부터이다. 1만년전을 훌쩍 뛰어넘어 70만년전에 이르는 는 토지에 관련된 이야기를 전개하기가 어렵다. 그 이유는 수십만년 동안 지속된 빙하기와 간빙기 때문이다. 그 오랜 기간 인류의 시조인 들은 생존을 위한 사투를 벌여야만 했다. 사진 : 오스트랄로 피테쿠스 - 아프리카누스(약 215만년전 유인원 : 미세스 플레스)의 두개골로 재현한 고인류. 당시 인류는 인간보다는 원숭이에 가까웠지만, 직립보행과 도구의 사용을 근거로 인류의 시조로서 대우를 받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상징적인 의미일 뿐, 현생 인류의 조상이라고 보기엔 미흡한 점이 .. 더보기
수능 근현대사 정리 14 :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토지개혁 30. 대한민국의 수립 1) 모그크바 3국 외상 회의과 좌/우 대립 미국, 소련, 영국은 1945년 12월 모스크바에서 한반도 문제에 대해 논의하였다. 이를 ‘모스크바 3국 외상 회의’라고 한다. 회의의 결과는 한반도에 임시정부를 수립하고 그를 지원할 미/소 공동 위원회 설치, 강대국들에 의한 5년 이내의 신탁 통치 실시에 관한 내용이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여론을 통해 신탁 통치에 관련된 내용만이 부각되었다.(물론, 이를 부각시켜 선동한 언론은 조중동이다. 너무 당연한가?) 이에 좌익으로 대표되는 조선 공산당은 초기에 신탁통치를 반대하였으나, 후에 신탁 통치가 점진적으로 한반도 독립을 위한 길임을 깨닫고 찬탁으로 돌아섰다. 반면, 김구, 이승만, 한국 민주당 등의 우익은 열렬하게 반탁을 지지하였으며,.. 더보기
수능 세계사 정리 14 : 유럽사 5 / 2차 민족이동과 봉건사회 ① 2차 민족이동 노르만족은 원래 게르만의 한 계통으로 ‘북쪽에 있는 게르만’이라는 뜻이다(로마는 게르만에 대해 세세한 분류를 하지 않았다. 로마를 제외한 모든 지역의 사람을 일컫는 말이 ‘게르만’이다). 이들은 스칸디나비아 지방에서 거주하고 뛰어난 항해기술을 가지고 있으며 9세기경에 유럽으로 침입하기 시작하여 게르만 족처럼 많은 지역을 점령하고 국가를 세웠다. 프랑스 서북 지방에 노르망디 공국(Tip : 훗날 노르망디로 말미암아 영국과 프랑스는 많은 마찰을 빚게 된다.), 잉글랜드에 노르만 왕조, 지중해에 나폴리 왕국, 러시아에 노브고로트 공국과 키예프 공국을 각각 건설하였다. 뿐만 아니라 이들이 아메리카 대륙에까지 이르렀다는 설(說)도 있다. 노르만 뿐만 아니라 반(半)유목민인 마자르족이 유럽으로 들.. 더보기
수능 세계사 정리 13 : 유럽사 4 / 게르만 이동과 프랑크 왕국 2) 중세 유럽 ① 게르만족의 이동 게르만 족은 원래 발트 해 연안 등의 북유럽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이었다. 기원 전후에 인구 증가와 식량 부족으로 점점 남하하면서 로마와 접촉하게 되었다. 그들은 3세기경부터 로마 사회에서 소작농이나 용병으로 활약하기도 하였다. 4세기 후반에 훈족이 서쪽으로 이동하면서 게르만 역시 서로마 방면으로 이동하게 되었는데, 이로써 서로마는 멸망하고, 서로마가 있던 자리에 게르만이 세운 여러 왕조들이 등장하게 되었다. ② 프랑크 왕국 프랑크 왕국 역시 게르만이 세운 많은 왕조 중에 하나였다. 프랑크 왕국은 예전 로마 문화의 중심지였던 갈리아 지방(지금의 프랑스 지역)에서 번창하였다. 클로비스는 메로빙거 왕조를 개창(481)하고, 가톨릭의 정통파인 아타나시우스파로 개종하여 로마 .. 더보기